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6년 성서와 문화

문학에 비친 복음 (5)

<주홍 글씨 The Scarlet Letter>

이상범 (칼럼니스트, 신학)

 

17세기 중반, 식민지 보스턴의 교도소 앞에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다. 문이 열리면서 젊은 여인이 걸어 나온다.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헤스터 프린이라는 이 여인은 남편과 헤어져 있는 사이 불의의 아이를 낳았기로 매사추세츠 주법에 따라 사형에 처해질 것인데, 재판관들의 자비로 세 시간 동안 처형대 위에 서 있게 된 것이란다. 일생을 가슴에 간통의 머리글자 “A”를 붉게 새겨 붙이고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도 했다. 지금 헤스터의 한 쪽 가슴에는 선홍빛 천에 금실로 수놓은 “A”가 여름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다른 쪽 가슴에 안긴 아기는 차라리 가여운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었다.

무리 중에 낯선 중늙은이가 인디언 추장과 함께 서 있다. 그는 헤스터의 남편 로저 칠링워드. 오늘 막 보스턴에 도착한 것이다. 헤스터도 군중들 틈에서 남편의 모습을 본다. 나이 많은 목사 윌슨과 젊은 목사 딤즈데일이 번갈아가며 죄지은 상대가 누구인지를 자백하라고 다그치지만, 헤스터는 거부한다. 그러나 감방으로 돌아온 헤스터는 흥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사의 명령으로 의사의 치료를 받게 하는데, 나타난 의사는 남편 로저 칠링워드였다.

영국에서 나이 지긋한 한 학자가 보스턴으로 이주할 양으로 젊은 아내 헤스터를 먼저 보냈지만, 자신은 뜻하지 않은 사정으로 2년 후에야 보스턴에 올 수 있었는데, 바로 그날 처형대에 서 있는 아내를 보게 된 것이다. 분노와 증오에 불타오른 남편은 집요하게 아이 아버지의 이름을 추궁하지만,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7년의 세월이 흐른다. 그 사이 사생아 펄은 예쁘게 자랐고, 이웃을 향한 헤스터의 선행은 그녀의 가슴에 붙어있는 주홍 글씨 “A”가 어느덧 “Adultery”가 아니라 “Angel”을 의미하게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칠링워드는 노회한 웃음을 띠우며 말한다. “그 사나이는 어차피 내 손안에 들어오고 말 것. 나의 복수는 죽이거나 사회로부터 매장하는 따위가 아니라, 영혼의 보복이 될 것.”이라고.

노인이 딤즈데일 목사와 알게 된다. 목사의 덕망은 사람들의 존경을 모으고 있는 데도, 젊은 목사의 몸이 야위어 가는 것이 안타까워 교인들이 칠링워드를 주치의로 모셔온 것이다. 칠링워드는 딤즈데일 목사야 말로 헤스터의 간통 상대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음험한 수단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헤스터가 펄과 함께 지사의 집에서 바느질 주문을 받아오는 길에 딤즈데일과 마주치게 되어 셋이 손을 잡고 처형대 위에 올라서는데, 그 장면을 칠링워드가 목격하게 된다. 의사인 그도 마침 지사의 집에 왕진을 다녀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이후 칠링워드는 더욱 집요하게 젊은 목사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위험을 감지한 헤스터가 전도사의 집에서 돌아오는 젊은 목사를 숲속에서 기다렸다 만나서는 둘이 유럽으로 도망갈 것을 의논한다. 그러나 낌새를 챈 칠링워드가 미리 그 배의 표를 매수해버렸다.

딤즈데일은 새 지사가 부임하는 날, 당선축하 설교를 마친 후 공중 앞에서 일체의 죄를 고백하고는 숨을 거둔다. 딤즈데일의 고뇌를 즐기며 그 고뇌가 한없이 연장되기만을 바라던 노회한 악마 칠링워드는 허탈해한다. 얼마 후 그도 세상을 하직한다. 막대한 유산을 헤스터 모녀에게 물려주고. 혼자 남은 헤스터는 봉사활동을 이어간다.

청교도 정신이 인간의 삶을 지배했던 미국 식민지에서, 남녀의 삼각관계만큼 좋은 소설 소재는 없었을 것이다. 목사의 신앙적 고투와 헤스터의 인간적 성장을 조화시키면서, 반대편에 복수 일념에 스스로를 갉아 먹어가는 노학자의 집념을 대비시킨 수법은 놀라웠으리라. 퓨리턴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퓨리터니즘을 드높이려는 이중적 의도가 공감을 얻어냈을 지도 모른다.

청교도 사회의 성문화된 도덕률은 <주홍 글씨>에서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애정의 도전을 받는다. 죄를 범한 남녀는 그들의 시련을 통해서 순화되지만, 다른 한편 현실과 맞섰기로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성문법과 사회분위기에 올라타고 독사 같은 사디즘을 만족시키려 했던 칠링워드는 비극으로도 가릴 수 없는 결말을 맞게 한다.

호든(Nathaniel Hawthorne)은 매사추세츠 세일럼의 청교도 가문에서 태어난다. 선조가 그 악명 높은 세일럼 청교도들의 마녀재판에 깊이 개입했었기에, 작가는 세일럼 청교도의 역사와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조상의 문제는 곧 자신의 문제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 옛날 청교도에게 마녀들은 용서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나, 세월이 흐른 지금, 작가에게 있어, 조상들이 마녀들에게 입힌 해악은 떨쳐버릴 수 없는 심리적 강박관념으로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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