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5년 성서와 문화

    

찬트(chant)와 트로프(trope)

 

김순배 (한세대 겸임교수, 음악)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 근동 지방과 유럽의 넓은 지역으로 기독교 신앙은 구석구석 전파되고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오랜 동안 박해를 피해 지하에서만 울려 퍼졌던 찬송가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회심 덕택에 4세기경 드디어 눈부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찬송은 예배를 비롯한 신앙 생활의 충실한 동반자였다. 노래의 텍스트로서는 운율을 담은 시편(Psalms)이 사랑받았다. 그렇게 가사는 성서적 내용이었으나 노래의 스타일은 일정하지 않았다. 지역에 따라 고유의 색깔이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예컨대 지금의 터키나 스페인 지역의 성가들에는 그곳의 민속적 색채가 덧입혀졌다. 더불어 세속 음악의 스타일도 찬송가 속에 자연스럽게 침투해 들어왔다. 오늘의 크리스천 뮤직에서도 그 같은 현상이 동일한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음악은 주변의 상황과 무관할 수가 없는 매체다. 시간이 흐르면서 텍스트의 경우에도 성서를 벗어난 자유로운 창작품이 양산된다. 각 지역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불리던 노래들은 그즈음 활발한 기독교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로마나 밀라노의 그것과도 사뭇 달랐다. 그렇게 콘스탄티누스 이후 근 300년 가까이 자유를 만끽(!)하던 찬송가의 세계는 600년경 대대적인 개혁에 직면한다. 그 사이 애초에 그리스어로 행해지던 의전어도 라틴으로 바뀐 지 오래었다.

 

교회 권력이 로마로 집중되던 600년경 교황 그레고리 1세는 각 지역에 편만하던 성가들을 한데 모아 연중 절기와 교회력에 따라 분류하고 정리했다. 세속의 색채가 진한 것들이나 화려하고 장식적인 것, 필요 이상 복잡한 모양새를 가진 노래들을 모두 거두어냈다. 텍스트의 경우에도 감정이 과잉되어 있거나 주관적이라 판단되는 것들도 가차 없이 잘라냈다. 이제 교회는 그레고리가 개혁 정비한 찬송들만 불러야했다. 서양 음악사의 공식적 출발이자 오래도록 서양 음악의 원재료가 되는 그레고리안 찬트의 탄생이다. 남자들만이 부를 수 있었던 찬트의 가사는 성서에서 가져온 순수한 신앙적인 내용에 개인의 감정이 섞이지 않아야 했다. 악기의 사용은 배제되었기에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아카펠라(a cappella, 교회 풍으로, 즉 무반주로)라는 단어의 기원을 만들었고, 한 성부로만 노래하는 모노포니의 움직임은 동요 없이 순차적이어야 했다. 이처럼 무색무취, 순수 담백한 그레고리안 찬트는 수세기동안 예배 의식과 종교적 행사에서 흔들리지 않는 위상을 공고히 한다.

 

세월이 흘러 어언 주후 900년이 되었을 무렵 이상한 음악적 현상이 찬트에서 목격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정해진 가사가 아닌 새롭게 창작된 내용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이다. 이 현상은 주로 하나의 음절에 음이 여러 개 붙여져 있어 그곳에는 가사가 없이 비어 있는 구절들에서 먼저 나타났다. 노래를 잘 못 외우던 한 수도사가 암기를 쉽게 하기 위해 가사가 없는 부분에 임의로 가사를 붙이면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기도 한다. 덧붙여진 가사의 부분을 트로프(trope)라 부르고 이런 유사 창작행위를 트로핑이라 불렀다. 찬트 속 가사 채워 넣기에서 시작된 트로프는 마침내 그 부분만 뚝 떨어져 나와서 독립체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나아가서 가사뿐 아니라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어내서 기존 찬트 속의 부분을 대체하기도 한다. 중세의 수도원은 당대의 머리 좋고 재능 있는 청소년들의 집합소였을 터, 금기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전례 음악 속 트로핑은 아마도 그들이 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었을 것이다. 트로프는 봇물 터지듯 양산되어 약 100년에 걸쳐 이미 수천 개로 늘어난다. 엄격하다 못해 경직된 찬트의 규율 속에서 숨막혀하던 그들이 신나게 트로핑을 하는 모습이 상상 속에 그려진다. 물론 시편을 비롯한 성서의 많은 부분들은 신앙을 고백하는 노래의 텍스트로 최고의 재료이긴 하다. 하지만 감성을 포함하여 각자의 기질과 성향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니고 있었을 수도사들이 자유로운 자신만의 언어로 찬송을 만들고 싶어했음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트로프는 이후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인물의 캐릭터가 설정되어 신자들 앞에서 공연되는 의전극(liturgical drama)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러나 12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많던 트로프들은 거의 사라지고 만다. 새로운 것이 결코 영원한 것은 아니더라는 보편적 법칙을 확인하게 만드는 음악사의 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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