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6년 성서와 문화

유교의 평화론 ? 한반도 평화의 맥락에서

 

전병술 (건국대 연구교수, 동양철학)

 

인간은 늘 태평성대를 꿈꾸며 살아왔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요·(·) 시대를 태평성대로 여겼다. 이 시대는 만물이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공존하며 질서와 조화를 이루듯 순리에 따라 정치를 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제왕의 힘이 작용하는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유가에서는 이 시대를 대동 사회가 실현된 시대였다고 믿었다. ‘대동 사회는 집집마다 대문이 필요 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충만한 시대였으며 복지가 실현된 시대였다. 하지만 이는 노자가 말한 소국과민에서나 가능한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실현 가능한 바람직한 사회는 예의와 규범을 통해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는 소강 사회였다. 평화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소강을 이루기 위한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 소강을 이루는 길 가운데 묵가의 겸애(兼愛)’와 유가의 인의(仁義)’의 길이 도드라졌다. ‘겸애는 인간은 그들이 세계 어디에 살든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따라서 전체 인류의 인간애에 의해 수립된 도덕 공동체에 일차적으로 충성해야만 한다는 세계 시민주의와 같은 맥락에 서 있다 하겠다. 반면 맹자는 인의를 강조하며 내 어르신을 섬기고 그 마음을 남의 어르신에게 확장하며, 내 아이를 사랑하고 그 마음을 남의 아이까지 확장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공자와 맹자의 정신을 계승한 유가는 사랑의 마음이 개인에서 출발하여 가족, 친척, 이웃을 거쳐 모든 인류에 이르러야 함을, 다시 말해 자신의 도덕성을 자각하고 타자의 가치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타자를 관통해서 가장 바깥쪽 경계까지 도달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이 정리된 후 동아시아는 줄곧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에 따라 유가 사상을 토대로 사회를 구성하고 운용하였다. 공자의 인간다움의 총화로서의 ()’을 계승한 맹자는 어린아이가 물에 빠지는 상황을 목격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그 때 즉각적으로 느끼는 안타깝고 두려운 마음과 어린아이를 구하는 무조건적인 행동에서 인간의 본성의 선함을 밝혔다. 공자와 맹자의 사랑의 마음은 성리학 시대에 접어들면서 타자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공감으로 확대되고, 인간에서 뭇 생명, 인류가 성취한 문화의 붕괴에 대한 아픔, 나아가 생태계 전체와의 교감으로 확장되었다.

 

조선건국과 함께 유가문화는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으로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내성외왕(內聖外王)’, ‘수기치인(修己治人)’ 등으로 개괄되는 유학이념은 개인의 도덕성 자각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실천을 표방하였으며, 위로부터의 감화와 토론을 통한 설득을 중시하였다. 하지만 자기중심적 정의관이 뚜렷했던 유가는 설득에 실패할 경우 상대방을 이단으로 몰고 가기도 하였다. 맹자는 무차별적 사랑을 주장하는 묵가와 극단적 개인주의를 주장하는 양주(楊朱)를 이단으로 배척하였고, 성리학 시대에는 이에 덧붙여 불교와 도교를 이단사설로 배척하였다. 또한 내부적으로 적서(嫡庶)의 구분, 출신 지역의 구분, 치열한 학문적 논쟁과 이에 따른 당쟁의 심화, 외세침략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척화(斥和) 논쟁 등이 조선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국가적 논쟁으로 치달아 모든 국민들을 아프게 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자본주의의 무한경쟁 체제 하에 이윤의 극대화가 선이라는 믿음 하에 탐욕과 교만, 좌절과 불신이 교차하면서 계층 간, 지역 간, 노사 간, 이념 간, 세대 간, 종교 간 갈등이 증폭되어 폭력적인 양상을 띠고 표출한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와 공존의 길로 가기위해서는 유가 본연의 ()’의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는 나의 입장이 아닌 타자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태도다. 나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타자의 모습이 바로 내 자신의 모습임을 뼈저리게 자각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동당벌이(同黨伐異)’식 패거리 문화를 벗어던지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가운데 조화를 이루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을 통해 희생을 줄이고 사람을 살리는 길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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