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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아닌 하나 - 남기수

성서와문화 2016.05.20 20:02 조회 수 : 1761

둘이 아닌 하나

 

남기수 (온생명교회 목사)

 

마가복음서 12장에 예수께서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인이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쏟아 붓습니다. 이 향유의 값이 상당했던 것을 보면, 아마 일생 모아 두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낌없이 전부를 쏟아 붓는 이 여인의 행동을 두고, 제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지 왜 허비하느냐 비난과 불만이 가득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만두어라 이 여인이 나의 장례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매우 상징적인 말로 우리에게 숙제를 남겨 둡니다.

중국 당나라 시대 방온거사라는 불교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8세기 중반 형주사람으로 성은 방()이요 이름은 온()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방온거사가 강서 지방으로 가서 당시 불교의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마조대사(馬祖大師)를 찾아가 여쭙니다. "일체 존재와 상관하지 않는 자. 그것은 어떤 사람입니까" 즉 불법은 무엇입니까, 라는 물음입니다. 이때 마조는 저 서강(강서성에 흐르는 강)의 물을 한 입에 마시고 나면, 그 때 그것을 자네에게 말해 주겠다고 합니다. 방온거사는 이 한 마디에 오랫동안 궁구해 왔던 현묘한 이치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방온거사는 부인, 아들, 딸들과 함께 가지고 있던 보화를 몽땅 동정호라는 호수에 가서 던져 버립니다. 그리고 움막에서 조리를 엮어 가족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몸에 쏟아 부은 이야기는 마태, 마가, 요한복음서에는 기록되었는데 누가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누가복음 저자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 이야기를 편집하는데 부담을 느꼈을까, 아니면 예수가 던진 숙제를 풀지 못한 걸까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50여 년을 기독교의 테두리 속에서 살았습니다. 훌륭한 스승님 밑에서 신학도 하고, 십 수년 편집사 연구 등 성서의 본질을 캐내려 많은 수행(?)도하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앎과 의식에 눈을 뜨는 변화는 있었지만, 구원, 깨달음에는 무언가 분명하지 않고 변두리에서 서성거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꺼풀을 벗겨내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여인이 옥합을 예수께 쏟아 붓는 마음의 자리는 무엇인가요. 곁에 있던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와 여인만 알아차린, 내 장례를 준비했다는 생의 문제를 풀어내 버리는 그 자리는 무엇인가요? 서강의 물을 몽땅 마셔 버리라는 한 마디에 어마지두 깨침을 얻고 밝아진 방온거사의 마음의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요?

지난 수년간 구원, 깨달음, 이 마음의 자리를 찾아보려 참구(參究)하면서 어떤 마법에 홀린 듯, 마치 닭이 알을 품고 한시도 떠나지 않는 것처럼, 늘 온통 모든 관심을 여기에 두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직 이 문제를 타파해야 목마름을 해결하고 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노동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잠깐 틈이 나서 무심코 먼 곳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늘 눈에 들어오던 것들이었는데... 의식의 변화라 할까. 거듭남이랄까, 견성(見性)이랄까. 온통 보이는 것들이 예전과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산들이 바로 나였고, 모든 건물들, 아파트들, 지나가는 자동차들, 곁에 있는 나무들, 사람들이 모두 나와 하나요, 그것들이 모두 나와 별개가 아닌 바로 나 자체였습니다.

그동안 평생 분별의 늪에서 살아오며 고통을 받아 왔는데... 그로 인해 수많은 짐들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었는데... 수많은 고뇌들이 스스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평화가 밀려왔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 늘 머리에 맴돌기만 하던 이 구절이 그대로 가슴에서 꿈틀댔습니다. 그러면서 요한복음에서 틈나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던 "나는 하나님과 하나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영생, 부활, 거듭난 생명 등 수없이 겉으로만 맴돌던 예수의 말씀들이 새로운 얼굴로 나를 맞이했습니다. 불교에 있어서의 불이(不二), 물아일체(物我一體)와 계합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이제는 늘 그 자리에 섭니다. 서 있는 자리가 때론 비틀대도 곧장 일어섭니다. 생사의 분별이 떨어져 나간 그 자리는 영생의 자리가 되고, 내가 비워진 그 자리에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마치 예수가 귀신들린 자와 대면했을 때, 수천의 돼지 떼에게 귀신이 들어가 바다에 몰사한 것처럼, 늘 답답했던 목마름도, 분별 가운데 지쳤던 피곤함도, 시시비비에 시달렸던 끈들도, 그냥 스스로 힘을 잃고 물러나 버린 느낌입니다. 보화를 발견하고, 모든 것을 팔아 밭을 샀다는 비유가 바로 이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에 있어 희유(稀有)한 경험입니다.

하나뿐인 지구별에 살면서, 개인은 온갖 차별, 분별에 온통 에너지를 소비하고, 나라들은 온갖 금을 그어 놓고 수없는 전쟁, 폭동, 테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둘이 아닌 하나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되지 않을까요. 오늘도 모두가 하나 된 자리에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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