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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 바그너

성서와 문화 2014.06.25 17:08 조회 수 : 2565

[이 상 범 ·신학]


19 45년 4월 30일 오후 3시 30분, 히틀러가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자살했고, 막 혼인식을 올린 에봐 브라운이 독약을 먹고 뒤를 따랐다. 둘의 시신은 곧 관저 안뜰에서 화장된다. 이튼 날, 오후 9시 30분, 독일 함부르크 라디오 방송국은 2곡의 음악을 흘러 보낸 후, “엄숙하고 중대한 뉴스가 있습니다.” 하고 운 떼면서 총통의 죽음을 보도했다고 하는데, 총통의 죽음을 먼저 알리고 다음으로 음악을 흘러 보냈다는 설도 있어 그 차례는 분명하지 않다.
이어서 10시 20분에는 해군 제독 칼 되니츠Karl 
Donitz가 “오늘 오후, 히틀러 총통께서 전선에서 장열하게 전사하셨다.”하고 공식발표하면서, 자신이 유서를 따라, 후계자로 지명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총통의 유지를 이어 철저하게 항쟁하자고 독일국민들에게 호소했다.

그런데 히틀러의 죽음을 알리면서 함부르크 방송국이 흘러 보낸 음악은 독일인들이 의례히 그렇게 했으리라고 짐작되는 “베토벤의 장송행진곡”(교향곡 3번 영웅의 2악장)이 아니라, 리하르트 바그너의 <지그프리트 장송곡>이었다. 히틀러가 그의 사후에 방송할 곡명까지 지시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그를 가장 잘 알고 있는 한 측근의 의지가 영향을 준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곡은 안톤 부르크너의 <교향곡 7번>의 2악장 “아다지오”였다. 오늘날에는 부르크너의 “아다지오”가 웬만한 음악 애호가들의 귀에 익숙해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독일인들조차도 흔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르크너는 19세기 후반 빈을 중심으로 하는 유업 음악계가 브람스파와 바그너파로 나뉘어서 극한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에 보수적인 브람스편이 아니라, 혁명적인 바그너 편에 서 있었다.

히틀러는 바그너의 음악에 푹 빠져 있었다. 해마다 열리는 바이로이트 음악제에 참여했고, 정권을 잡은 후에는 스스로 최대 스폰서로 나설 정도였다. 그런 히틀러가 독일인들의 전설을 바그너가 재창조한 영웅 “지크프리트”를 내심 모방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으리라. 히틀러는 가슴 속에 지크프리트의 전설과 자신의 생애를 겹쳐놓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신들의 황혼>은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의 반지>에서 마지막 날에 연주되는 대작으로 프롤로그와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워탄신神의 성城 바르하라가 불타는 가운데, 신들의 시대가 끝나고 인간의 세계가 도래한다는 예고와 여성의 헌신적인 사랑에 의한 구원을 암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한편 히틀러는 타르트 카드tarot card- 점을 치는 카드에도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중대한 결단은 거의 타르트 카드에 의존했다는 이야기가 떠돌 정도였다. 점을 믿는 사람이라면 게르만의 전설을 무시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신화를 이용해보려 했을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그가 죽기 직전에 혼인식을 행한 일을 두고서는, 그가 세계를 재패하겠다던 야욕을 포기하고 “나는 브류헨의 화신이라 믿는 애인 에봐 브라운과 같이 죽어요.” 하는 절망선언이었으리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주변의 어느 누가 그와 같은 히틀러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유대인들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죽일 수 있었던 히틀러이고 보면, 그만한 연극은 자작 자연 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의 주변에는 요상한 의사가 하나 있어서 안페타민(히로뽕)이라는 각성제를 주사해주고 있었다는 보도도 있는데, 그가 환각상태에서 최후를 맞았을 가능성은 아무도 배제하기 힘들 것이다.

바그너와 히틀러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시대는 달리 하지만, 바그너도 들어 내놓은 ‘반 유대 주의자’였다는 점이다. 바그너가 쓴 논문 가운데는 유대인의 음악적 재능, 특히 작곡이라는 창조적인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열성을 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 논문에서 바그너는 유대계 작곡가 중에는 멘델스존과 같은 천재가 있지만, 그가 바흐나 베토벤과 비교해서 오히려 유대인의 열성을 증명하고 있다고 억지를 부린다. 바그너는 말한다. “멘델스존이 그만한 재능에 철저한 교육을 받고서도 이 정도로 감동성이 없는 작품만 썼다고 하는 것은, 유대인이 창작 예술에 적합하지 않는 열등민족이기 때문이다.”하고. 바그너의 억지는 히틀러의 그것과 비교해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그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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