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5년 성서와 문화

시몬느 베이유가 만난 예수

 

이상범 ? 목사문학

 

20세기 전반을 남달리 극렬하게 살다간 여성사상가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1909-1943)는 크리스천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녀의 격렬한 삶이 그녀가 예수로부터 얻은 그 무엇과 전혀 무관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거의 자살에 가까운 그녀의 최후가 34세였던 것도 우연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파리에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베이유는 유달리 병약했지만 그녀의 뛰어난 재능은 주변의 주목을 끌었다. 고등사범학교 재학시절부터 사회활동에 참여했고, 22세가 되어서는 로망 로랑, 사르트르와 더불어 징병제반대성명서에 서명하는 명사가 되어 있었다. 과격한 활동으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하지만, 주변으로부터는 정체불명의 신비적 존재로 인식되는가하면, 스스로 성 프란체스코의 고향 아시시로 가서 특별한 종교체험을 하기도 했다.

철학교사로 일하는 동안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는 발작 속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의 의미를 깨닫는가하면, “그리스도께서 붙들어 주셨다는 신비체험을 하기도 했다. 다음에 소개하는 것은 그녀가 남긴 글에서 건져 올린 작은 구슬 중의 하나라고나 할까.

그분이 내 방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말도 못하는 불쌍한 이여. 나를 따르오. 그대가 생각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리다.’ 나는 그분을 따라 나섰다. 그분은 나를 한 교회로 데리고 가셨다. 새로 지은 그러나 누추한 교회였다. 그분이 나를 제단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다.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하고 응답했다. ‘진리 앞이라 여기고 사랑으로 무릎을 꿇으오.’ 하시는 말씀을 듣고 나는 순종했다. 그분이 나를 교회에서 데려나와 한 지붕 밑 방으로 올라가게 하셨다. 열린 창문을 통해서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목재로 짜인 발판과 하천이 보였다. 사람들이 배에 짐을 싣고 내리고 있었다. 지붕 밑 방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둘 있을 뿐, 그분은 나를 앉으라 하셨다. 우리 둘 뿐이었다. 그분이 말씀하시는데, 이따금씩 누군가가 들어와서 대화에 끼어들다가 나가기도 했다. 겨울이랄 수는 없지만 봄이라하기에도 일렀다. 새싹이 돋지 않은 나뭇가지는 햇빛 속 냉기에 젖어있었다. 빛이 솟구쳐 빛나다가 점차 그 색이 바래지더니 마침내는 별과 달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여명이 찾아왔다. 그분이 말없이 선반에서 빵을 꺼내셨다. 우리는 그것을 나누었다. 진정한 맛을 지닌 빵이었다. 이후로 다시는 그 맛을 볼 수는 없었다. 나와 자신의 잔에 포도주를 따르셨다. 그 포도주에는 태양과 그 나라가 현존하고 있는 대지의 맛이 배어있었다. 우리는 마루에 눕기도 했다. 그럴 때면 쾌적한 잠이 찾아들었다. 다시 눈을 뜨고 태양 빛을 들이 삼켰다. 가르침을 약속하셨으면서도 그분은 아무 것도 가르쳐주시지 않았다. 우리는 오랜 친구 인 것처럼 내키는 대로 모든 것에 대해서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그분이 말씀하셨다. ‘이제 가시오.’하고. 나는 무릎을 꿇고 그분 발에 입을 맞추며 나를 내쫓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분은 나를 계단으로 밀어내셨다. 나는 형편없이 찢긴 마음을 안고 앞뒤도 가리지 못한 채 계단을 내려왔다. 나는 하염없이 골목길을 헤매고 걸었다. 그러다 그 집이 어디에 있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집을 다시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분이 나를 찾아오신 것은 착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지붕 밑 방은 내가 머물 곳이 아니다. 어딘들 어떠랴. 독방 감옥이든, 하찮은 장식과 붉은 비로드로 치장한 부르주아의 응접실이든, 역 대합실이든, 어디인들 어떠랴만, 그 지붕 밑 방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때로 두려움과 뉘우침에 떨면서 그분 말씀의 이것저것들을 혼자 되씹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말씀해주신 그분이 여기에 계시지 않은 것을. 그분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어떻게 그분이 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내 속 깊이 도사리고 있는 작은 점과 같은 것이 있어, 나로 하여금 두려워 떨면서도 혹 그분이 나를 사랑하실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했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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