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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비친 복음 (4) - 앙드레 지드 <좁은 문>

 

이상범 (칼럼니스트, 신학)

 

한편 아리사의 일기에서는 이런 대목도 더듬을 수 있다. “가엾은 제롬, 만약에 조금만 거들어 주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을 것이고, 나도 그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었다면……

 

일기를 불 속에 던져 버리려는 순간, 경고하듯 그 무엇이 나의 손을 멈추게 했다. 이것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다. 제롬에게서 이것을 빼앗을 권리가 내게는 없다. 오로지 그를 위해서 쓴 것인데....... , 주여,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입에 담지 않고 최후를 맞이하게 하소서......”

 

이렇게 그녀의 일기도 끝을 맺는다. <좁은 문>에서는 이야기꾼으로 설정된 제롬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끝부분에 아리사의 일기를 첨부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간절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자상하게 드러나게 한 것은 작가의 솜씨를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윤곽을 가늠이나마 할 수 있게 해 준다.

 

한 비평가가 말했다. “아리사의 순결과 하나님께 다가가려는 그녀의 몸부림에 눈길을 빼앗긴 나머지, 이 작품을 마치 퓨리터니즘을 찬양하는 작품으로 인정하려 드는 독자들이 적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지드의 작품세계는 테제와 안티테제가 공존하면서 독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좁은 문>의 작가는 일방적으로 단정하고 설득하려들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표면에 드러나는 테제보다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안티테제에 역점을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드와 친구이기도 한 시인 폴 클로델((Paul Claudel,1868-1955)<좁은 문>을 읽고 편지를 썼다. 멀리 중국 대련에서. “그대의 <좁은 문>의 끝 부분을 보게 되면서 나는 심히 곤혹스런 감동을 느끼고 있소……. 감탄할 수밖에 없는 문체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뜨거운 술과 같은 환상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소....... 이제는 그리스도교에 관한 문제로 들어가 봅시다. 거기에는 많은 의문이 남겨져 있소. 당신의 사상은 무엇입니까? 그 작품은 그리스도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대는 하나님을 단지 잔인하고 말없는 고문 꾼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까? 그대의 아리사, 청결하지만, 벌거벗은 벽 속에 갇힌 채 절망적으로 죽어가는 아리사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참고로 클로델은 가톨릭신자이다.)

 

클로델의 말은 이어진다. “하나님의 선물이란 그분의 존재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한 쪽을 거절하는 것은 다른 쪽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관심을 가지지 않고, 또 가지려 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슬픈 애정입니다! 나에게는 부드러우나 처참한 부르짖음이 들려옵니다. ‘아리사!’ ‘아리사!’ 당신의 작품 속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아픈 흔적을 남기고 찢겨나간 영혼의 배후에 작가 지드의 비뚤어진 정신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영혼으로부터 육적인 것을 모두 잘라버리고, 정신으로부터 자연성을 배제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은 아니라고 말한다. 하나의 페르소나 속에 신성과 자연성, 영혼과 육체가 조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보았다. 극도의 금욕주의는 양자의 균형과 조화를 깨뜨려버리는 것.

 

육과 관계가 없는 곳에서 영혼의 미덕만을 추구하는 노릇은 역으로 육의 쾌락주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 영적인 사랑이 신비적인 경지를 찾아 헤맬 때 육적 충동이 오히려 영혼의 제약을 벗어나서 영혼이 간섭할 수 없는 곳에서 쾌락을 탐하기 시작한다는 것.

 

클로델은 현세를 초탈한 아리사의 금욕주의의 배경에 이러한 방자한 쾌락주의를 감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지드는 말했다. “나의 문제는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인가 인간인가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나는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차차로 인간의 목적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1949년 라디오방송)

 

지드가 <좁은 문>을 발표한 것이 1909년 그가 40세이던 해였고, 그가 라디오방송을 통해서 클로델의 의견에 어느 정도의 동의를 나타내면서 인간의 목적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 말한 것은 1949년 지드가 생을 마감하기 얼마 전인 76세 때였으니, 그 나이가 되어서야 작가는 인간의 목적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문제에 회답을 줄 수 있게 된 것일까.

 

프로테스탄트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지드에게 청교도적인 경향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고, 그러한 관점에서 그의 영육분리의 사상을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지드의 영육분리의 경향을 프로테스탄티즘의 탓으로만 돌려 버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없지 않다. 오히려 그의 성도착(性倒錯)적 경향에서 따져 보아야 할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드의 다른 작품들에서 논의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얼핏 죄로 얼룩지고 있는 것 같은 그의 적잖은 작품들에서 쉽사리 구원의 빛을 찾아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진리를 구해 몸부림치는 한 인간 내면에 새겨진 알뜰한 흔적들은 읽을 수 있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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