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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의 평화론 ? 한반도 평화의 맥락에서

 

주원준 토마스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구약학)

 

들어가며

가톨릭 교회의 평신도 신학자에게 이런 귀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최근 가톨릭 교회의 평화관에 대해서 개신교 형제들과 나누는 소중한 기회라는 생각에 경어체를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느껴집니다. 이 짧은 글에서 구체적인 각론까지 세세하게 논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큰 흐름을 우선 짚어드리며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개신교와 가톨릭의 용어가 차이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적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새 시대

21세기 초엽에 가톨릭 교회의 비전을 밝히고 계신 교황 프란치스코는 여러모로 신선한 인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시대에 가톨릭 교회는 정통적 믿음(orthodox)의 시대에서 정통적 실천(orthopraxis)의 시대로 점차 이행하는 듯합니다.

지난 4-500년 동안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무엇이 올바른 믿음인가에 대해서 치열하게 연구하고 성찰했습니다. 신학은 이런 정통적 믿음에 대한 언어로 가득 찼습니다. 가장 정통의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각급 단체를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에 교회와 신학은 발전했습니다만, 신학을 교파의 틀에 가두었고 실천을 외면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가톨릭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실천이 무엇일지가 큰 화두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포커스가 조금 이동한 느낌이랄까요. 20세기까지, 올바른 믿음의 기준은 대개 성경과 신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올바른 실천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사람을 제시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사랑의 실천을

가난이란 신학적 언어요 복음의 언어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과 즐겨 어울리셨습니다. 더구나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현실적이고도 중대한 문제입니다. 교황은 세상의 가난 앞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를 21세기 그리스도교의 표양으로 제시하십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비유를 들어 볼까요? 사목자(=목회자)양의 냄새가 나야 하고, 교회는 야전병원과 같은 곳이어야 합니다. 가난한 양떼의 냄새가 나지 않는 목자나, 지나치게 화려하고 깔끔하여 가난한 사람이 친근해지기 힘든 교회를 멀리 하라는 말씀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사제가 입는 검은 옷을 수단이라고 합니다. 신부님이 입는 수단은 권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수단을 입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팔을 걷어붙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의 개인적 영혼 구원에만 집착하면서 사회적 가난과 가난한 사람의 외침을 모른 체하는 사람은 가짜 그리스도인이라고도 하셨습니다. 2014년 한국 방문에서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손수 달고 광화문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교황님의 뜻을 받들어 수많은 가톨릭 사제와 주교들이 노란 리본을 달고 있습니다. 지금도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미사가 광화문에서 끊이지 않습니다.

 

사회교리

사실 최근 약 150년 동안 세계 가톨릭 교회는 사회적 가르침’(Social Teaching)이라는 주제를 착실히 발전시켰습니다. 교회가 세상 문제에 개입할 때 어떤 기준으로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성경과 전승에 기반한 성찰이 수많은 문헌에 담겨 전해집니다. 이 사회적 가르침은 사회교리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신자들에게 교육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회교리 학습을 세계 신자들에게 무척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사목

정통적 실천은 정통적 사목(orthopastoral 정통적 목회)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사회교리를 기반으로 현재 가톨릭 교회는 세계의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그리스도교적 입장을 제시하려고 노력합니다. 세계적인 분쟁이나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여성, 진화론, 생태, 이주, 무역, 금융, 인종, 종교간 대화, 각종 내전 등등의 문제에 대해 세상과 열린 태도로 대화하고, 복음적 식별과 실천의 기준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현재 가톨릭 교회는 세계적 차원이나 국가적 차원이나 지역적 차원을 불문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가난과 차별이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고 개입하는 교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회교리는 21세기의 정통적 사목(정통적 목회)의 기준입니다.

 

한국 교회의 평화 사목(목회)

한국 가톨릭 교회는 이런 배경으로 한반도의 다양한 일에 개입합니다. 국내 문제는 물론 남북문제도 사회교리에 기반하여 식별하고 그리스도교적으로 개입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남북의 대화와 교류를 더욱 확대하여 상호간에 신뢰와 친근함을 점차 늘려가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예수님의 시각으로 볼 때, 영원한 적이 있을까요? 복음적 형제애에 한계가 있을까요? 우리 남한 교회는 가난한 북한 주민에게 야전병원이 될 수 있을까요? 남한의 사제들에게서 가난한 북한 동포의 냄새가 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교는 충분한 사목적(목회적) 지원을 남북한 주민에게 제공할 수 있을까요? 사회교리의 정신으로 끊임없이 기도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응답하시리가 믿습니다. 아마도 21세기에 가톨릭 교회의 기도와 사회적 실천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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