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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나라사랑(1) : 기독교 민족 운동의 성좌, 전덕기 목사


                                                고성은 (광리교회 목사, 교회사)


  ‘일본기독교조선감리교단’의 통리인 정춘수는 서울에 소재한 한 ‘기독교회’(基督敎會)를 수리하여 1944년 9월에 ‘황도문화관’(皇道文化館, The Cultural Hall of the Imperial Way)이라는 ‘신사교회’(神社敎會)를 개소하였다. 소위 일본 황도 정신과 문화를 가르치는 공간으로 변경한 것이다. 그 기독교회는 다름아닌 ‘민족 운동의 요람지’로 불리던 상동 감리교회였다. 구한말과 일제 시대를 통하여 상동 교회가 ‘민족 운동의 요람지’라는 유의미한 전통을 세운 목회자는 바로 ‘전봉운’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었던 전덕기(全德基)였다.
   그는 1876년 1월 22일(음 1875년 12월 8일)에 서울 정동에서 부친 전한규와 모친 임씨 사이에서 출생한 가운데 일찍이 조실부모하였다. 이로 인해 숯장수였던 숙부 전성여의 양자로 입적되어 성장한 천민 출신이었다. 이러한 그는 청소년 시절 반기독교 행위를 통해서 기독교를 만났다. 즉 17살 때 전덕기는 선교사들을 종종 무시하여 선교 활동을 방해하려고 모색하던 중 어느 날 깨진 기와 조각을 선교사의 주택에 투척하여 유리창을 파쇄해 버렸는데, 이때 전덕기 앞에 나타난 스크랜튼(W. B. Scranton) 선교사는 그에게 책망 대신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로 타이르고 주를 믿으라고 권하였다. 이 지혜가 담긴 따뜻한 권면은 전덕기의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마음을 이내 녹여 버렸다. 이를 계기로 천성이 근독(謹篤)하였던 그는 낮에는 처음엔 스크랜턴 선교사가 설립한 시약소의 하인으로, 나중엔 스크랜턴 선교사 가족의 요리사로 일하면서도 밤에는 쉬지 않고 먹지도 않고 성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더 나아가 매서운 겨울 추위와 무더운 여름 장마가 온다 할지라도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는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았다. 이처럼 성서 연구와 기도, 그리고 예배를 통하여 참 진리를 체득한 그는 깊은 영성이 자리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 그 결과 그는 1896년 스크랜턴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달성회당’, 곧 상동교회를 통하여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이후 그는 1898년에는 속장의 직을 수여받았고, 1901년에는 권사에 피임되었으며, 1902년에는 전도사의 직첩을 수여받았다. 나아가 그는 1905년 6월 개최된 제1회 조선 선교 연회시 조선 선교 관리자인 총리사 겸 경기도 지방 장로사인 스크랜턴 선교사의 발의와 스웨어러(W. C. Swearer) 선교사의 동의에 의하여 집사 목사로 선출된 가운데 해리스 감독(Bishop M. C. Harris)의 주례하에 안수를 받았다. 또한 그는 1911년 6월 개최된 제4회 조선 연회시 해리스 감독의 주례하에 장로 목사 안수까지도 받았다. 더욱이 그가 1911년 12월 20일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을 때 해리스 감독도 참석하여 졸업식 축사까지도 하였다. 이를 통해 소위 ‘극단적 친일파 감독’에 의해서 ‘극단적 민족파 목사’가 온전히 세워진 것이다. 이러한 그는 교인 시절뿐만 아니라 상동교회에서 전도사, 부목사, 담임목사 등으로 사역하여 일생을 ‘상동맨’으로 살았다.      
