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5년 성서와 문화

소설에서 발견한 성탄 메시지(혹은 Touch!)

 

이문균 (한남대 명예교수, 신학)

 

빅토르 위고가 쓴 <레미제라블>을 읽어 보셨는지요? 영화나 연극으로 보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교회를 싫어했고 기독교의 교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탄의 의미를 소설 이곳저곳에 심어 놓았습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도형장에서 19년간 노역에 시달리던 장발장이 어느 날 가석방을 받아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지친 몸을 이끌고 쉴 곳을 찾아 헤맵니다. 먹을 것을 구합니다. 그러나 여인숙, 식당, 감옥, 심지어 개집, 그 어느 곳도 그를 받아 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돈이 있어도 빵 한 조각 살 수 없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주교관을 찾았을 때 장발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환대를 받습니다. 주교는 장발장을 불 가까이 앉게 하고 촛불을 환하게 켭니다. 뜻밖의 대접에 당황해하며 장발장은 자기가 무서운 도형수임을 밝힙니다. <레미제라블>은 장발장의 말을 듣는 순간 주교가 이렇게 반응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곁에 앉아 있던 주교가 그의 손을 부드럽게 건드리면서 말하였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 구절을 주목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저는 그 부분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고위 공직자인 미리엘 주교가 모든 사람이 외면하고 무시하는 죄수의 손을 부드럽게 만졌습니다. 저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신학의 눈으로 다음과 같이 부연해서 읽었습니다.

생명으로 가득한 주교의 따뜻한 손이 죽음의 냉기로 가득한 장발장의 손을 부드럽게 만졌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손을 만진다는 것은 평범하지만 특별합니다. 주교가 손을 내민 것은 장발장을 친구와 형제로 받아들인다는 표시입니다. ‘구원은 만남에서 시작되어 따스한 손길을 타고 전달됩니다. 구원은 말이 아니라 따뜻한 손길을 통해 전달됩니다. 손과 손의 접촉은 생명의 온기가 전해지는 순간입니다. 저는 그 손과 손의 접촉에서 성탄의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지기 위해서 내민 손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손을 내밀어 만진 사건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성탄절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죽음의 그늘에 앉아있는 인간을 찾아와 두 팔로 포옹한 사건입니다.

옛날 유대 사회에서는 손을 대서는 안 될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병 환자나 죄인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캔들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병상에서 열병에 시달리고 있는 여인에게도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은 평판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접촉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치유를 경험했습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제사 의식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자기 백성과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실감이 나지 않았겠지만 제 생각에는 하나님도 허전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피가 통하고 정이 흐르는 살갗을 통해서 사람들을 쓰다듬어 주시고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살과 뼈가 있는 인간이 되시기를 결정하셨습니다. 인간과 피부로 접촉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의 인간성을 하나님이 취하심으로 우리 인간의 운명을 하나님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인간들과 접촉하신 날입니다. 손을 내밀어 우리를 만져 주시고, 안아 주시고, 쓰다듬어 주시고 포옹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복음서 이야기가 들려주듯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되셨을 뿐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시고,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사람들과 접촉하고 사귀고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귐 가운데 들어갈 수 있게 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대해야 합니다. 사랑은 마음으로 할 수 있지만 접촉함으로 더 잘 전달됩니다. 성탄의 계절에 혹시 소원했던 가족이 생각나면 손을 내밀어 관계를 회복합시다. 아버지를 찾아가 손을 만져 드리며 정을 표현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자녀를 쓰다듬어 주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성탄의 기쁨을 선물에 담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해도 좋겠지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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