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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보다 먼저 화해를 - 손규태

성서와문화 2016.05.20 19:40 조회 수 : 1549

제사보다 먼저 화해를

  

                                                                                                                                손규태 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 신학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개혁자로서 뿐만 아니라 구약성서학자로서도 이름을 날렸었다. 그는 종교개혁을 시작하기 전 구약의 시편연구로부터 시작하지만 구약성서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율법의 연구의 대가였다. 그리고 그는 신약성서에서 율법과 관련된 바울의 글들, 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중심으로 주석하고 강의하였었다.

성서는 크게 봐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구성되어 있다. 구약성서의 핵심적 내용은 율법이고 신약성서의 내용은 복음이다. 신구약성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인 율법과 신약성서에 나타난 그 말씀의 성취인 복음의 상관관계를 잘 이해하는데 있다.

루터는 구약의 율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첫째 율법은 하나님에게 제사드리는 법, 즉 의식법(儀式法)이 있다. 이것은 주로 구약성서 레위기에 실려 있는데 인간들이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방식을 다룬다. 간단히 말해서 하나님에게 제사 드릴 성전건축과 제단 만들기로부터 거기서 예배하는 제사장의 의복과 제물들의 종류 그리고 그 제물들을 드리는 방법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둘째 율법은 성결법(聖潔法)으로서 유대인들이 지켜야 할 청결한 생활을 위한 조건들을 설명한 법이다. 전갈이나 발톱이 갈라진 짐승의 고기 등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될 곤충이나 동물들을 비롯하여 산모의 청결기간 등을 규정하고 있다.(남아출산 시 7, 여아출산 시 14일간의 불결기간 등).

세 번째로 중요한 율법은 사회법(社會法)으로서 인간과 인간들 사이의 (갈등)관계에서 일어나는 제반문제들을 규정하는 법이다. 인간들 사이의 신체적 다툼이나 물질로 인한 갈등 등을 다루고 있다. 즉 사람에게 상해를 가하거나 죽게 하는 경우, 다른 사람의 물건이나 짐승 등을 도둑질한 경우 거기에 대한 보상이나 배상 등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임신한 남의 아내를 넘어지게 해서 유산하게 한 경우와 같은 상세한 내용들이 적혀 있다. 물론 집에서 부리는 노예에 관한 처우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고 있다.

그런데 이 구약 특히 모세오경에 나타난 율법의 전통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점차 발전하고 변모해왔다. 특히 이스라엘이 기드온이나 삼손과 같은 지파(종족)들의 카리스마틱한 지도자들 즉 사사들(Judges)의 시대가 끝나고 주전 8세기 초 사울 왕을 필두로 왕조시대가 출현함에 따라 다윗과 솔로몬, 그 후의 왕들과 그들을 둘러싼 지배세력들의 권력남용과 호화사치생활이 시작되자 백성들은 억압과 세금부담으로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변혁과 사회적 불의로 인해 예언자들에게는 율법 가운데 사회법이 더욱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때 율법 가운데 율법의 의식법만을 내세워 성전과 예배행위에만 몰두하는 제사장 집단과 거기에 반대하여 율법의 사회법 정의를 앞세운 예언자 집단들(이사야, 예레미야, 아모스 미가 등)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시작된다. 특히 바빌로니아라는 강대국 외세가 침입해 들어올 무렵 제사장들과 예언자들 사이에는 이스라엘 나라의 장래운명을 놓고 정면충돌한다.

우선 제사법만을 숭상하는 제사장 집단은 이렇게 외친다. “이것은 야훼의 성전이다, 야훼의 성전이다, 야훼의 성전이다 외치며 나라의 장래를 안심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사회법적 정의의 예언자들은 다음과 같이 외친다. “그런 빈말을 믿고 안심하지 말고 회개하고 너희들 중에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라.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를 억누르지 말라.”(예레미야 7:4-6) 나라가 외우내환으로 다 망해 가는데 제사행위에만 몰두하는 성직자들을 향해 나는 너희의 번제물과 곡식제물이 싫다. 친교 제물로 바치는 살진 송아지도 보기 싫다. 그 시끄러운 찬양소리를 집어치워라.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서로 돕는 마음이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아모스 5:22-24).

이러한 주전 8세기의 율법의 사회법 전통은 신약성서의 예수의 말씀전통에도 그대로 전해진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 갈 때 너에게 원한을 품은 형제가 생각나거든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그를 찾아 가 화해하고 나서 돌아 와 제물을 드려라.”(마태 5:23-24). 예수는 하나님을 위한 의식법 전통보다 인간 사이의 화해라고 하는 사회법 전통을 더 중요시 여겼다.

오늘날 세계, 특히 한반도는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되어 있다. 한국의 그리스도교회는 그동안 율법의 의식법 전통에만 몰두하여 교회 내에서 농성하며 예배행위에만 몰두해왔었다. 그 결과 한국개신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이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앞으로 한국교회는 성서의 사회법 전통에 따라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대립과 갈등, 남북한 사이의 대립, 이데올로기 갈등, 지역간 갈등, 계층간 갈등 등을 해결하는 화해의 직무를 감당하기 위한 노력에도 앞장서야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 주셨고 또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고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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