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5년 성서와 문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이형규 (배재대 외래교수, 사회윤리학)

 

신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는 오늘날 시장(Market)은 점점 구약성서 속의 야훼 하느님처럼 행사하고, 모든 것이 판매될 수 있기에 어떤 것도 성스러운 것이 없으며, 시장은 우리의 가장 은밀하며 어두운 욕망을 알고 있고, 경제를 예견하는 학자들은 예언자와 제사장처럼 행동한다고 지적하였다.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전지구적 금융 위기는 월가를 점령하라운동과 부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세금 70% 부과를 주장하는 급진적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현 경제 체제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더하여, 교황 프란시스는 국가 통제를 벗어난 초국적 자본 권력을 새로운 식민주의라고 지칭하고, 끝없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악마의 배설물이라고까지 꾸짖었다. 오늘날 이런 경제 체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성서와 기독교 전통은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 필자는 진보돌봄의 가치를 제시하고자 한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루터의 소명으로서의 직업관, 칼빈주의의 예정론에 기초한 선택받은 자들의 금욕적 삶, 그리고 자신들을 세속적 직업을 가진 수도사라 이해하는 청교도들의 윤리가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하였다. 베버의 동료 좀바르트는 개신교 이전에 이미 유대인들이 중세 서구의 경제와 상업에서 소외되면서, 자본주의적 경쟁과 소비자 위주의 상업을 발전시켰다고 보았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자는 진정한 유대인이라고 하였다. 즉 유대-기독교와 근대 자본주의는 깊고 복잡한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경제는 윤리적이며 종교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먼저 유대-기독교적 역사관은 직선적이다. 역사는 종말(완성)을 향해 나아가며, 이런 동력은 공동체가 도덕적일 때 나타난다. 17세기 존 밀튼의 <실락원>은 죄지은 인간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근대인의 진취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태초의 동산에서 쫓겨 나가는 중에 아담은 수치스러워하고 천사 앞에서 슬피 울지만, 그의 아내 하와는 동산 밖의 미지의 세상을 응시하며 걸어 나간다. 인간의 자유 때문에 에덴 동산을 떠나게 되었지만, 그 자유를 포기할 수 없는 근대인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책임을 어깨에 지고 밖으로 나간다. 이제는 질서의 동산을 떠나, 무질서로 가득 찬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떤 영웅의 출현도 기대하지 않으며, 현실과 실제(fact)를 찾기 위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행동(act)한다. 이 유대-기독교적 진보주의자들은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알기에 재물을 이 세상에 쌓거나 땅에 묻지 않고, 즉 경제적 잉여를 축적하지 않고, 창조적인 것에 투자한다. 최근에 그들은 인류의 멸절을 가져올 에너지와 식량의 결핍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맞서고 있다. 아직 그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대성당을 뒤덮고 있는 중세 시대의 석공들처럼, 올바른 이성에 대한 신념으로 인류의 미래를 고독하게 짊어진 과학적 지성들의 인류애적 노동은 신성한 것이리라.

다음으로 히말라야의 부탄 왕국은 경제적 발전에 대한 새로운 지표인 GNH(gross national happiness)행복한 사회란, 과거와 미래를 돌보고, 사람과 그 환경을 돌보는 사회(caring society)” 라는 목표를 제시해 성장 지상주의에 경종을 울렸다. 사실 돌봄의 가치는 유대-기독교 전통에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십일조와 이삭줍기, 노예와 빚진 자들을 위한 안식년과 희년의 규례, 그리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창조주를 멸시하는 자이며 재물이 아니라 자비를 제단에 바치라는 가르침에 잘 나타난다.

아직도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落水效果)를 되뇌는 자들은, 맨 위에서 떨어질 그 한 방울을 받아 마시기 위해 맨 아래서 입과 손을 벌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치심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물이 더러워진다고 우물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는 무릎 꿇고 두 손으로 물을 받아 한 방울 한 방울 마셔야 하는 인도의 달릿 (불가촉천민)들의 처참한 모습과 낙수 효과 이론이 교차되는 것은 왜일까? 주님은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시게 했다하시며 영광의 보좌에 앉게 해 주신다 하셨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빚진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속량)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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