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5년 성서와 문화

그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신학)

 

"구슬도 실에 꿰어야 보물"이라는 속담이 맘에 떠오릅니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들이 사랑했던 옹달샘 계간지 <성서와 문화> 에 실린 글 91편을, 그 색상과 모양이 다양한 구슬 같은 글들을 편집 간행하여 진주목거리를 만들어냈다는 데 외형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 책 간행의 실질적 의미는 엮은이의 간행사에 간접적 표현으로 잘 나타나 있는데, 엮은이 박영배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번 책에서는 신학자들과 인문학자들에 이어 자연과학자와 예술가의 글도 실었습니다. 각 필자들의 전공분야와 관심은 각각 다르나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가 성서와 문화 사이의 그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용한 문장 속에서 성서와 문화 사이의 그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라는 구절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칼 바르트가 20세기 초, 하나님 말씀의 신학운동을 새롭게 펼칠 때, "모든 목회자들과 진지한 크리스챤들은 한손엔 성서를 들고, 다른 한손엔 신문을 들고, 그 둘을 동시에 읽어야 한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성서와 신문이라는 상징적 표현이 우리들 계간지 경우엔 <성서와 문화>라고 언표 되고 있습니다.

성서라는 어휘 안에는 넓은 의미로서 종교라는 의미도 있고, 66권 기독교 경전이라는 의미도 있고, 2000년간 전통으로 쌓인 신학적 통찰과 지혜도 그 말 안에 담겨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성서라는 어휘의 핵심 본질은 33년을 살고 십자가에 처형당해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생명, 그 영적 임재, 그 영원히 인간과 사회와 종교를 끊임없이 혁명하도록 추동하는 아름답고 정의로운 진리의 힘을 상징하는 어휘일 것입니다. ‘문화라는 어휘는 넓게는 세상현실이요, 인간이 쌓아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의 업적과 그 힘이요, 구체적으론 인간의 실존상황과 세계현실 일 것입니다.

엮은이는 그 두 캠프가 지시하는 실재 곧 성서의 세계문화의 세계는 그 본질이 공간개념을 빌려 비유하건데 멀고도 가깝다는 것입니다. ‘멀고도 가깝다는 표현이 말하려는 의미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안 잡히는 이유는 그 둘의 관계가 매우 역설적이고 신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두 범주의 세계 혹은 두 실재 관계를 파악하려고 할 때, 멀다는 깨달음과 고백과 심지어 절망을 우선 느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양자를 곧바로 동일시 할 수 없다는 질적 차이 곧 일종의 비동질성을 느껴야합니다. 창조주는 피조물이 아닙니다. 거룩한 것은 속된 것이 아닙니다. 영원은 시간이 아닙니다. 설교는 만담이나 시사평론이 아닙니다. 예배는 도덕강론, 종교강화 시간이 아닙니다. 계시는 이성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는 복음서가 가르치는 질서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이 세상은 참사람 예수를 발가벗겨 십자가에 처참하게 못 박아 죽인 세상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이 세상을 사랑해야 하지만, 본향은 이 세상을 초극한 그 무엇이요 저 먼 그 어디라는 자각 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의 위기가 어디에서 유래할까요? 자본주의 문화, 신자유주의 가치관과 세계질서에 너무나 철저히 순응하고 성공적으로 적응한 나머지, 갈기 빠진 늙은 숫사자처럼 그 결기가 다 사라져버린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지요? 그래서 오늘 우리 손에 주어진 책은 성서와 문화그 양자 사이는 멀다는 분리의식, 구별의식을 먼저 가지라는 충고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책이름은 성서와 문화의 먼 이야기라고 작명되지 않고 그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멀고도 가깝다라는 이 역설의 논리를 바로 깨닫게 하려고 이 책의 기고자들 26명은 그들 각자의 전공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편집자는 보았기에 책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입니다.

그 먼 거리에 있는 거룩한 실재와 진리가 가깝게 된 이유를 성경은 성육신의 원리로 설명합니다. 말씀이 육이 되시기에, 영원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고, 거룩이 속된 것을 입고, 처녀가 성령으로 성자를 잉태하고, 시장 깡패건달 김익두가 신령한 부흥강사가 되고, 함북 경흥군 깊은 산골 어수룩한 청년 김재준은 한국의 신학과 교회 사회를 개혁하는 산 횃불이 됩니다.

이 책의 강조점은 성서적 실재와 문화적 실재 사이에는 비록 그 건널 수 없고, 뒤섞을 수 없는 거리가 있지만, 하나님의 은총과 창발적 기적으로 말미암아 가깝다는 진실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가까운가 하면 이젠 둘이 아닌 "하나"가 되었고, 하나가 되어가고 있으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속 멀리 떨어져 있기만 하는 것이 죄요, 타락이요, 죽음이요, 비진리요, 정신적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20세기 기독교 지성인 중에서 복음과 문화의 관계설정을 깊이 연구한 리처드 니버는 그 관계모델을 5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이른바, 문화대립 적대 유형(Christ against Culture), 문화위에 군림 유형(Christ above Culture) 문화와 병존하는 두 왕국 유형(Christ and Culture), 문화에 순응 혼합하는 유형(Christ of Culture), 그리고 문화변혁 유형(Christ transforming Culture)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 그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는 서구 신학자 리처드 니버가 분류한 5가지 유형과는 색깔이 다른 것을 느낍니다. 동아시아 종교문화를 잘 알고 기독교 복음을 받아드린 제6번째 새로운 유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름 붙인다면 역설적 不二論 유형’(Christ in paradoxical advaita)이라고나 할까요?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와 특히 기독교계의 모든 부끄러운 일들은 그 멀고도 가까운 두 실재를 멀리 떼어놓거나, 너무 가까워 같은 것이라고 동일시 해버리는 오류에서 연유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서의 외형 종교왕국과 거대교회, 축적된 종교전통과 상징체계가 곧바로 그대로 거룩 그 자체인양 착각하는 경건한 기만병에 걸려 자기와 그리스도를 동일시 해버리는 교만과 오만에 있는 것입니다. 정반대로, 기독교란 세상과는 상관없이 죽은 다음 천당 가는 종교요 하늘은 땅에서 너무 먼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책이름의 끝말이 이야기라는 것에 주목합니다. 이 책의 의미는 그 멀고도 가까운 두 실재가 역설적 반대일치의 진리로서 우리 일상 속에 현존한다는 현실을 딱딱한 학술논문으로 해명하는 것이 아니고, 아주 곰삭은 된장국 같은 수필신학 이야기 형태로 진술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 문체의 글쓰기는 전공분야가 다른 사계의 최고 지성인들, 지혜자들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 책이, 독단과 독선으로 경직된 한국 기독교에게 도움이 되고, 길을 잃고 절망가운데 있는 길 찾는 우리 겨레 동포들에게, 특히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삶의 의미발견을 돕는 책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책을 엮으신 박영배 목사님과 책을 만든 한들출판사 임직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김경재. 2015.5.28. 루스채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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