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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를 경배하다 - 김학철

성서와문화 2016.05.20 19:57 조회 수 : 1868

아기 예수를 경배하다
마태복음 2장 1-12절


김학철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신학)


그림  렘브란트, <동방박사의 아기 예수 경배>, 캔버스에 유화 71 x 65.8cm, 1632.헤미티지 박물관. 


  인류는 별을 보았다. 하늘의 별을 보고, 그것의 움직임과 변화를 탐구하고 정리하고 예측하면서, 인류가 바라본 것은 그저 별 자체만은 아니었다. 그 별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싶어 했다. 평소에 전혀 없는 듯, 스스로의 존재를 감추는 듯한 그분, 그러나 불현듯 자신을 계시하며 강력하게 이 땅의 모든 역사를 만들어 가는 그분, 그분을 보고 싶었고, 알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보고 싶었기에 별을 보았고, 별을 통해 하나님을 뵙고 싶었다. 고대 근동 세계에는 그 일에 전문적으로 매진하던 이들이 있었다. 우리가 ‘동방박사’라고 부르는 그들.
  ‘동방박사’에서 ‘동방’은 유대 땅을 기준으로 동쪽이니, 가깝게는 오늘날의 요르단에서, 멀게는 이라크, 이란, 곧 예전의 지명으로는 바빌론과 페르시아를 가리킬 것이다. ‘박사’라고 번역된 헬라어 ‘마고스’의 적절한 번역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아마 ‘점성학자’ 정도가 될 수 있다. 고대 교회 전통에서 이들은 종종 왕 혹은 왕가의 사람이나 귀족들로 이해되기도 했지만, ‘마고스’는 점성학 연구 등을 통해 왕에게 조언을 주는 일종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동쪽에 사는 마고스들이 어느 날 별을 보았다. 그들이 본 별은 예사 별이 아니라 유대인의 왕으로 난 사람의 별(마 2:2)이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당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유력했던 한 예언, 곧 “새로운 통치자가 동쪽으로부터 난다”는 예언을 알고 있었다. 마고스들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그 별의 주인공을 만나야 했다. 그게 그들이 ‘별’을 보던 참된 이유, 아니 인류 전체가 별을 보던 이유가 아니었던가. 그들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고, 아기를 만나 경배하기로 했고, 예물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 그곳에 도착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지식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낙망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유대인 제사장들과 지식인들이 그리스도의 탄생 장소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그 조언을 듣고 다시 탐색에 나섰다. 그러고는 마침내, 별이 그들을 인도해 가다가 아기가 태어난 곳 위에 멈추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들은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마 2:10). 그들은 기어코 아기를 발견했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 렘브란트(1606-1669)는 이 장면을 극적으로 그렸다. 그가 사용하는 빛과 어둠의 대비 기법을 감안하면 이 그림의 주인공은 아기 앞에 꿇어 엎드린 한 명의 동방박사다. 물론 아기와 어머니 마리아도 빛 가운데 있지만, 가장 밝은 빛은 경배하는 동방박사의 머리와 그가 벗어놓은 프리지아 풍의 모자에 가 있다. 성서에는 동방박사들의 나이에 관해서 특별한 정보가 없지만 렘브란트는 그를 나이 많은 노인으로 그린다. 그는 인류의 희망 앞에 무릎을 꿇고 모자를 벗는다. 지혜와 경륜을 충분히 쌓은 듯한 백발과 주름진 이마, 아주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모은 간절한 손, 황금빛 외투에 가려졌지만 아무에게나 함부로 꿇었을 것 같지 않은 그 무릎, 그리고 겸양을 품은 얼굴이다. 동방박사 일행이 타고 온 낙타와 말, 그리고 그들을 수행한 사람들이 내는 북적이는 소리는 더 이상 그의 귀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가져온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아기 예수 앞에서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그는 하나님이 내려 주신 사랑 앞에 고개 숙인다. 그가 느꼈던 그 심정을 헤아려 보지 않을 수 없다.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수 있었던 그 감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평생 어두운 밤에 별을 올려다보며 진실로 찾고 싶었던 ‘별’을 찾았을 때, 살던 곳을 용감히 떠나 헤매다 희망의 실체를 발견할 때, 한계에 부딪혀도 낙망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서 마침내 ‘별’이 머문 곳에 도달했을 때, 절정의 순간에 자신들이 지금껏 힘을 다해 준비해 온 예물을 드릴 수 있을 때, 바로 그러한 때 터져 나오는 감격이었으리라. 아기 예수 앞에 무릎을 꿇은 순간, 사람의 삶은 완성된다. 인생의 모든 것은 다 이리저리 흘러가는 배경일 뿐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로 말미암는 인류의 희망이 우리 삶의 유일한 주제다.
  동방 박사들은 그리스도에게 경배하고, 고향을 떠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인생의 절정을 경험했고, 길이는 짧으나 두께를 가진 감열(感悅)의 시간을 삶에 각인했다. 그들의 지식은 목적에 도달했고, 그들의 열정에는 보답이 주어졌으며, 가슴에는 기쁨이 넘쳐났다. 그들은 이 땅을 산책할 하나님의 아들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이 준비한 예물로 크게 축하할 기회를 가졌으니, 사람이 살면서 더 바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성탄은 그렇게 우리에게 희망의 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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