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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으로 가는 깊은 밤 - 정연희

성서와문화 2016.05.20 19:58 조회 수 : 1874

영원으로 가는 깊은 밤

 

정연희 (소설가)

 

시골 막차에는 승객이 없다. 낡아서 마냥 덜컹거리는 버스는 더러 부서지는 소리를 내지르며 시골 길을 달린다. 늦은 밤, 마을이 아득한 들판은 저승 같은데, 막차는 신작로 시골 정거장에다 나를 던져 주고 달아난다. 외로운 기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도 대답 없이 달아나는 막차의 붉은 미등이 저만치 멀어져 가고 나면, 중천을 물속처럼 만든 열하루 달이 밤길을 열어 준다. 열린 길 앞에서 맑은 물에 가만히 가라앉듯, 허허벌판에서 한동안 숨 고르고 서 있다. 벌판 가득, 한참 패기 시작한 벼 이삭 향기 다시 아득한 저승 같은데, 길섶에서 여치 귀뚜라미, 온갖 가을 풀벌레가 가만가만 걷기 시작한 내 걸음을 따라온다. 이승살이 내 목숨에다 가녀린 시간의 바퀴를 달아 주며 함께 가자고 한다. 땀 절어 부풀었던 한 여름을 달래 가며 고요한 가을로 가자 한다. 체득(體得)을 가르칠 일 없이 혼()으로 열리는 귀에다 가을을 알려 주는 가을 풀벌레들. 얼마를 이승에 더 머물게 될는지... 풀벌레들의 숨결이 내 들숨 날숨에 가을 무늬를 이루며 따라온다.

 

저승 물속 같은 논둑길, 열하루 달. 호젓한 달밤의 논둑길. 밤길을 홀로 걷게 아니하시고 풀벌레 동무삼아 주시는 분. 그분도 분요(紛繞)한 대도회를 피하여 이 논둑으로 오셨는가. 그리고 나와 함께 이 밤길을 가시는가. 더러는 빠르게 속삭이듯, 더러는 지지지지 가녀리게 제 목숨을 노래하는 가을 벌레들 속에서, 혹여 그분이 무슨 말씀이라도 들려 주시려는가, 걸음 멈추고 서서 귀를 기울인다.

 

그 벌판의 논에는 친환경농법으로 농약을 쓰지 않는 논이라는 현수막이 여름 내 걸려 있더니, 그래서 벌레들이 살아남아 밤길을 함께 가고 있는지. 어렸을 때 이 무렵이면 외가에 들러 논으로 달려드는 새떼를 쫓으며 메뚜기를 잡았다. 나보다 두 살 위의 사내아이, 외사촌의 맏아들 장조카는 강아지풀 줄기에다 메뚜기를 줄줄이 꿰었다가, 한 밤중에 모닥불을 피우고 노릇노릇 구웠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메뚜기 구이를 선뜻 받아먹지 못하는 나를 두고 꼬마 아지메, 이거 얼마나 맛있는지 알아요? 이거 먹으면 운동회 때 날듯이 달려서 일등 할 수 있다고요! ! 먹어 봐요, 어서!” 놀려댔다. 벼이삭 사이사이로 날아다니던 메뚜기가 어른거려 도저히 받아먹을 수 없어서 두고두고 놀림 받던 그 메뚜기가 요즘에는 어느 논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풀벌레들의 속삭임 속에서 장조카의 목소리가 아직 아련하건만-

 

봄은 나비와 벌, 물방개의 철이었다. ‘봄에 흰 나비를 처음 보면 엄가가 죽는단다.’시골 아이들 말에 혹여 흰 나비를 만날까 보아 눈을 감고 시골길을 걷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서울서 태어난 계집아이에게 외가며 고모가 살고 있는 시골은 잔잔한 경이의 세계였다. 실개천의 송사리와 모래무지를 잡다가 고무신을 떠내려 보내고 울며 울며 걸어가던 시골길은 아득한 전설이었다. 방게, 모래무지, 그 작은 생명체의 반짝이던 날렵함은 신비요 경이였고, 노래기, 지네, 거머리는 악몽 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루살이, 모기, 거미, 개미 모두가 점차로 열리는 새로운 눈뜸이었다. 뛰어놀다가 벌에 쏘이면 어머니뻘의 외사촌 올케는 된장 한 숟가락 척 발라 주고 돌아섰다. 된장이 무슨 약이라고- 아무렇게나 대접받는 것이 서러워서 집 생각하며 울고 울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벌침 주고 달아난 벌도, 꼬리꼬리한 냄새 때문에 코를 벌름거리게 만들던 된장도 어린 생명을 뒷받침해 자라게 만들어 주던 들숨들이었다.

 

산에서, 숲에서, 들에서, 논에서, 밭에서 저들 나름으로 살면서 더불어 어울리던 생명들이 이제는 서둘러 사라져가고 있다. 매년 522일은 국제생물다양성의 날이다. 2010년 유엔은 국제자연보호연맹의 보고서를 통해 가슴 철렁하는 뉴스를 전했다. 지금 지구에서는 한 시간에 3(), 하루 150종이 멸종하고 있으며, 해마다 18천여 종에서부터 55천여 종의 생물이 사라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초록빛 별에서, 머지않아 65만 년 전 공룡의 대멸종 이래 최악의 멸종 사태가 벌어질는지 모른다는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현재 생물의 멸종 속도는 자연적인 멸종 비율에 비해 최고 1천 배나 높다 한다. 이 심각한 재앙은 인간의 횡포가 원인이다. 지구 온난화, 과학의 발달을 뽐내며 편리를 위하여 개발에 개발을 쉬지 않는 것이 생태계 파괴의 원인이다.

