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5년 성서와 문화

예술목회이야기(1): 마르크스주의 우파와 한국교회

 

손원영 ? 서울기독대 교수신학

 

1.

얼마 전 나는 대학시절 내게 교양과목으로 사회학을 가르치셨던 박영신 교수님(연세대 명예교수)의 강의를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통해 듣게 되었다. 그것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있었던 "한국교회가 돌파해야 할 현실은 무엇이고 지향해야 할 미래는 무엇인가?"라는 긴 제목의 강연이었다.(2006.6.26. 강연) 비록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의 강연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하는 의미 있는 강의였다.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몇 자 적어본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르크스주의(Marxism)는 한마디로 마르크스(Karl Marx)의 유명한 명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라는 말에 기반한다. 여기서 하부구조란 말 그대로 사회를 결정하는 것은 물질이요, 특히 이라는 말이다. 돈이 상부구조인 정신세계를 비롯하여 세상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너무 단순화시킨 주장이긴 하지만, 마르크스의 이런 주장에 따라 자본을 절대화하는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소위 사회주의를 지향하자는 것이 마르크스 좌파의 논리라고 한다면, 반대로 자본의 절대성을 인정하면서 그 약점을 보완하자는 것이 소위 서구식 자본주의요 마르크스 우파의 논리가 아닌가 싶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마르크스 우파의 서구자본주의가 마르크스 좌파의 사회주의에 대하여 오래전 승리하였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현재 마르크스 우파의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공룡 같은 괴물이 되어 우리 사회를 더욱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사회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철저하게 물질’()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계가 된 것이다. 경제가 지배하는 사회, 돈이 권력이 된 시대, 아니 맘몬을 숭배하는 시대, 바로 우리가 사는 시대이다.

 

2.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라는 마르크스의 논리는 박영신 교수님의 지적대로 어쩌면 교회와 목회자의 의식 속에도 철저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마르크스 좌파가 아닌 우파의 이론으로 말이다. 그래서 현재 한국교회는 마르크스 우파의 집단으로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 결과 교회는 성서의 가치와 하나님의 나라 이상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하부구조의 핵심 요인인 자본(헌금)에 의해 그 성공여부가 결정된다. 예컨대, 교회당이 큰 교회는 성공한 교회이다. 교회에 헌금이 많이 걷히면 그 교회는 성공한 교회이다. 목사는 한 주식회사의 대표이사처럼 당회장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장로는 회사의 중역 곧 이사처럼 이해된다. 그 결과 큰 교회는 소위 성공한 교회로서 큰 자본을 기반으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대기업처럼 중소기업에 해당되는 작은 교회에 대하여 슈퍼 갑으로서 무한권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신학대학까지 자본을 갖고 있는 교회에 예속되어 있는 것이 현재 한국교회와 한국 신학대학의 현실 아닌가? 그래서 신학대학도 대기업형 교회의 재생산을 위해 대형교회 목회자를 총장으로 선임하고, 교회성장 지향의 신학 교육과정을 개발하며, 자본(연구비나 후원비)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자를 교수로 선발한다. 악순환이다. 동시에 작은 교회는 성취되지 못한 교회성장의 콤플렉스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리고, 적지 않은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은 패배자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한국교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이 슬픈 왜곡된 구조에서 한국교회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3.

여기서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된다. 한국교회가 마르크스 우파로 나가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그것이 성서적 가치인가? 사실 답은 명약관화하게 "아니다!"이다. 오히려 성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그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4:4)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말로는 혹은 표면적으로는 문자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운운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시도를 이단시하면서 오히려 '물질'을 추구하고 '보이는 세계'에 집착해 오고 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천민기독교를 만들어내고, 한국교회를 작금의 위기로 몰고 간 것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마르크스주의자로 살아온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 높은 복음의 가치로 나아가야 한다. 복음의 가치란 물질을 절대화하는 사회주의나 혹 자본주의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숨겨진 하늘의 깊은 뜻을 발견하고 그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 육화되어 실천되도록 지향하는 목회로 다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나는 한국교회의 희망이라고 믿는다.

 

4.

마르크스의 논리로 한다면, 기독교는 사회주의나 자본주의와 달리 철저하게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결정한다고 믿는 종교이다. 위에 계신 분의 뜻(상부구조)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하부구조)에서도 이루어지도록 믿고 노력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나는 이것이 틀리지 않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한마디로 무엇인가? 그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적 삶이다. 이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천지를 창조하신 아름다운 분이라고 믿는다면, 또 이 타락한 땅을 다시 아름다운 땅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를 보낸 분이라고 믿는다면, 그리고 지금도 그 일을 위해 성령께서 역사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본받아 바로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땅에서 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을 나는 예술적 삶이요, 영성적 삶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런 점에서 예술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 상부구조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해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추구하는 예술목회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물질을 절대화하는 두 괴물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넘어서, 자유와 평화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움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매일매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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