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5년 성서와 문화

희망 없는 시대에 듣는 예수 소망,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김혜옥 (연세대 은퇴교수, 음악)

 

요즘 희망이라는 말을 쓰는 단체나 제도와 관련된 기사를 종종 보게 된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 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청년 희망 펀드에 가입했다고 한다. 희망 키움 통장도 나왔다. 일정 소득 이하의 가구가 약간의 저축액을 내면, 정부가 근로소득 장려금을 더해 살림을 불려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이다. 하나은행을 비롯해 몇몇 금융기관들이 희망을 나눠주기 위한 사업에 전격적으로 나선 상황이다.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에는, 은행이 마냥 보수적이고 위험을 싫어하는 기관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은행들이 희망을 말해야 하는 시대라고 하니 아연한 현실이다.

젊은이들의 못 살겠다는 피맺힌 아우성은 여전히 교육자인 필자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다. 얼마 전 대학을 은퇴하고 나오면서 가장 눈에 밟혔던 것은,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 유학했으면서도 아직까지 자리잡고 있지 못한 제자들, 공부를 계속 하는 게 맞는 것일까 망설이는 학생들이었다. 나는 30여 년간 교육자로서 살아오면서 정말 이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는가 깊이 생각해 보고 자문해 보았다. 매일 새벽 그들을 위해 기도 드리고, 또 가능한 한 함께 그들의 두려움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앞으로의 삶에 있어서 자신의 존재 가치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입장은 못 되었던 것 같다. 한 가지, 교수로서의 임기를 마친 이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작은 전문 연주 단체를 만들어 우수한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인생 2막에 품는, 나만의 스타트업’(start-up)이다.

 

바흐의 6일 음악 축제(Bach’s Six Day Celebration)로 듣고 보는 예수 소망

이 대목에서 필자는 희망에 관한 음악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작곡가 바흐가 걸어왔던 역경과 고난에 가득 찬 삶 속에서의 희망적 메시지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수난 그리고 재림을 약속하는 인류가 갖게 될 희망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곡이다. 바흐가 살았던 시대는 유럽 사회가 가장 치열하게 갈등하고 고통에 신음하던 시기였다. 수십 년간의 종교 전쟁으로 인해 젊은이가 커뮤니티에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공간에서, 바흐는 새로운 의미의 희망, 그리고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기쁨을 노래하기 위해 전심을 다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위로받아야 하는 영혼이었다. 9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그 다음 해에는 아버지까지 잃어버렸기에, 혼자서 자활하다시피 하면서 살았던 바흐는, 보수적인 루터교의 가정에서 태어나 5살 때부터 성경학교에서 접했던 하나님을 친부모처럼 여기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인생을 비관하기는커녕, 철저한 신앙적 깊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주시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발군(拔群)의 창조적인 작품들을 수없이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바흐를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음악 설교자(music preacher)라고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악기가 사람처럼 노래하고, 사람이 악기처럼 부드럽게 노래하는 예술적 표현을 통해, 작품을 듣는 사람과 연주자, 그리고 작곡가가 하나가 되는 모델을 제시했다. 바흐는 태어날 때부터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다양한 음악들을 온 몸으로 익힐 수 있었으며, 특히 트럼펫 연주자인 아버지와 그를 중심으로 한 앙상블의 악기들을 듣고, 보고, 만질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바흐의 천재적인 악기 편성은 그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바흐의 작품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그가 50 살에 접어든 1734년 발표된 작품으로, 하나님과 음악인을 비롯한 온 인류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담는 동시에 그것을 예술적 구성으로 보여준 곡이다.

 

당시 북독일은 음악 축제가 발달한 지역이었다. 바흐가 젊은 시절 뤼베크에서 열리는 유명한 음악축제인 아벤트무지켄’(abendmusiken)에 참여하기 위해 오랜 시간 걸어서 여행을 했다는 기록만 보더라도 얼마나 중요한 콘텐츠였는지 알 수 있다. 바흐는 예수 탄생의 기쁨을 여섯 부분의 칸타타로 작곡하여 성탄절인 1225, 26, 27일과 11, 2, 주현절에 해당하는 16일까지 6일 간 연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 예배음악으로 작곡되었던 것이다. 바흐의 음악적 활동은 단순히 자신의 창작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위한 음악으로, 또한 하나의 사회적 기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을 전하는 문화 선교활동이었던 것이다.

6부로 작곡된 이 곡의 음악적인 구성도 예수 소망을 청각적이면서 시각적으로도 체험할 수 있게 작곡되어있다. 그리스도의 탄생(1)과 목자들의 경배(3), 동방박사들의 경배(6)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트럼펫 편성을 통해 화려한 축제를 표현하는가 하면, 목자들에게 알려진 탄생 소식(2), 말구유 주변을 둘러쌈(4), 동방박사의 여행(5)과 같은 내용은 전원적인 목관악기 선율이 인상적이다. 작품 하나하나도 완벽을 기하기 위해 과거에 바흐 자신이 작곡했던 칸타타 아리아에서 모티브를 빌려 오거나, 재구성함으로써 최상의 청중 경험을 만들어 내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응집력 있게 만들어진 6일간의 음악 축제는, 희망 없는 시대에 잠깐 동안이나마 대중들이 예수 소망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끔 고민했던 바흐의 노력에 기초한 산물이었다.

바흐는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통해 한 가지 성경 속 사건이, 다른 복음적 드라마들과 모두 연관성이 있는 사건임을 일깨워 주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며 기뻐하라는 합창을 전개하다가도, 사순절 노래인 오 거룩하신 주님의 선율을 빌어 만든 코랄(choral)을 통해 그분은 우리를 위해 죽으러 오셨음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자유를 이야기하면서, 음형적으로는 십자가, 또는 가시관과 같은 것들을 의미하는 상징을 통해 고난을 회피하지 않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고백한다. 이렇게 교차적인 구성과 표현을 통해, 바흐는 그 나름대로의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역경과 고난이 완벽히 제거된 상태의 힐링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희망을 역설한 것이다.

바흐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그의 인생이 원숙기로 접어들면서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신앙적 열정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바흐는 성숙한 연주자가 된 이후에도 상당히 고단한 삶을 살았다. 주변의 질시와 경쟁, 그리고 그를 아주 훌륭한 오르가니스트로 쳐 주기는 했지만, 작곡가로서는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예술 후원자들의 냉소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만 했다. 그럴수록 바흐는 더욱 작품에 매달렸고, 하나님께 영성 어린 창작을 갈구하면서 희망을 만들어 나갔다. 어쩌면 기독교인의 삶은, 현재의 이 세상이 아니라, 끝날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부분이다. 인생 오십에 6일 간의 음악축제로 전세계인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던 바흐는, 이제 은퇴 후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하는 필자에게도 무한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상처로 얼룩진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는 메시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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