전체기사 - 2016년 성서와 문화

설렘과 떨림의 미학

-행복한 청소부를 읽고서 -

 

조신권 (연세대 명예교수, 영문학)

 

모니카 페트(Monika Feth)라는 독일 작가가 쓴 행복한 청소부(Der Schilderputzer)라는 얄팍한 그림 동화책을 얼마 전에 읽었다. 동화라기보다 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교훈소설이라고 할 만한 그런 책이다. 독일에 거리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 부루퉁이라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아침 7시가 되면 항상 일하러 나갔고, 30분 후면 청소국에 도착해서 파란색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파란색 고무장화를 신고, 파란색 사다리, 파란색 물통, 파란색 솔과 파란색 천을 받고 파란색 자전거를 타고 일하러 출발한다. 파란색 청소부들이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모습은 파란 새들이 둥지를 떠나는 모습처럼 보였다. 행복한 청소부 아저씨는 몇 년 동안 똑같은 거리의 표지판을 청소하고 있었는데, 그 거리는 작가와 음악가의 거리였다. 바흐 거리, 베토벤 거리, 쇼팽 거리, 모차르트 거리, 헨델 거리, 글루크 거리, 괴테 거리 등. 그는 이런 거리들에 있는 표지판을 닦는 일을 했는데, 너무 반짝반짝 청소를 잘해서 표지판이 늘 새것처럼 보여 다들 칭찬했고, 청소국 국장도 잘하십니다!”하고 칭찬을 해주었다.

어느 날 한 소년과 어머니가 길을 가다가 소년이 글루크 거리표지판을 보고는 글씨가 잘못 되었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된다. 독일어로 글뤼크행복이란 뜻의 단어인데, ‘글루크의 뜻을 모르는 아이는 표지판이 잘못되었다고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글루크가 음악가의 이름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청소부 아저씨는 자기가 닦고 있는 표지판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음악가와 작가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기로 마음먹고 종이에다 음악가와 작가의 이름을 써놓고 벽에 붙여 놓았다. 또한 레코드플레이어를 사서 계속적으로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고 하면서 늘 설렘으로 음악가들을 공부하였고, 도서관에 가서 작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알 수 있을 때까지 읽었다. 이렇게 해서 표지판의 주인공들과 친해진 아저씨는 표지판을 닦으며 그 후부턴 음악가들의 노래를 부르거나, 작가들의 글을 외우면서 청소를 했다.

부루퉁 청소부아저씨는 유명한 음악가들의 오페라에 나오는 시들을 읊조리고 아리아를 흥얼거리는가 하면 자기 자신에게 음악과 문학에 대해 강연을 하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작업현장에는 늘 사람들이 몰려들어 노상 강연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급기야 여러 군데의 대학에서 강연 요청까지 해오자 그는 이렇게 거절했다. “나는 하루 종일 표지판을 닦는 청소부입니다. 강연을 하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랍니다. 나는 교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책 말미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괴테 등 그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던 인물들의 짤막한 이력까지가 곁들여져 있다. 나는 이 동화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설레고 감정 선이 떨리는 걸 느꼈다.

마찬가지로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같은 작품들을 읽을 때도 내가 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이나 된 것처럼 가슴이 설레고 떨렸다. “소나기에 나오는 주인공 소년과 소녀는 어렵사리 만나 무도 뽑아 먹고 허수아비를 흔들어 보기도 하면서 논길을 달려 여러 가지 꽃들이 아우러진 산에 닿자, 소년이 꽃묶음을 만들어 소녀에게 건네준다. 마냥 즐거워하던 소녀가 비탈진 곳에 핀 꽃을 꺾다가 무릎을 다친다. 소년은 부끄러움도 잊은 채 생채기를 빨고 송진을 발라 주고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양 소녀 앞에서 송아지를 타기도 하는데, 그때 소나기가 내린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순애(純愛)는 얼마 동안 감동적으로 이어가다가 소녀의 죽음으로 끝이 나고 만다. ‘소녀와 소년의 만남’, ‘조약돌과 호두알로 은유되는 감정의 교류’, ‘소나기를 만나는 장면’, ‘소녀의 병세 악화’, 그리고 소녀의 죽음. 이러한 스토리 속에서 우리는 소년이 소녀와의 만남과 이별을 통하여 유년기를 벗어나는 아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는 진통이 주는 순수와 순정을 느끼게 되고 마음을 진정시키는 여유와 전율까지 느끼게 된다. 이것이 비극을 통해 얻는 예술적 쾌감, 곧 카타르시스다.

또한 나는 어느 비가 나리는 날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들으면서도 가슴이 설레고 떨리는 것을 느꼈다. 쇼팽은 비오는 소리를 듣고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쇼팽이 6살 연상의 여류소설가 조르주 상드와 동거하던 어느 겨울, 건강 상 추운 파리의 겨울을 피해 따뜻한 지중해변, 스페인의 남쪽 마요르카 섬으로 요양을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수도원의 한쪽 방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어느 날 조르주 상드는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했다.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점점 굵은 비로 바뀌자 걱정되어 초조하게 기다리던 쇼팽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쇼팽은 울면서 이 곡을 치고 있었다. 그것이 24개의 전주곡 중 빗방울 전주곡이라는 이름이 붙은 15번 전주곡이다. 이와 같이, 소설이나 시, 음악이나 그림을 대할 때 아직도 가슴이 설레는 것은 내 가슴의 피가 식지 않은 증좌인 듯하여 기쁘기 한량없다. 설렘과 떨림은 중단되지 않고 끊임없이 흐를 때 아름답다. 이렇게 감동의 파동이 계속 유지되면 나뭇잎에 매달린 이슬방울 같은 것에도 마음이 설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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