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6년 성서와 문화

중국과 기독교 (3)

몽골시대의 기독교

 

안경덕 (몽골 선교사, 경영학)


몽골 땅에 살던 투르크/몽골계의 부족들이 서진(西進)함에 따라 동방교회는 중앙아시아에서 5세기 말쯤 이들과 처음 접촉하게 되었다. 그 뒤 위구르족, 644, 781년 투르크족 일부가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1007년 동방교회 선교사들이 케레이트 부족(지금 울란바타르를 거점으로 몽골 중부와 고비 사막까지를 차지하였던 당시 최대의 몽골 부족)을 집단 개종시켰다. 몽골 땅의 부족들 대부분은 텡그리(하늘의 신)와 자연현상을 섬기는 샤머니즘에 빠져 있었고 무당(qam)의 역할을 중시하는 현세적인 삶을 살았기에, 내세를 강렬히 지향하는 기독교 같은 다른 종교에 대해 상당히 관용적이었다. 몽골의 칸들은 신앙적이기보다는 현세적이었으므로 어느 종교를 불문하고 통치에 도움을 주는 종교라면 이를 수용하였다.

1254년 대칸 앞에서 벌였던 무당, 불승, 무슬림 지도자, 도사, 동방교회 지도자, 또 프란체스코회 수사까지 참석한 종교토론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성격의 종교모임이었고, 몽골 통치자들의 종교관을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동방교회 또한 오랜 선교경험을 통해서 유연성을 보였기 때문에 몽골족은 고유한 관습을 버리지 않고도 기독교를 수용할 수 있었다. 칭기즈칸 이전의 몽골 주요 부족들 대부분이 기독교를 수용했던 것은 실크로드를 통한 동방교회의 선교가 크게 꽃을 피웠다는 역사적 증거이고, 이것은 앞서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의 경교 이야기에서 설명한 적이 있다. 사실 몽골족의 기독교 수용은 혼합주의적 수용의 한계라는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두고두고 논의할 사항이기도 하다.

몽골시대의 기독교를 말할 때, 칭기즈칸 가문으로 들어간 동방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관심을 끈다. 지금 울란바타르 도심 남쪽 15km 투르 강변에서 케레이트 왕국의 궁전 터가 발굴되었는데, 거기에는 교회당의 흔적도 있다. 칭기즈칸은 양부인 케레이트 부족의 마지막 칸 토그릴의 질녀 셋을 왕가로 불러들여, 첫 질녀는 자신의 아내로, 둘째는 맏아들의 아내로, 셋째를 막내아들 톨루이의 아내로 삼게 했다. 독실한 신자였던 세 자매를 통해 기독교가 몽골 황실에 진입한 셈이었다. (칭기즈칸의 어머니 호엘룬도 기독교인이었다.) 세 자매들 가운데 막내인 소르각타니 베키가 가장 영향을 준 역사적 인물인데, 바로 대칸 몽케(1251-59), 쿠빌라이(원세조, 1260-94), 훌라구(이란 일한국, 1256-65)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몽골 황실의 공주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많았고, 충렬왕(1274-1308) 이후 고려로 시집 온 원의 공주들이 대부분 기독교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신라가 접촉이 많았던 당나라 때 신라의 학자와 승려가 장안에서 기독교를 접했다는 것은, 기독교의 수용여부를 떠나,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원나라 때 동방교회는 수도 칸빌리크(북경), 옹구트의 수도 올론 솜(내몽골), 양자강 하류지역(진강, 천주)에서 크게 유행하였으나, 지배층인 몽골인들과 유색인들이 다수였고, 중국인 기층으로는 퍼지지 못했다. 당시 교황들과 몽골 대칸들 사이에 외교문서와 사신들을 통한 접촉이 여러 차례 있었고, 마르코 폴로 같은 상인들의 왕래도 활발하였는데, 이 때 교황청에서 몬테코르비노(Montecorvino) 주교를 북경에 보내어 천주교를 전하게 했다. 중국 최초의 가톨릭 전교로, 마테오 리치(Mateo Ricci)보다 300년 먼저였다. 주교는 북경에 성당과 고아원을 세웠고, 내몽골 동방교회 지역에도 두 번째 성당을 지었다(이 흔적이 남아있다). 불행하게도, 천주교는 새로운 신자를 겨냥하지 않고 동방교회 신자들을 집중적인 선교의 대상으로 삼아, 기독교 안에서 경쟁을 한 셈이었다. 단명으로 끝난 원제국의 멸망과 함께, 중국 역사상 가장 수구적인 왕조인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중국에서의 기독교는 급작스런 쇠락의 길을 걸어, 흔적조차도 거의 사라지게 되었고, 신자들은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동방교회의 꽃은 몽골제국의 다른 곳, 바로 이라크와 이란에서 피어났다. 지금의 내몽골지역인 옹구트 기독교 왕국의 수도사 라반 사우마(Rabban Sauma)와 그의 제자 마르코스(Markos)가 북경 근처 방산(房山) 십자사(十字寺)라는 수도원에서 수도를 하다가 예루살렘 순례 길에 나선 것이 발단이었다. 이들이 동방교회 수장인 총대주교좌가 있던 바그다드에 도착하자 총대주교 자리가 공석이 되었고 주교들은 마르코스를 야발라하 3(재위 1281-1317)라는 이름으로 총대주교로 선출하게 된다. 몽골인이 동방교회의 수장이 되어 36년 동안 동서관계의 핵심인물로 떠오르게 되었고, 또 이라크-이란 지방의 교세도 크게 확장되는 전성기를 맞았다. 그의 스승인 라반 사우마는 일한국의 사절로 로마와 파리를 방문하고 교황과 프랑스 왕, 영국 왕을 만나 공동의 적인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를 무너뜨리고 십자군 전쟁을 승리로 종결짓는 중대 사항을 논의하기도 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겠지만, 이 동방교회 수도사가 앞장섰던 동서외교가 합의점을 찾아 십자군과 몽골군이 협공을 통해 승리하고 또 결과적으로 동서교회(가톨릭과 동방교회)에 승리를 가져다주었다면, 지금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몽골의 일칸 아르군은 외교적 교섭이 성공하면, 정치적인 약속이기는 하지만, 기독교(동방교회)로 개종하겠다는 언질을 교황에게 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중동의 종교가 기독교가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엄청난 가정일까? (다음 회에는 사제왕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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