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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와 유대인 - 김유동

성서와문화 2016.11.29 10:15 조회 수 : 3644

BC와 유대인

 

김유동 (전 문화일보 편집위원)

 

지난해, 2015년 크리스마스 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전국민을 향해 해피 할러데이!’ 라고 인사를 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메리 크리스마스!’였을 텐데 말이다. 미국에서 어쩌다 어린이용 잡지 National Geographic을 본 일이 있는데, 여기에는 늘 보던 BC 대신에 BCE를 사용하고 있었다. BC는 물론 Before Christ이고 BCEBefore the Common Era. 대통령의 인사와 BCE의 공통점은 Christ라는 말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BC를 처음으로 창시한 것은, 예수회 수사 페타비우스이고, BC가 유럽에서 일반화한 것은 18세기라고 한다. BC가 쓰인 역사는 300 년이라는 이야기다. 기독교인이 대다수인 이 나라에서 Christ라는 말을 회피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래서 나는 Christ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미국에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단정적으로 유대인이 영향력을 끼쳤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입김이 있었거나, 이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미국 정치자금에서 큰 몫을 차지하며 그들의 힘을 여지없이 과시하고 있다. 민주당의 정치 자금 전체의 약 60%, 유대감이 덜한 공화당에도 35%가 넘는 액수가 유대인에게서 나온단다. 미국의 전체 인구 중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2% 미만에 지나지 않지만, 미국의 100대 거부 중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32%에 이른다는 것이다.

1954년에 창설된 AIPAC(The 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는 유대인들의 최강의 로비 단체중 하나인데, ‘연방 의원의 70~80%AIPAC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 준다는 말도 있다. AIPAC 직원 대다수는 전문 분야의 고도한 정보도 제공하고, 연설문 원고 작성, 법안 작성과 의회 전술의 조언까지 해 주고 있단다. 굵직굵직한 자리에도 유대인들이 많이 올랐으며,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도 유대인의 손아귀에 있다.

이들의 막강한 힘의 위력을 보여 주는 실례를 보도록 하나 소개한다. 일본 文藝春秋사에서 나오는 월간지 <마르코폴로>나치 가스실은 없었다라는 기사가 실린 일이 있다. 미국 LA에 있는 유대계 인권 단체 SWC(Simon Wiesenthal Center)에서는 이에 항의, 이 잡지를 폐간으로 몰아넣는 등 세계의 잘못된 기사들도 감시한다. SWC가 작용해서 폴크스바겐, 마이크로소프트, 필립 모리스 같은 굵직굵직한 광고주들에게 광고 싣기를 거부시킬 수 있을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하다. 이스라엘에 불리한 언동을 하는 미 정치인을 선거 때 막대한 광고료를 들여가며 낙선시키기도 한다.

미국에서 색다른 느낌을 주는 차림새의 유대인들을 본 일이 있다. 이들은 검고 긴 의상 밑에 탈리스(tallith)를 입어 전체적으로 검은 느낌을 주며 젊은 나이에 수염도 기르고 양쪽 귀 앞으로 기다랗고 꼬불꼬불한 머리털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유대인 초정통파 사람이란다. 식사 때도 토라의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고, 외국인과는 결혼하지 않으며, 예배 볼 때, 우리나라 개화기의 교회처럼 남녀석이 따로 있다고 한다(정말일까?). 주일에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닌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의 한 갈래인 미국의 Amish들처럼 이들은 문명의 이기를 기피한다. 즉 자동차 대신에 말과 마차를 이용한다는 식이다.