 

28천만 년 전, 고생대 석탄기에, 날개 길이 70cm가 넘는 거대한 잠자리, 참새만한 하루살이, 고양이만한 바퀴벌레들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그 시기에는 대기 중 산소의 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높은 35% 정도. 원활한 산소호흡으로, 보다 가볍게 날 수 있던 덕으로 곤충들의 몸체가 그처럼 커질 수 있었다는 것. 그런데 현대 곤충 과학자들은 비관 탄식한다. ‘환경 오염 등 또 다른 이유로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가 대부분 멸종한다면 다음에는 곤충들의 시대가 될 것이란다. 우리들의 혐오 대상 바퀴벌레는 방사능에 견디는 힘이 인간의 수십 배 이상, 설사 핵전쟁으로 생물이 거의 멸종된다고 해도 바퀴벌레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했다. 스스로가 지구의 영원한 주인이라고 믿고 있는 인간이, 근래 곤충들에게 배우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다. 우리가 그렇게 질색하는 파리는 아무 때고 천장에 올라가 앉을 수 있는 비행 기술을 자랑한다. 그 비행 기술은 현대의 첨단 항공역학으로도 따라가기 어려운데, 파리처럼 이착륙이 가능한 항공기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란다. 파리의 비행 기술을 터득했더라면 항공기 추락 참사는 피해 갈 수 있었을 것을·······. ‘꿀벌을 응용한 지뢰 탐지 시스템, 딱정벌레의 후각을 모방한 첨단 센서, 나비의 신비로운 날개 비늘을 본뜬 도색(塗色)과 열 분산 시스템, 반딧불이의 광유 전자 등, 인간은 곤충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 가며 여러 방면의 활용을 시도하고 있다.’ 곤충은 인간의 인지 능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신비 속에 살고 있건만, 인간은 그것을 하찮게 여겨 살충제를 써서 모질게 죽이고 있구나.

 

인간, 호모사피엔스는 지구가 제공하는 환경에서 다른 생물들과 함께 서식하는 생물들 중 하나에 불과한 존재일까. 단순하게 그런 종()의 하나일까. 인지 발달을 뽐내며 지표면의 지형을 마구 훼손하고 대량생산을 위하여 제초제를 살포하여 물이며 땅을 죽여 자연을 강탈하는, 생존만을 위한 단순한 존재일까.

 

<우주공간에서 우리의 별 지구가 다른 별 하나를 만난다. 그 낯선 별이 지구에게 묻는다.

 

너 잘 지내니?”

 

우리별 지구는 힘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지 못해. 나는 호모사피엔스를 태우고 다니거든.“

 

그러자 그 낯선 별이 지구를 이렇게 위로한다.

 

까짓것 신경 쓰지 마. 호모사피엔스는 금방 사라질 거야“ (생태주의자 예수 중에서)>

 

금방 사라지게 될 운명을 스스로 몰고 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인가. 경제 개발 자본 증식의 욕망으로 눈이 멀어 버린 인간. 오존층이 얇아지며 대기의 온도가 높아졌고, 물은 마실 수 없이 더러워지고, 우리가 타고 가는 초록빛 지구가 신음하고, 대재앙으로 곳곳에서 곡소리가 높아져도, 자연이 주는 경고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인간. 우리는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세입자에 불과하다. 인간이 지구라는 별의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자연을 스스로가 지배하겠다는 생각은 비극의 단초였다. 인간이 저 하찮게 여겨 온 벌레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뻐기지 말자. 유전학자(遺傳學者) 프랜시스 콜린스의 이론을 얼마만큼 신뢰해야 할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인간 게놈에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가 대략 25천개인데, 벌레나 파리 같은 단순한 유기체나 식물을 구성하는 유전자 수()도 대략 2만개 정도로 인간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 수가 파리나 식물하고 거의 같다니- 그리고 인간 개개인의 유전자는 다양성이라는 것이 거의 없어, 세계 어느 인종과 비교해 보아도 99.9%가 똑같다는 것이다. 이런 처지에 무슨 인종 차별을·······..

 

풀벌레 수레에 얹혀 다시 논둑길을 흘러간다. 달빛 아래 벌레 소리로 녹아드는 영혼. 열하루 달빛을 들이쉬는 벌레들 숨소리는 가녀리지만 제 소리에 얹혀 가는 나를 두고 서럽다 한다. 하지만, 이 호젓한 달밤의 논둑길을 홀로 걷게 아니하시고 풀벌레 동무 삼아주신 분이 계신데- 우거진 나무그늘에 어둑신한 대문을 거쳐 마당으로 올라서니, 마당 가득 깊은 물로 고여 있는 사무치는 달빛이 시리다. 풀벌레의 숨소리로, 열하루 달빛으로 영원의 문을 열어 주시는 분. 고적해하시며 내게로 오시는 분. 서러움도 아름다운 깊은 밤. 가을 풀벌레와 더불어 영원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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