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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크리스마스 - 김기석

성서와문화 2016.11.29 10:10 조회 수 : 3646

다시, 크리스마스

- 1:46-56 -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주님의 은총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부르는 기쁨의 노래가 지금도 세상 구석구석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도 울려 퍼지기를 빕니다. 오늘만큼은 서로 대립했던 모든 주체들이 날카로워진 마음을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쟁과 테러로 찢긴 세상에, 살기 위해 사선을 넘나들어야 하는 난민들에게, 정치 갈등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이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우리는 목 놓아 대림절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곧 오소서 임마누엘’.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역사의 그늘 아래 살면서 좋은 세상이 열리기를 학수고대했던 이들의 심정과의 동일시가 일어났습니다.

 

'마리아의 찬가'로 알려진 본문 말씀에는 공평함이 없는 세상, 불의와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을 극복하고 생명과 평화가 넘실거리는 세상을 이루고픈 모든 이들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기 몸을 빌어 하실 일을 내다보며 기쁨의 찬가를 불렀습니다. 오시는 분은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깊은 침묵에 잠겨 계신 분이 아닙니다. 고통은 본래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세상의 이치를 가르치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는 분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제 힘에 도취되었던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천대받던 이들을 높이는 분, 주린 사람은 먹이시고, 남의 배고픈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던 이들은 빈손으로 떠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맞이한 분의 참 모습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시기를 헤롯 왕 때’(2:1)라고 말하고, 누가복음은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2:1)라고 명토박아 말합니다. 이것은 2016년 혹은 2020년처럼 연도를 특정하기 위한 진술이 아닙니다. 예수님 탄생의 의미는 그런 와 연결시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권의 정통성을 의심받던 헤롯 대왕은 로마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황제의 이름으로 도시를 건설하기도 하고 막대한 세금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자기 지위에 불안을 느낀 그는 수많은 토목공사를 벌임으로써 입지를 다지려 했습니다. 물론 그 일에 필요한 비용은 가난한 백성들에게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중의 삶은 황폐하게 변했습니다. 헤롯에 대한 민중들의 원망은 극에 달했습니다. 마태복음에 따르면 메시야가 태어났다는 말을 들은 헤롯이 몹시 당황했다고 말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헤롯은 군인들을 보내 베들레헴 인근에서 태어난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정통성이 없는 권력자의 두려움이 그런 폭력을 낳았습니다

 

이처럼 첫 번째 성탄절 이야기는 고요하고 목가적이고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문득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성탄 찬송가마다 그런 현실이 깨끗하게 소거되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성탄 찬송에 주로 등장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완전하고 흠이 없고 순결한 아기 예수, 고요한 밤, 구유, 목자, 동방박사, 죄 사함, 기쁨, 마귀 권세 이김, 천사들의 노래. 성탄절이 갖는 사회적·정치적 의미는 사라지고 종교적인 의미와 행복의 이미지만 남은 것이 아닌가요?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병든 자, 귀신 들린 자,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치유하고 온전케 하고 북돋워주셨습니다. 땅에 붙들려 사는 이들에게 하늘을 가져오셨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현실을 하늘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현실 속에 하늘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탄절에 누군가로부터 받을 선물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성탄절의 유일한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에 오시면 우리는 새 사람이 됩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모순을 짊어진 채 거리에 나선 이들, 지하보도에서 잠을 청하거나, 냉골에서 긴 밤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 절망의 심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자포자기적인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공포에 질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 주님은 우리의 몸을 빌어 그런 이들 가운데 임하고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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