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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비친 복음(1): 요셉 이야기

- Anna Katharina Emmerick-

 

이상범 (목사, 칼럼니스트)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는 예수의 수난을 끔찍하리만큼 극명하게 형상화한 문제작으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을 터이지만, 원작자가 가톨릭 수녀 안나 카타리나 에메릭(Anna Katharina Emmerick, 1774-1824)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에메릭 수녀는 그리스도의 수난” “성모 마리아의 훗날” “성가족의 삶” “종말 시대 교회의 양상등 숱한 환상 기록을 남겼는데, 그 모두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환상이라고 한다. 가톨릭의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소속한 수녀로, 2004103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손으로 복녀로 추앙받기도 했다. 복녀가 된다는 것은, 존경받고 덕망 있는 이가 그 신앙과 언행에서도 교리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보증을 받는 것과도 같은 일인 것이다.

게다가 수녀가 본 환상들은 당시 이름을 떨치던 독일의 낭만파 시인 브렌타노(Clemens Maria Brentano, 1778-1842)의 손으로 작품화 되었기로, 당시만 해도 소위 민중문학의 한 가닥으로 명맥을 이어 오던 종교적 환상이 문학 작품으로 대접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에메릭의 환상이 그리는 성가족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오늘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성 요셉의 모습은 무척 흥미롭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낳은 여섯 아들 중 셋째. 베들레헴 근교 다윗왕의 아버지 대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자란다. 소년 요셉은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온유하고 경건할 뿐만 아니라, 야심을 모르는 소년으로, 사물에 대한 이해력은 깊은 편이었지만 단순하고 소박해서 유난히 고독을 좋아했다. 뜰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 한 모퉁이에서 두 팔을 벌리고 기도하다가는 곧잘 황홀경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면 다른 형제들이 몰래 요셉에게 다가와서 집적이거나 발을 걸어 넘어뜨리며 골려주기 일쑤였다. 요셉은 돌바닥에 얼굴을 부딪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요셉은 형제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형제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을 찾아 기도했다. 부모도 요셉이 다른 형제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점잖고 진솔하기만 한 요셉에게서 뭔가 아쉬움을 느껴서인지 애써 아들을 감싸주려 하지는 않았다.

성장을 더해 가면서 형제들의 악의도 더해 갔다. 마침내 요셉은 시내 건너편에 있는 이웃집으로 달아나는가 하면, 훗날에는 아예 목수의 집에서 먹고 자며 목수 일을 도우며 그 일을 익히게 된 것이다.

열여덟에서 스무 살 전후해서의 일이었다. 나무토막과 대팻밥을 치우고 무거운 목재를 운반하는 순박한 요셉은 주인 목수의 신뢰를 얻게 되었고, 그럴 즈음에야 부모는 요셉이 목수 일을 익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펄쩍 뛰며 아들을 꾸짖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럴 즈음, 목숨을 걸다시피 열심히 메시아의 오심을 기도하는 요셉에게 천사가 찾아온 것이다. 족장 요셉에게 주어졌던 것과 같은 사명이 그에게도 주어질 것이라는 말씀을 듣게 된 요셉. 그 때에는 그것이 어떤 일인지를 짐작도 할 수 없었지만, 훗날 예루살렘 성전에 불려가서 마리아의 남편으로 선택받고,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자 비로소 요셉은 그 아들 예수가 메시아인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었다. “

 

에메릭은 성가족의 삶에 대해서도 자상하게 설명한다. 아기 예수는 할례를 받은 후 상처의 아픔 때문에 무척 울었다는 것. 요셉은 이집트에 망명하고 있을 때 현지에 회당을 설립했다는 것.

요셉과 마리아의 침실은 각각인데, 요셉이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엮은 문짝을 밀고 마리아의 방에 들어가도 마리아는 예수와 함께 커튼 너머에만 있었다는 것. 재미있는 것은 마리아가 어린 성자에 대해서 어느 누구보다 자상한 어머니이고 하녀이기도 했지만, 못지않게 성 요셉에게도 가장 헌신적인 하녀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요셉도 마리아에게 헌신적이었고 경건한 종노릇을 했지만, 요셉이 일방적으로 성모자에게 봉사했다는 중세적인 이미지는 사라지고 아내는 남편에게 봉사한다는 근대 유럽적인 이미지가 반영되고 있다는 것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환상이라 할지라도 시대적 변화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 같아서 말이다.

예수는 명상적인 청년으로 성장한다. 나이 서른이 되었을 때, 요셉이 자리에 눕는다. 세 사람에게는 각각 침실이 있었지만, 마리아는 쇠락한 요셉의 침대 곁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요셉이 죽자 마리아는 두 팔로 남편의 시신을 안고 있었고, 예수는 약간 떨어져 있었다. 방에는 빛이 넘쳤고, 수많은 천사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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