초정통파가 아닌 정통파에 대해서는 우리도 잘 알고 있으므로 설명이 필요 없겠는데, 이 정통파에서는 초정통파와는 달리 수염에 대해 관대하단다. 그리고 외국인과의 결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유대인 사회에는 그 반대로 파격적인 개혁파라는 것도 있다. 라비 카우프만 콜러(Kaufmann Kohler)가 기초한 피츠버그 강령은, ‘근대 문명의 사고와 습관에 어울리지 않는토라의 법을 모두 부인했는데, 그것은 1937부터 개혁파 유대교의 표준 교의가 된다. , 식사, 청정, 의복에 관한 낡은 규정을 거부, 유대인은 이제 민족이 아니라, 종교 공동체라고 단언한 것이다. 그리고 부활과 천국과 지옥을 부정하고, 시온으로의 귀환을 포기했으며, ‘메시아니즘은 근대 사회를 향한 진실과 정의, 공정을 추구하는 노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를 향해 다른 종교와 선량한 사람들과 협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넓고도 넓은 미국에서 현실적으로 살아가면서 신앙과 생활을 양립시키고 싶은 사람들은 토라와 실생활을 현실적으로 절충하며 산. 절충파라는 것이다. 이들은 토라를 가능한 한 지키면서 삶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각 가정에서는 음식물의 계율을 제대로 지키지만, 사회 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이를 어기는 일도 묵인한다든지, 율법에서 일하기를 금하는 안식일에 자동차 운행하는 일도 인정한다는 식이다.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영향으로, ‘유대인하면 으레 돈만 밝히는 자린고비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예화를 소개한다. 미국의 섬유 메이커 몰덴 밀즈사가 1995년 말 화재를 당했다. 사주인 아론 페어스타인은, 대책도 없이 지낼 3000명의 히스패닉계 종업원들에게 3개월 후의 조업 재개를 약속하면서, 3개월 동안의 건강 보험, 급여, 보너스의 부분 지급을 보장해 주었다. 이 일을 놓고 모든 미디어가 ‘90년대의 성자라고 칭송했다. 그는 정통파 유대교도였는데, ‘도덕적 혼돈이 닥쳤을 때, 사람으로서 어찌해야 할 것인지 최선을 다하라는 옛 현자 힐렐의 말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의 정치인, 경제인, 법조인 등에게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옆에는 또 다른 명소인 Grand Teton이 있다. 널따란 벌판을 가로질러 가면, 기막힌 절경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눈앞 호수 건너에 알프스처럼 흰 눈을 인 높은 산봉우리들이 고고하게 늘어서 있는 광경을 직접 바라볼 수 있다. 이 절경은 호수에 비치는 모습 때문에 좀 더 신비스럽게 강조된다. 이 지역 일대는 유대인인 록펠러 집안의 것이었는데, ‘국립공원으로 삼아 준다면이라는 조건 하나로 나라에 헌납했고, 미 정부에서는 감사의 뜻으로 이 곳으로 통하는 도로 이름을 록펠러 2세 도로로 붙였다.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지내고 있지만, 화해를 위한 시도도 있다는 사례를 일본 잡지 文藝春秋(042월호)에 실린 秋島百合子의 글을 간추려서 소개한다. 예루살렘과 텔아비브 중간에 이스라엘 국적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이 공존하는 마을 네베 샬롬/와하트 아 살람이 있다. 이사야서에서 취한 평화의 오아시스라는 뜻인데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병기해 놓은 것이다. 1972년 성 도미니코회 수도승이 창설한 것으로, 현재 47가구, 200명이 살고 있고, 140가구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들은 평화 공존을 갈망하는 리버럴한 사람들로서, 과반수가 마을 바깥에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의사 같은 전문직과 화이트 컬러의 중산 계급이 많다. ‘유대인 + 아랍인부부도 한 쌍 있다.

이 곳에서 힘을 쏟고 있는 것은 교육이다. 유대인과 아랍인 어린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공부하는데, 히브리어, 아랍어 등으로 수업을 한다. 300명 중 9할은 근린 유대인 사회, 아랍인 사회에서 통학하고 있다. 대학, 법률가 등과 협력, ‘평화 학교도 열고 있다고 한다. 평화를 위한 이 노력이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지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시도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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