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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나기 - 권미경

성서와문화 2016.05.20 19:54 조회 수 : 1878

2015년 여름나기

 

권미경 (방송작가)

 

여름 메르스가 극에 달한 6월부터 극장에서 살았다.

특히 평일 대형극장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시원하고 쾌적했다.

이런 한적함이 좋아 이 여름 화면이 한 눈에 딱 들어오는 G열에서 매번 좋은 영화를 만났다.

클림트 그림을 주제로 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우먼 인 골드, 심장이 쫄깃해지는 미션임파서블 ? 로그네이션, 흑인 투표권 투쟁을 위한 마틴 루터 킹의 이야기셀마, 남성들의 워너비 전지현 주연의 암살을 봤다.

암살은 일제강점기를 그것도 가장 암울했던 1933년을 배경으로 다루었다. 다른 영화들이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배경만을 가져왔다면 이 영화는 나라 잃은 설움과 아픈 역사에 대해 주제 의식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과거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고, 친일 청산 문제는 여전히 논란을 일으키며 진행 중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친일세력은 통쾌하게 처단된다.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친일 청산, 일제에 대한 복수로 대리만족을 넉넉히 충족시켜 주고 있어 시원하다.

게다가 광복 70주년에 딱 맞춰 개봉, 흥행공식이 적절히 맞아 떨어져 현재 시점에서 광복절에는 1000만 관객이 무난히 통과되리라는 예상들을 하고 있다.

 

815일은 우리에게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날이고 일본에는 패전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광복절 일주일전 정부는 번개 불에 콩 볶듯 임시공휴일을 지정해 사흘간의 연휴를 국민에게 후딱 던져주었고, 일본은 작년 연말부터 법적 지정된 여름 명절 연휴가 15일까지로 나흘간의 연휴가 이어진다.

이 연휴 동안 두 나라의 국영 TV에서는 70년이라는 묵직한 타이틀을 단 광복과 패전의 시리즈가 줄줄이 방영되었다.

메르스가 지나간 8, 이번에는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연휴 내내 TV 리모컨을 고수하고 지냈다. 여름날의 시간은 꼴깍거리며 잘도 흘러갔다.

 

한국의 공영 방송 KBS나는 대한민국, 국민대합창,분단70년을 넘어 슈퍼코리아로 2부작등 광복 70년 기획특집을 방영하였다.

일본방송 NHK86일 히로시마 평화공원 원폭 70년 기념식 생방송을 비롯, 이미 한 달 전부터 패전 70년을 재조명 하고 있다.

거의 대부분 다큐멘터리인 종전· 알려지지 않은 7,

전후 70태평양전쟁 38개월, 일본인의 기억,밀실의 전쟁 ~발굴, 일본군포로의 육성, 전쟁의 기억 전후 70등이다.

큰 틀에서 보자면 KBS는 광복이후 격동의 세월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고 NHK는 패전 과 피폭자의 입장에서 전쟁의 피해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다른 듯 닮은 이 두 채널은 70년 전 전쟁 이야기가 공통분모이고 각기 그리는 시대적 배경은 두 나라 시청자를 여러 각도로 열 받게 하고 끝내 애국심까지 자극하기도 한다.

87NHK스페셜 다큐멘터리증오는 이렇게 격화되었다를 보았다.

전쟁 때마다 반복되는 프로파간다, 태평양전쟁에 관한 귀중한 자료가 밝혀졌다!!

With the Marines at TARAWA는 미 해병이 태평양전장에서 촬영한 약 3천통의 필름 300시간에 이르는 영상 중에서 미국에게 유리한 영상만을 편집한 전쟁 프로파간다이다.

이 영화는 1945년 제17회 아카데미수상식에서 단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기도 했다.

미 국무성은 이 프로파간다로 당시 전쟁에 관심이 없었던 미국민을 열광시켜 일본군의 전비 3배에 달하는 167억불의 국채판매에 성공했다. 미국은 영상을 무기화하여 국민을 전쟁의 광기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러나 전장에서 일본군의 시체를 훼손하는 미군 모습을 비롯한 군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 영상은 교묘히 편집하여 숨겨 공개하지 않았다.

NHK3천통의 필름 중 미 편집 분의 소재까지 확보하는데 최초로 성공했다.

미국이 방영을 금지한 영상도 입수, 디지털화하고 여기에 생존해 있는 당시 카메라맨과 검열담당관의 증언으로 영상이 몰고 온 전쟁의 광기와 국민을 전쟁에 열광시키기 위해 국가는 어떻게 영상과 정보를 조작했나? 그 빛과 그림자를 밝힌다는 내용이다.

 

49분의 다큐멘터리증오는 이렇게 격화되었다를 보면서 혹시 일본군의 진주만공습보다 먼저 미국이 유황도와 사이판을 공격하여 점령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자국이 피해자라는 뉘앙스가 짙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일본의 전쟁 책임을 날카롭게 비판해온 NHK의 간판 다큐 프로그램인 NHK스페셜이 일본의 패전 70주년을 맞는 올해엔 반성의 의미를 제대로 담은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네 공영방송이 방영하는 먹방과 육아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시청자가 푹 빠져 있는 동안 일본의 공영방송은 이렇게 전 국민을 전후 7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패전의 아픔, 세계 유일의 피폭국으로 집요하게 반복하여 각인시키고 있다.

 

전쟁을 일찍 끝내기 위한 미국의 결단으로 194586815분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고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201586일 히로시마 평화의 공원 원폭기념탑에서 남녀 어린이대표가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선언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세계유일의 전쟁피폭국이다.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

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NHK 카메라는 낭독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뒤따르며 긴 그림자를 끌어낸다. 카메라가 따라가는 동안 문득 우리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원폭의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의식만 이 아이들 기억 깊이 각인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촉은 대체로 자신이 보고 싶고 듣고 싶어 하는 것에만 한정되어 반응한다.

 

광복70주년을 기리는 행사들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보통사람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우리 기억에 남는 인물들까지 격동의 70년을 고궁에서 광장에서 혹은 영화관에서 TV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우리의 역사를 공유하고 반추하고자 하고 있다. 여기에 동행하는 것도 다음 세대에게 온전한 기억을 건네주기 위한 의식으로 역사에 대한 참여방법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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