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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독교 문학(2) - 엔도 슈사쿠와 함께 읽는 성서 이야기Ⅱ


김승철 (일본 난잔대 교수, 종교철학)


엔도 슈사쿠(遠藤周作)가 쓴 초기의 평론작품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존재는 순화(純化)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존재는 더 나아가서 성화(聖化sanctification)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의 존재에 묻어 있는 더러움-?죄라는 말로 통괄할 수 있을까요?--을 제거하여 깨끗이 되려는 것을 순화 혹은 정화(?化)라고 한다면,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바는 더러움을 제거하려는 차원을 뛰어넘어서 더러움이 더러움 그대로 거룩한 차원으로 연결되어 전화(轉化)된다는 뜻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엔도는 “인간의 냄새가 나는 정적과 평안”을 추구했던 조르주 루오(1871-1958)의 그림을 좋아했습니다. 엔도에 따르자면 루오는 현실적인 “인간의 생활을 초월하여”  “더러움도 없고, 악의 그림자도 없이 일체가 깨끗해진” 차원에서 현실의 고난과 어두움이 거룩해진다고 보는 중세적인 종교의 차원을 한 번 더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런데 루오가 추구하였던 “인간의 냄새가 나는 정적과 평안”은 그리스도에 대한 루오의 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엔도는 <루오 속의 예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인간적인 추악함과 모든 인간적인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눈이, 분노가 아닌 사랑의 눈이 그것을 보고 있다는 신앙이 루오의 마음을 지탱해 주었다. 창부와 피에로는 이렇게 해서 그의 작품 속에서 조금씩 정화되고, 정화는 성화로 변하고, 피에로는 이윽고 예수의 원형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혐오하는 것에 대한 정화로부터 성화에로 나간다는 것이 루오의 그림의 성숙과정이다.”


이 글에서 우리들은 엔도가 말하는 존재의 성화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존재의 성화란 현실 한복판에서 현실을 꿰뚫고서 현전하는 존재의 근원과 합일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현실의 존재구조가 자각됨으로써 철저하게 현실이 긍정되는 과정입니다. 현실의 추악함과 더러움과 욕망을 부정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전화시키는 시선을 그는 루오에게서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엔도는 같은 글에서 루오의 그림과 중세의 안젤리코의 그림을 비교합니다.


“안젤리코의 <수태고지>(受胎告知)가 지니고 있는 조용함과 종교적 평안은 이른바 인간의 생활을 뛰어넘는 것이다. 거기에는 더러움이란 전혀 없고 악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일체가 깨끗해지고, 일체가 성화되어 있어서 우리들은 그것을 보면서 그 지고함을 동경하지만, 동시에 자신과 그 그림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루오의 <드 프로푼디스>(de profundis)에는 우리들이 거기에 스스로를 투영할 수 있는 인간적인 슬픔이 섞여 있다. 매일매일의 노동의 땀 냄새와 피로와 두려움, 그 밖에 모든 인간적인 괴로움과 냄새를 세 사람의 남녀로부터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수태고지>의 고요함은 이른바 거룩한 세계의 지복이 만들어내는 평안이지만, <드 프로푼디스>의 그것은 인간의 냄새가 나는 정적과 평안이다.”


루오에 대한 엔도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엔도 자신이 소설을 통해서 추구했던 것, 즉 현실적 인간의 동반자이신 예수에 대한 추구와 일치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루오는 그러한 의미에서 현대적인 기독교 예술가이다. … 중세의 예술가들이 인간을 초월해서 거룩한 것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던 것과는 달리 루오는 인간 속에서도 거룩한 것의 아름다움을 봄으로써 그것을 파악하였던 화가였기 때문이다. 루오의 붓에 의해서 피에로도 창부도 그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정화되어 예수에게까지 높여진 것이다. … 루오의 예수는 서구의 많은 종교화가가 묘사하였던 것과 같은 힘 있고 영광에 휩싸여 있는 승리의 예수가 아니었다. 혹은 또 근대 화가들이 그렸던 고뇌와 절망과 고독의 예수도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동반자이다. 동시에 인간의 슬픔을 등에 지고 있는, 볼품없는, 슬픔에 가득 찬 예수인 것이다.”


여기 자신의 눈물로 예수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은 여인이 있습니다(누가복음 7장 36-50절).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것은 그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용서받는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47절) 이 구절을 엔도는 다음과 같이 읽었습니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많은 용서를 받았다.”


“많이 사랑한 여인.” 마을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 여인의 많은 애욕(愛慾)에 대한 비난이었습니다. 하지만 애욕이야말로 그 여인이 하나님을 아는 방법이었다고 엔도는 보았습니다. 예수의 사랑의 시선은 그 여인의 애욕에서 신을 향한 갈망을 읽어내셨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어떤 사상가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가 신의 신비에 매료되는 것은 우리들의 육체적 욕망을 통해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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