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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서적 신앙 - 오정환

성서와문화 2016.05.20 19:55 조회 수 : 1691

나의 성서적 신앙

 

오정환 (연세대 명예교수, 수학)

 

어느 주일 교회 친교실에서 한 교인이 옆에 서 있는 다른 교인에게 당신은 아직도 사도신경을 믿습니까?”라고 묻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 주일 예배 때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데 이 교인은 어쩌면 사도신경을 과거 어느 시기까지는 믿어 오다가 그 이후로는 의심을 품거나 또는 믿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신경은 어떤 개인의 신앙고백이나 주장이 아니라 신앙공동체인 역사적 교회의 전통적, 공식적 및 성서적 고백인 것이다. 이 신경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당시 이단교리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325년 니케아회의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면서 수정 보완된 것으로 안다. 그 내용을 보면 모두 성서에서 취합된 것으로서 구약성서에서는 오직 하느님의 천지창조한 문구만 채택했고 나머지는 모두 신약성서에서 옮겨온 것이다. 따라서 사도신경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다는 것은 불신앙이라고 말해서 좋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신경이 빛을 본 시대와 오늘 우리 시대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적 및 문화적 거리가 있다. 중세기 초엽의 기독교인들의 신앙이해와 역사적 상황은 현대인인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적 산물인 성서나 또는 사도신경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믿으려고 할 때 지성적 신앙인으로서는 고민과 갈등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문자와 행간 깊이에 잠재하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 한다면 역사적 신앙전통을 능히 수용할 수 있는 여지도 없지 않을 것이다.

캐나다 리자이나(Regina)대학의 종교학 교수인 오강남 박사는 그의 저서 예수는 없다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임금님에게 당나귀 귀가 있어도 임금님 노릇하는데 지장이 없듯이, 성경이나 기독교의 가르침 등이 모든 면에서 흠 잡을 데 없이 완전무결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그 본래의 역할을 충실히 해 오고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임금님이나 부모나 기독교나 모두 객관적으로 최고이기 때문에 따른다는 믿음은 필요 없는 믿음이다.”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사물을 극단적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마치 사과 한 상자 속에 한 개만 상했어도 그 상자의 사과 전체를 버려야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성서 속에 한 구절만 틀렸다고 판단되는 것이 있다면 성서 전체를 불신하는 것이다. 성서는 문자 그대로 진리라고 이해하게 되면 그 문자 너머에 있는 참 뜻을 놓칠 수 있는 한 두 구절을 찾아보기로 한다.

첫째, 사무엘상 15:2-3. “만군의 주가 말한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한 일 곧 길을 막고 대적한 일 때문에 아말렉을 벌하겠다. 너는 이제 가서 아말렉을 쳐라. 그들에게 딸린 것은 모두 전멸시켜라. 사정을 보아 주어서는 안 된다.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젖먹이, 소떼와 양떼, 낙타와 나귀등 무엇이든 가릴 것 없이 죽여라.”

나는 위의 구절을 하느님의 말씀 그대로 받아드릴 만한 완고한 신앙의 소유자가 되지 못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온 하느님은 사랑과 정의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기록은 자기 민족만이 하느님의 적자(嫡子)라는 뿌리박힌 선민사상(選民思想)의 표현으로써 다른 모든 민족들을 이방인으로 여기는 독선적 및 민족주의적 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요한복음 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

기독교인들은 위의 구절을 가지고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고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므로 비 기독교인들로부터 영적인 오만과 독선에 찬 종교인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일례로 법정 스님이 입적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이런 말을 전하였다. “어떤 권사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법정 스님은 참 좋은 사람 같았는데 지옥에 간 것이 너무 안 되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위에 성경구절을 문자 그대로 믿는 신앙인이 기독교인이 아닌 법정 스님이 지옥에 갔다고 하는 말은 너무도 당연한 발상이 아닐까!

나는 기독교인이므로 오로지 예수를 통한 구원의 길 하나 밖에 모른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결코 타종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타종교에도 기독교와 유사한 구원의 길이 있으면 하는 바람을 지니고 있다. 예수께서는 다른 종교를 거론하면서 그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읽은 기억이 없다. 사도 요한은 그는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시니, 우리 죄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입니다.”(요한12:2)고 하면서 인류의 보편적 구원을 시사하기도 하였다.

미국 뉴욕에 있는 유니온신학대학원의 폴 틸리히 석좌교수이며 불교에도 해박한 신학자 폴 니터(Paul F. Knitter) 박사는 말하기를 다른 종교를 인정하는 것은 결코 기독교를 희석(稀釋)하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니터 교수 외에도 구미의 여러 신학자들이 이제는 각종교가 영적인 독선에 갇혀있던 울타리를 헐고 다른 종교와 화해, 협력하여 지금 온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분쟁, 식량문제, 기후 온난화문제 등과 같은 국제적인 난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기독교는 이웃 사랑의 종교이다. 이 이웃의 울타리 안에 불교인, 이슬람교도, 힌두교인 등 모두 들어와서 서로 손잡고 협력하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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