  ‘상동맨’이었던 그의 기독교 영성은 기독교에 입교하면서부터 다름아닌 민족운동으로 표출되었다. 그에게 있어 ‘기독교 신앙은 곧 나라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1896년 결성된 독립협회와 1898년 독자적 활동을 펼친 만민공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나아가 자신이 몸담고 있던 상동교회를 통하여 주도적으로 민족 운동을 실현해 나아갔다. 그 단초는 1903년 상동교회 내에 그 자신을 회장으로 하여 한국 감리교회 청년회 단체인 엡워스 청년회(Epworth League)의 지교회 단체인 상동 청년회를 재조직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렇게 재조직한 상동 청년회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을 때 민족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상동 청년회에서는 상동 회의를 통해 도끼를 들고 대한문(大韓門)으로 나아가 조약 무효를 위해 5·6명씩 한 조를 이룬 가운데 몇 번이든지 간에 전자가 죽으면 후자가 나서서 상소하기로 결단한 것이다. 그리하여 상동 청년회원들이 대한문으로 도끼를 들고 나갔는데, 죽음은커녕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 구금되는 것으로만 그치는 바람에 그 효과성이 떨어져 중단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상동 청년회 회원들이 결사대를 조직하고 대한문 앞에서 단식 동맹을 했는데, 이때 일본 기병들이 철거시키려고 말을 몰았으나 죽기를 각오하고 철거하지 않으므로 결국 일본 경찰들이 체포·투옥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더 나아가 ‘폭력’을 사용하여 을사오적들을 처단하기 위해 전덕기는 정순만(鄭淳萬)과 더불어 주도적으로 평안도 출신 장사(壯士) 수십 명을 모집하여 암살단을 조직하기도 하였으나 때를 얻지 못하여 성사되지는 못하였다. 이외에도 전덕기는 국권 회복과 민중 계몽을 위하여 대한자강회를 비롯한 다양한 순수 민간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특히 숱한 연설을 통해 민중과 민족의 영혼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였다.
  한편으로 1904년 8월 결성된 국민교육회 회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는 그는 무엇보다 민족 교육 활동에 매진하였다. 당시 상동교회 내에는 당시 초등교육기관인 공옥 여학교와 공옥 학교, 그리고 여자 중학교가 존립하고 있었는데, 특히 전덕기는 공옥 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며 학교의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이로 인해 그의 사후인 1922년 6월 5일 공옥 학교 동창회에서는 그의 제자인 김진호가 비문을 지은  ‘고 목사 전공덕기 기념비’를 건립하여 그의 공적을 기리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민족 교육 활동의 ‘백미’(白眉)는 역시 중등교육기관인 상동 청년학원을 1904년 9월 15일 설립한 것이다. 전덕기와 함께 시작하여 전덕기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상동 청년학원은 그야말로 민족 교육의 산 요람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와 같은 상동 청년회와 상동 청년학원을 매개체로 하여 전국적으로 나라를 살리고자 하는 숱한 애국지사들이 상동교회에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이를 통해 흔히 ‘상동파’(尙洞派)라고 불리는 민족 운동 세력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상동파의 인적 자원이 토대가 되어 은밀한 점조직 체제의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新民會)도 태동할 수 있었다. 나아가 전덕기는 고종 황제의 퇴위에 결정적 빌미를 제공한 ‘헤이그 밀사 사건’에도 깊은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그토록 살리고자 했던 나라, 대한제국은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였다. 이를 통해 이즈음 민족 운동에 매진하던 그에게 폐병과 신경병이 함께 발생하여 분통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중 그는 한일합방 직후에 일제가 자행한 민족 운동 세력에 대한 대표적인 탄압 사건으로 알려져 있는 ‘105인 사건’때문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인해 지병이 악화된 것으로 당초 알려져 왔으나 105인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지만 그에게 찾아온 지병은 일제의 치욕이 더해 갈수록 깊어져 갔고, 결국 일제에 의해 무단정치가 행해지던 시기인 1914년 3월 23일 홀연히 별세하였다. 그리하여 3월 28일 상동교회에서 장례식이 치러졌을 때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의 유해는 고양군 두모면 수철리 묘지에 안장되었으나 훗날 일제의 강요에 의해 화장되어 한강에 뿌려졌다. 38세라는 짧은 생을 기독교를 통해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 굵게 살았던 그는 자신이 사역하였던 상동교회를 넘어 조선 민족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던 ‘선한 목자’였고, 또한 상동 교회를 넘어 조선 민족의 사랑을 일체로 받았던 ‘민족 목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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