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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景福宮)에 얽힌 이야기

 

김효숙 (조각가)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제 점령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찾은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짓밟힘을 받은 상처들은 우리 문화재 속에, 우리의 사회문화 속에 남아 치유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 대표적인 예로 조선의 정궁(正宮)인 경복궁을 떠올렸다.

경복궁과 나의 인연은 깊다. 나는 조선 말엽 승지를 지내셨던 증조부의 덕으로 생각되지만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迎秋門) 길 건너편에서 잔뼈가 굵었다. 중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중앙청 앞을 지나 등하교를 했다. 조각의 길을 찾아 고심하던 때에는 경복궁 안에 새로 세워진 국립중앙박물관을 통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었고 궁궐을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하며 나를 키울 수 있었다. 특히 비오는 날이면 궁이 주는 무게와 엄숙함, 그리고 그 속에 감도는 쓸쓸하고도 아늑한 조용함이 오히려 따듯하게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듯 했다.

1995년 중앙청으로 쓰이던 조선총독부 건물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다 광복 50주년을 맞았다. 정부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기로 결정했고, 199611월 완전히 철거되었다. 남산 신사(神社)를 향해 지어졌던 조선총독부 건물 앞에 빗뚫게 시멘트로 세워졌던 광화문도 헐고 경복궁 원래의 위치에 나무로 다시 복원하기 위해 오랫동안 가림막이 가리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택시를 타고 남대문에서 경복궁 쪽을 향해 가던 중,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앞뒤 산이 서로를 감싸듯 마주하는 장엄한 북악산과 북한산을 배경으로 단아하고 아름다운 광화문의 모습이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다. 나는 그제야 눈에 백태가 벗겨지듯 우리조상들이 정궁을 여기에 세웠던 이유를 알 것 같았고, 거짓에 가려 진실과 직면하지 못했던 것에서 깨어나는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던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시작과 함께 태조 이성계에 의해 즉위 3년인 1394년에 세워졌다. 경복궁은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여 남북 직선 축 상에 중심건물을 나란히 배치하고, 엄격한 좌우대칭의 구조 하에 정남향으로 세운 궁이다. 이것은 왕조의 이상인 성리학적 세계관을 건축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공간 조성은 삼문삼조(三門三朝)를 원칙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큰 틀은 궁궐의 앞쪽에 정치를 하는 치조(治朝)공간을 두고, 뒤쪽에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의 침실과 후원을 배치하는 구성이다. 광화문에서 근정문까지가 외조(外朝)공간이고, 근정문에서 사정전까지가 치조(治朝)공간이며, 침전이 있는 강녕전과 교태전 일곽이 연조(燕朝)공간으로 세 구역권으로 구분된다.

경복궁을 법궁(왕이 주로 머물면서 정사를 돌보는 핵심 궁궐)으로 삼는 궁궐체계는 제 4대 세종과 9대 성종대에 걸쳐 그 틀과 격식이 확충되며 갖추어졌다. 그러나 1592년 제14대 선조(宣祖) 25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궁은 완전히 불타 없어졌다. 그 후 경복궁은 27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었다. 역대 왕들이 재건의 뜻을 두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다 제 26대 고종(高宗) 4(1867)에 왕실의 권위를 확립하려는 강력한 의지에 따라 경복궁이 복원되었다. 역사상 가장 장대한 규모였다. 그러나 1895년 일본은 궁 안의 궁이었던 건천궁에서 명성황후를 시해(을미사변)하고 불태워 그 앞 향원정 연못에 버리는 엄청난 일을 자행하였다. 고종은 신변의 안전을 위해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고, 경복궁은 복원된 지 27년 만에 다시 빈 궁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강탈한 일본은 1915년 침략 5주년을 기념하여 물산공진회(物産共進會)’를 연다는 명목으로 경복궁의 무차별 파괴를 시작하였고, 1916년에는 궁 앞에 위압적인 그들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웠다. 무수한 건물들이 헐려나갔고 그 자리에는 총독부 관리들의 전시행정에 필요한 시설들이 들어섰다. 또한 전국 각지의 명산대찰 터에 남아있던 불교유물(불탑, 승탑, 탑비 등)을 파손하면서까지 옮겨와 헐어낸 건물터에 세웠다. 1935년에는 건천궁을 헐고 그 자리에 대한제국 병탄(倂呑) 25주년을 기념한다며 박람회장을 세웠고, 경복궁은 이제 일반인의 놀이공원으로 공개되는 운명이 되어졌다. 궁은 원형의 10분의 1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일제에 의한 경복궁의 파괴, 왜곡, 변형 등은 작게는 조선왕조 500년을 부정하는 동시에 크게는 민족사 전체를 부정하고 우리 국토를 식민지화하려는 것으로 치밀한 계획 하에 주도면밀하게 파괴사업이 자행되었다.

이러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은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정책과는 크게 달랐다. 서구 열강들은 콜럼버스(1451~1506)의 신대륙 발견이후 15세기 말엽부터 산업혁명을 통한 산업자본의 눈부신 발전의 결과로 축적된 잉여자본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고, 그것이 차츰 식민지제국주의 길을 걷게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19세기 중엽 명치유신(明治維新)을 통해 재빠르게 서양의 근대산업자본주의를 받아드리며 뒤늦게 제국주의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따라서 당시의 일본은 아직 전근대를 청산하지 못한 근대와 전근대가 뒤범벅인 나라였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에서도 서구열강 대 아프리카 및 남아메리카대륙은 합리적이고 근대화된 서구문화 대 전근대적 전통적 비서구문화의 관계이고, 기독교문화 대 비기독교문화이며 백인문화 대 유색인문화였다. 그러나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관계는 전혀 달랐다. 동색동문일 뿐 아니라 역사 이래 한국은 일본에 문화적 스승이었고, 일본은 고대 이래 한국문화의 식민지였다. 그러므로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할 때 맞닥트리지 않을 수 없었던 문화적 콤플렉스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억지로 신도(神道)나 황도(皇道) 사상을 강제하는 한편 한국인에게 서구문화를 접할 기회를 가로막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이 문화적 콤플렉스를 커버하기 위해 그들은 식민사관이라는 역사의 날조사업에 착수하였고, 무차별한 문화재 파괴사업을 감행하였다. 그들이 꾸미는 식민사관이란 조선은 당파싸움만 하여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이며, 태고(太古) 때부터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이론을 펴는 것이다. 이 엉터리 작업을 위해 한일관계의 사료가 희미한 상고사(上古史)에 대해서 용감무쌍한 날조, 변조, 위작, 왜곡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우리가 과거 후진 일본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는데 반해 그들은 선진한 우리를 흠모하여 많은 기록을 남긴데서 유래한다. 그리하여 자기 쪽에 많이 있는 고대사 사료를 들어 일본은 태고 때부터 한반도를 그들이 지배하였고 식민지화 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지금도 이 날조 사업은 진행되고 있다.

 

경복궁은 일본에 의한 참혹한 전쟁과 국토의 강제침탈이라는 우리민족의 수난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지금 경복궁은 단계적인 복원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는 일제에 의해 단절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고 민족문화의 발전을 이끌어내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 할 것이다. 경복궁과 같이 일제에 의해 온통 난도질당한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민족이 일본이 저질러 놓은 식민지 지배 이론에서 벗어나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주체적인 자세로써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우리역사바로세우기는 주체적인 눈을 갖고 바라볼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 바른 역사전통의 뿌리 위에 세계와 호흡하는 미래를 열어가야 하겠다. 경복궁의 파괴의 역사와 그 복원의 의미를 되새기는 광복 70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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