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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 이주연

성서와문화 2016.05.20 19:49 조회 수 : 1469

감사

 

이주연 (목사, 산마루교회)

 

지난 해 한 동안 견딜 수 없는 피곤함을 겪은 일이 있었다. 새벽 설교 중에 목소리도 내기 힘들었으나 청년들과 캄보디아 평화캠프를 다녀왔다. 그리고 이웃 교회 목사님 사모님이 폐암 3기라 하셔서 폐암 3기 전문명의로 소문이 난 삼성병원 암센타 심 원장님에게 진료 협의 차 모시고 갔다. 심 선생님은 어느덧 30년 세월 함께 지내온 사이이다. 심 선생님은 내게 건강검진을 하자고 하며 주치의를 소개시켜 주셨다. 진찰실에 찾아가니 의사 선생님이 간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한다. 며칠 후 결과를 보러 갔더니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한다.

암입니다!”

그렇군요.”

나는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간 중심부에 큰 자국이 보였다.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게 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찾아 들었다. 나의 대답을 들으며 의사 선생님은 내가 잘못 들었거나 암에 대하여 잘 모른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다시 정색을 하면서 간경화에 암까지 붙은 모형을 보여주며 이렇게 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준다. 정말 흉물스럽기만 하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왜 이러한 평화로운 마음이 드는 것일까? 자신을 살폈다. 평생에 링거 주사 한번 맞지 않고 살아오면서 누군가 아프다고 입원하면 찾아가 기도해 주었다. 그리고 나올 때면 그때마다 늘 빚진 마음이었다. 그간 목회 30여 년 동안 많은 암병을 겪는 이들과 인생을 이야기하고 임종을 앞둔 이들과 인생을 정리하고 기어코 장례식을 하며 헤어질 때마다 빚진 마음이었다. 대신 아파 줄 수도 없고, 게다가 병원 침대에 누워본 일도 없으니 내가 너무나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왠지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 때문이리라. 이젠 됐다, 빚을 다 갚았다는 생각이 찾아 들었다. 한 줄기 빛처럼! 그리고 알 수 없는 평화로움이 더욱 밀려들었다.

 

나는 삼성병원을 빠져 나와 교회를 향하여 차를 몰았다. 청담대교로부터 마포대교에 이르는 강변도로는 이전의 도로가 아니었다. 봄날의 한강과 하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이윽고 강변을 달리며 생각들이 이어졌다. “아 이생에서 빚진 것은 어떻게 한담!” 나를 위하여 희생하고 도움을 준 사람들, 언젠가 갚을 날 있으리라 생각했었는데, 그 언젠가가 미룰 수 없이 갑자기 이렇게 닥치는 것이구나! 먼저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은 어언 혼인 3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20년이 되던 해에 돌이켜보니 둘이서 서로 이사한 것이 18번이나 되었었다. 별난 인생을 지어왔고, 나는 주의 일을 한다는 이유에서 내게 우선권이 주어졌고, 아내는 늘 나를 위하여 희생하였다. 게다가 나는 늘 쌓아 올린 것을 스스로 훼파하며 순례의 길을 가겠다 한 것이 방황과 다름없는 인생살이였으니.

마음을 사로잡았던 낱말들이 다시 떠오른다.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인생은 다리이니 다리 위에 집을 짓지 말라.” 그리고 나를 도운 이들, 성도들, 무수히 많은 만남들! 그렇게 까닭도 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만나서 도움 받고 섬김을 받아왔으니 이 큰 빚을 어찌하랴!

마음속에서 뚜렷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젠 빚을 갚고, 함부로 섬김을 받지 않도록 삼갈 것!”

흐르는 강물을 바라다보는데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슬픔을 남기게 되었구나!"

하지만 어찌하랴. 이는 이생에서 누구나 겪으며 가야 하는 통과제의인 것을! 나 역시도 이를 겪으며 인생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였지만 이것이 주께로 가는 다리가 되지 않았던가! 어머니마저 땅에 묻고 인생의 답을 찾아 간 곳이 신학교였고, 결국 그 길에서 답을 얻게 되지 않았는가? 절망은 곧 희망을 낳지 않았는가!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강변과 하늘과 검푸른 한강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저 멀리서 흘러간다. 눈에 보이는 풍광들이 시제가 과거형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지구의 추억들이 펼쳐지고 있구나! 달리는 강변은 황홀한 꿈결이 되어버렸다.

 

늘 하던 설교 한 토막이 떠올랐다. “내일은 사람의 손 안에 있지 않다. 우리에겐 오직 오늘만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 오늘을 살자! 그리고 더욱 단순하게 살자. 그리고 감사하자. 이미 주께서 주신 것이 그 얼마인가? 감사하자. 목회도 욕심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진정한 목회는 가난한 마음으로 단순히 해야 할 일이다. 목회의 그 주권을 주님께 확실히 맡기고 인도하심만을 따르자. 주의 일이니 주께서 하시지 아니하겠는가! 그저 단순히 순종하며 감사하며 따르자.”

어느덧 차는 교회에 도착했다. 교회에 들어오니 감격스러웠다. 늘 작게만 느껴졌던 교회가 오늘은 그 어떤 대리석 성전보다 귀하고 거룩하기만 했다. 제단에 나가서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하동철 장로님이 만든 빛의 십자가에 사순절 기간인지라 가시면류관이 하얗게 달처럼 걸려 있었다. 예수께서는 3년의 공생애를 사시며 사역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목회 사역은 이렇게 하늘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성취되는 것일 뿐 나의 계획과 외형적 성취로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목회 사역은 주의 일이니 주께서 인도하시리라! 감사의 감격으로 가슴이 벅차게 눈물이 흘렀다.

 

집에 오니 아내가 저녁에 들어와 묻는다.

병원에서 뭐라고 해요?”

암 이래!”

그래요, 그래도 당신은 안 죽어요.”

?”

당신은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참 믿음도 좋다! 아내는 늘 그렇게 낙관적이고 여유로웠다. 나는 서재에서 <산마루서신>을 쓰고 기도하였다. 스스로 자신을 향해서 처음으로 안수기도를 하였다. 생명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어가지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아프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낫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시니 그저 믿고 의탁하며 자비를 구하였다.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뜻을 이루어가게 하옵소서!” 깊은 밤의 평화는 더욱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하였다.

 

병원에서는 MRI 촬영을 하고 정밀 검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적 같은 일들이 전개되었다. 피 검사는 정밀 검사 직후부터 늘 정상치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1개월 2개월 3개월 단위로 검사를 받았고 1년 반 가까이 지났다. 간엔 전혀 모양의 변형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1년 반이 가까이 이르자 양성으로 판단해도 좋겠다고 한다. 사실 나는 이미 치유되었음을 믿고 있었고, 삶도 죽음도 모두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일상을 살아왔다. 존재하는 것 자체보다 큰 은총이 없으며 그보다 더 감사할 것이 어디 있으랴! 존재하는 것이 가장 큰 은혜일진대 무슨 조건으로 감사를 따로 하랴! 삶 자체가 그저 감사할 이유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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