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5년 성서와 문화

뉘른베르크 '교회의 날'(Kirchentag)의 경험

 

김윤옥 (기독교여성평화연구원 원장)

 

19755월 내가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독일 세계 기도일 위원회가 있는 슈타인(Stein)이라는 동네를 찾아가서 한국 세계 기도일 위원회와 연결을 지으며 원폭 피해자를 위한 지원이나 나의 교단 여신도회 활동 지원 등을 부탁한 적이 있다. 슈타인에는 총무인 마리아 바르츠키 목사가 나를 맞아들이며 오랜 시간을 내어 한국의 사정을 듣고 자기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도록 해 주었다. 마리아는 자기 집의 방을 하나 내주면서 저녁 식사까지 초대해 주며 환대해 주었다. 독신인 그녀의 집은 독일 집을 처음 보는 나에게는 참으로 아름다운 집이었다. 꽃이 많던 인상이 남아있다.

독일 교회 여성들이 각 지역 교회에서 지키는 세계 기도일 행사에서 모금된 돈은 그 해에 위원회가 결정한 곳으로 지원이 된다. 유복한 독일 교회 여성들은 주로 제3세계의 어려운 사정을 가진 지역의 여성 운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와 한국세계기도일위원회를 설명하며 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의 여성들의 역할, 양심범 가족 지원의 필요성, 한국교회 여성운동 지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유교 문화와 샤머니즘 문화를 뿌리로 가지고 있는 한국교회 문화 속에 갇힌 여성들의 현실도 설명했다. 그래서 교회 여성들 자신의 조직과 활동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마리아 바르츠키 목사는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받아드리면서 많은 질문도 했다. 그리고 한국의 교회 여성운동을 지원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다음날 나는 아름다운 마리아의 집을 떠나서 하이델베르크로 돌아왔는데 얼마 후에 마리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뉘른베르크에서 '교회의 날'(Kirchentag)이 있는데 거기서 설교를 맡아 달라는 것이다. 뉘른베르크 각 교회에서 아침에 열리는 성서 연구 시간 중 하나를 맡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독일어가 완전하지 않아서 사양하고 싶었으나 마리아는 써서 읽으면 된다고 고집했다. 독일교회 사람들이 당신과 같은 제3세계 여성들의 활동을 들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독일 교회의 유명한 '교회의 날'을 보지 않으면 독일에 왔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긴 그랬다. 나는 그 이름은 들었으나 그것이 어떤 모임인지를 알지 못했다.

결국 쓴 것을 읽기로 하고 나는 독일어 원고를 만들었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알게 된 친구 페터 쉐르한스가 유창한 독일어로 고쳐 주었다. 너무 유창해서 이상할 정도가 되었지만 그러나 어쨌든 설교는 하게 된 것이다. 원고는 마리아의 제안대로 한국 교회의 민주화투쟁과 한국교회 여성들의 역할을 내용으로 삼고 하나님의 약자 편애의 신학을 강조했다. 하나님은 약자를 들어 강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하나님은 약자를 통해 자신의 말을 하신다. 나는 정말 그렇게 믿고 확신에 차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뉘른베르크 교회의 날 행사는 히틀러의 사열로 유명한 뉘른베르크 광장에서 열리고 있었다. 넓은 광장에 "가능의 시장"(Markt der Moeglikeit)이라는 이름의 가건물 가게들이 끝도 없이 즐비하게 있었고 가게마다 주제가 달랐다. 은행의 이자놀이를 반대하는 가게 4, 동성애자의 가게 7, 여성주의자의 가게, 공해 반대의 가게 등등 다양한 가게가 현재 교회가 관여하며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다.

나는 겨우 마리아를 찾아냈다. 70년대이니 핸드폰이 있을 리 없다. 평안한 옷에 헝겊 주머니를 어깨에 메고 여러 가지 자료들을 수집하고 다니는 10만 명의 인파가 흘러가고 있었고, 마리아가 있는 세계 기도일 가게를 찾아내는데 족히 서너 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마리아가 나를 위해 구해 두었던 100 페이지가 되어 보이는 작고 두꺼운 '교회의 날' 책자에서 나는 내가 다음날 아침 찾아갈 교회의 거리 이름을 알아내고 뉘른베르크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9시까지 처음 가는 그 교회를 찾아가서 설교를 해야 한다. 잠자리는 공동으로 잘 자리를 제공하는 학교의 큰 강의실이었다.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거기서 함께 어울려 이야기도 하고 잠들기도 하며 지내고 있었다. 피난민이 따로 없었다.

다음날 아침 식은땀을 흘리며 설교를 마친 후 나는 유명한 독일교회의 '교회의 날'을 정식으로 공부하러 다녔다. 두꺼운 팸플릿에는 뉘른베르크 대학을 비롯하여 각 건물마다 열리고 있는 토론회, 성서연구, 심포지엄, 강연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고 '가능의 시장' 가게 이름과 번호도 적혀 있었다. 독일인 특유의 질서 있고 조직적인 팸플릿이었다. 이 모임은 4년마다 열리는데, 하나의 모임이 끝나는 그 해부터 다음 모임을 위한 준비위원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정확하게 정리된 안내 책자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1년도 안되는 시간에 뚝딱 행사를 계획하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 우리처럼 정부와의 투쟁도 없고 경찰의 사찰도 없는 평화로운 독일 교회가 부럽기도 했다.

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흘러다니는 뉘른베르크 광장의 '교회의 날' 행사는 거의 1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유명한 설교가가 설교하고 있는 천막은 자리가 차서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잔디밭에 비스듬히 누워서 스피커를 통해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 얼굴들에서 나는 감격을 읽을 수 있었다. 당대의 유명한 설교자 징크(Zink) 목사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고 있는 듯했다.

특히 내가 애정을 가지고 찾아낸 강의실은 여성 신학 심포지엄이었다. 그 방에는 몰트만 벤델, 루이제 쇼트로프, 엘리자베스 피오렌자, 도로시 죌레와 놀랍게도 케이트 밀레도 함께 앉아 있었다. 케이트 밀레는 "성의 정치학"이라는 저서로 교회를 공격하다가 영국으로 쫓겨난 래디컬한 여성 신학자다. 그러나 독일 교회 여성들은 그녀의 주장을 직접 듣고 교회 갱신의 일을 도모하자고 주최 측에 제안했고 독일 교회는 이를 인정한 것이다. 다양성과 평등으로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독일 교회의 노력을 느낀 경험이었다.

그 후에도 13년간 독일에서 살면서 나는 4년마다 열리는 교회의 날에 모두 참가했다. 베를린에서는 재독 한인교회 여성들이 만들어 놓은 '한국 원폭피해자의 가게'를 가능의 시장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함부르크 교회의 날에는 한국교회 각 교단 목사들이 초청받아서 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의 교회의 날을 그런 형식으로 조직하여 교파를 초월하여 세상을 위한 교회로 만들어 가는데 일조했으면 하고 바랐으나 귀국 후 그런 바람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걸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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