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4년 성서와 문화

[김 순 배 ·피아니스트 / 음악평론]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은 그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비현실적 세계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서양적 정서가 담긴 이야기에 자주 출현하는 요정의 존재와 ‘사랑의 물약’, 그것들이 매개체가 된 감정의 복잡다단한 뒤엉킴 등이 극의 주요 모티브입니다. 이야기는 오베론 왕이 다스리는 요정의 숲에서 헤매다 만나는 두 쌍의 커플들의 엇갈린 사랑과,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요정 세계의 왕이 그들의 사랑을 제대로 맺어주어 행복한 결말에 이르게 만들기까지의 다소 황당하면서 비현실적인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습니다.
배경이 되는 시간은 낮이 아닌 밤의 숲속. 자연히 질서가 아닌 혼돈의 상태가 작품의 대부분을 지배합니다. 청춘남녀들을 에워싼 우여곡절의 연속은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말로 향하고 극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요. 그 모든 혼란은 결국 여름밤의 한바탕 꿈이었다는 것을 제목은 암시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잠재한 일탈에의 욕망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고통스러운 혼돈을 지나 질서로 귀환하고자 하는 또 다른 지향성을 셰익스피어는 세련된 희극으로 패러디한 것입니다. 인간의 깊은 내면을 예리하고도 경쾌한 풍자로 형상화하는데 귀재인 셰익스피어가 드물게 몽환적이며 초현실적인 소재를 사용해서 특별하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1836년 열 일곱 살의 멘델스존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가 활짝 피어나려는 시기, 천재 멘델스존도 그 영향권 안에 당연히 놓입니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인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총명하고 예민한 소년은 즉각 매혹당합니다. 그는 곧 ‘한여름 밤의 꿈’을 위한 서곡을 만듭니다. 그러나 ‘서곡 0p.21’은 일단 소년의 습작으로 머무르게 되지요.
십 수년이 흐른 후 멘델스존은 프러시아의 빌헬름 왕으로부터 연극 ‘한 여름밤의 꿈’이 공연될 때 함께 연주될 음악을 작곡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모두 14곡에 이르는 연극용 음악을 완성하게 됩니다. 소싯적에 만들었던 ‘서곡’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오페라는 아니지만 비슷한 극적인 전개를 갖는 연극의 진행에 적절한 전주곡이나 간주곡, 또 특정 장면의 분위기를 암시하거나 돕는 음악을 삽입하는데 이 같은 음악을 ‘부수음악incidental music’이라고 부릅니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도 그의 작품이 상연될 때 음악이 많이 삽입되기를 원했다고도 하지요. 음악사에서 ‘부수음악’은 간간 작곡되어 왔지만 주요 걸작들은 19세기 낭만시대에 오면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그의 ‘페르귄트’,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등이 그것들이지만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이 그 중 가장 출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멘델스존은 이 연극을 위해 모두 14개의 곡을 만들지만 10대에 썼던 ‘서곡’과 사이사이에 나오는 ‘스케르초’와 ‘녹턴’ 그리고 마지막에 흐르는 ‘축혼행진곡’이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자주 연주됩니다. 특히 모든 오해와 갈등이 해결되고 네 명의 남녀 주인공이 각각 자신에게 적합한 짝을 찾아 합동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에서 울려 퍼지는 ‘축혼 행진곡’은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의 결혼식에서 미래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신랑신부를 축복하는 음악으로 쓰여 너무나 유명해집니다.
실제 연극상연에 사용된 부수음악인 ‘한여름 밤의 꿈’을 순수 감상용 음악으로 만들면 모음곡suite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예컨대 노르웨이의 그리그가 입센의 연극 ‘페르귄트’를 위해 작곡한 음악들이 극의 상연과 무관하게 연주용 모음곡으로 만들어 유명해진 경우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멘델스존이 음악회용으로 편집한 ‘한여름 밤’ 모음곡에는 서곡, 스케르초, 간주곡, 녹턴과 축혼행진곡이 순서대로 연주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각각의 곡이 독립적으로 연주되기도 합니다.
멘델스존은 요정의 세계와 신비한 숲속의 이미지를 각종 목관악기와 현악기의 감각적인 음향을 활용해 더할 수 없이 낭만적으로 묘사합니다. 요정의 날갯짓처럼 투명하고 섬세한 바이올린, 여러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금관악기 소리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북돋는 상승효과를 가집니다. 이 신선하고도 달콤한 음악을 들은 슈만도 “마치 요정들이 직접 연주를 하는 듯하다”며 격찬했다고 하지요.

‘한여름 밤의 꿈’은 멘델스존 뿐 아니라 몇몇 다른 작곡가들이 곡을 붙이기도 했고 근래에는 영화나 뮤지컬로 제작되어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여러 다른 버전의 ‘한여름 밤의 꿈’들은 인간의 엇갈리는 욕망을 보다 감각적이고 진득한 색감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띱니다. 멘델스존은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시절 셰익스피어에 감명을 받아 서곡을 작곡했고 후에 연극 전체를 위해 14개에 달하는 곡목을 만들었지만 몽환적이며 다소 퇴폐적일 수도 있는 소재를 놀랍도록 명랑하고 밝게 그려냅니다. 특히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맺어지는 최고의 순간에 울려 퍼지는 ‘축혼행진곡’은 클래식 레퍼토리 중에서도 가장 씩씩하고 희망에 찬 음악의 대표 격이지요. 멘델스존은 이 희극이 결코 가벼운 농담 혹은 심심파적을 위한 옛날이야기이거나 복잡한 욕망들의 현란하기만한 퍼레이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파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음악은 인간 심리의 저변을 날카로운 풍자와 넘치는 재치로 꿰뚫었던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산뜻한 품위를 덧입혀 주었습니다. 축혼행진곡 다음으로 자주 접할 수 있는 ‘서곡’부터 시작해서 ‘스케르초’, ‘녹턴’, ‘간주곡’ 그리고 ‘축혼행진곡’까지 들어보시면 이 환상적인 드라마가 대체 어떤 분위기일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멘델스존 자신이 지휘자와 음악감독으로 일하면서 그 명성을 세계적으로 드높여 놓은 Leipzig Gewanthaus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SUDvZaMl4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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