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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음악 - 김순배

성서와문화 2016.05.20 19:53 조회 수 : 1527

세 종류의 음악

 

김순배 (한세대 겸임교수, 음악)

 

음악은 당연히 음() 즉 소리를 재료로 삼는 예술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음악의 본질은 수학이라고 주장했다. 수의 비율관계를 소리로 나타낸 것이 음악이므로 음악은 수학의 한 분파라고 역설한 것이다. 악기의 제작 원리나 음향학이 모두 그의 이론에 근거해 있음을 볼 때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5세기경 로마의 철학자였던 보에티우스는 음악의 원리라는 책에서 음악을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우주의 음악(Musica Mundana),” “인간의 음악(Musica Humana)” “악기의 음악(Musica Instrumentalis)”이 그것이다. 들리는 음악만을 음악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낯선 이론일 수밖에 없다.

 

우주의 음악은 말 그대로 이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음악이라는 것. 수많은 별들의 운행, 오차 없이 돌아가는 은하계의 질서는 물론 규칙적으로 순환하는 계절의 변화 같은 것들이 모두 이에 속한다. 가히 전 우주적인 차원의 하모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론이다. 물론 이 경우에 소리는 실제로 들리지 않는다. 천체의 움직임 자체가 하나의 음악이라고 보면 된다. ‘인간의 음악에서 시선은 사람에게로 향한다. 생각 깊은 의사들을 흔히 탄복하게 만드는 인체 각 부위의 오묘한 구조와 조화, 그 작동원리가 이에 속한다. 나아가서 정신과 몸의 조화도 인간의 음악에 포함된다. 인간의 심신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있는 소우주이자 하나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역시 이 경우에도 소리는 없다. 세 번째 악기의 음악이 비로소 우리가 이해하는 그 음악이다. 사람의 목소리를 포함한 각종 악기를 통해 만들어내는 음악이 비로소 악기의 음악이 된다. ‘우주의 음악은 때때로 악기의 음악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하고 악기의 음악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심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 세 가지의 음악이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철저히 수의 비례와 조화에 의거한 성립논리를 갖는 세 종류 음악의 본질은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다. 보에티우스의 통합적인 음악관은 중세의 대학에서 수학이나 의학과 함께 음악이 필수과목으로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수긍하게 만든다. 음악은 지식의 한 분과였던 것이다.

 

음악 속의 알 수 없는 기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즐겨듣는 음악으로부터 작곡가의 사상이 즉각적으로 감지되기도 하고 딱히 설명할 수 없는 모종의 느낌으로 전해져오기도 한다. 창작자 자신이 ‘musica humana’이기 때문일까? 우주 속에 가득 차 있다는 음악이 인간의 정신과 손길을 거쳐 각종 매체를 통해 들리는 소리로 화할 때 빚어지는 효과는 신비하다. 글이나 문장이 그렇듯 음악은 그 사람을 반영한다. 예컨대 바그너나 말러 같은 이들의 작품에서 종종 전해지는 실물대보다 큰 초월에의 의지는 분명 그들의 정신세계로부터 발원한 것일 터이다. 시대에 따라 정도와 양상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음악 창작의 주체인 작곡가의 정신세계가 작품에 그대로 드러난다는 사실은 주목을 요한다. 그 생생하거나 은밀한 상호관계를 인지할 때 음악 듣는 일이 조금은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보에티우스가 살았던 5세기경은 음악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때이다. 그레고리안 찬트가 등장하려면 100년 이상 더 기다려야 하는 시기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그리스 철학을 두루 섭렵한 독실한 기독교도 보에티우스는 음악의 본질을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개인적으로 음악의 원리를 처음 접했을 때는 알쏭달쏭하게만 여겨졌던 음악의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가 이제는 조금씩 이해되고 있다. 언젠가 서툰 음악도가 원하는 소리를 찾아 자신의 악기와 씨름하고 있을 때 지혜로운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소리는 이미 이 우주에 가득 차 있다. 너는 다만 그것을 건드리면 된다.”. 그렇게 우주에 보이지 않게 편만한 소리를 툭 건드리는 심정으로 악기를 다루자 홀연 원하는 소리가 실체를 드러냈다. 보에티우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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