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4년 성서와 문화

[김 효 숙 ·조각]


어느 해 교회 하기수련회 때, 미술특강을 부탁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미제레레” 화집을 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이 때 책에 실린 그림의 제목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그림의 내용에 공감하고 감동을 함께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미제레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들 중의 한 사람인 죠르주 루오Georges Rouault (1871-1958)가 만든 판화집의 제목이다. ‘미제레레Miserere’는 라틴어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뜻이라 한다.
작금昨今의 우리 사회의 세월호 사태를 보며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소리가 바로 이 ‘미제레레’이다. 이 한심하고 불행한 사건을 대하며 누가 이렇게 부르짖지 않겠는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그러하였겠지만, 루오가 살았던 20세기 초의 프랑스 사회도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의 눈으로 볼 때 그대로 덮고 지나칠 수 없는 실존의 고뇌이었으며, 더구나 세계대전世界大戰의 참상은 그의 입에서 참으로 ‘미제레레’ 하고 외치게 했으리라.

“미제레레” 작품을 루오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일어나던 시기에 구상 했다. 본래는 먹으로 그린 소묘 형태였으나 그와 전속계약을 맺은(1917) 앙브루아스 볼라르의 요청으로 동판화 그림으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볼라르는 루오의 필적 또한 동판에 함께 남기기를 원했다 한다.
본격적인 작품제작은 1922년부터 6년 동안에 걸쳐 1927년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발표는 1948년, 20년이 지난 후에야 파리에서 전시될 수 있었다. 볼라르의 죽음,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 그리고 볼라르의 유산 상속자에 대한 작품반환 청구소송(승소하여 800여점의 작품을 회수, 그 가운데 315점의 미완성작품을 불태워버리다.) 등으로 인해 발간이 무기한 지연되었기 때문이었다. 루오는 ‘미제레레 발간사’에서 “벌써부터 완성되어 있었고, 나 자신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이 작품의 출판을 못보고 말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나마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목적에 도달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쓰고 있다. 그가 얼마나 이 “미제레레”에 애착을 가졌는지를 짐작케 한다.
“미제레레” 판화집은 그가 일생 동안 그린 그림의 주제를 모두 담아 그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58장으로 이루어진 흑백 동판화집이다. “미제레레”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제레레Miserere’로 시작되는 첫 장에서 33번째 장까지와 ‘전쟁Guerre’ 이라 쓰인 34번째 장에서 58번째 장까지이다. 처음에는 제목으로 ‘미제레레와 전쟁’을 생각했으나 두 상반된 언어의 사용이 마음에 걸려 “미제레레”라 정했다 한다. 이 극적인 작품은 세계대전에 대한 루오의 대답이었다.

루오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普佛戰爭) 때 독일의 포탄이 빗발치는 와중에 파리 변두리 지하실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 사실이 평생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믿었다.
루오는 대도시의 변두리 생활에 매력을 느꼈으며 다듬어지지 않아 덜 세련된 이 생활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향수를 느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이 그러하다.
목재가구 세공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으나 그가 다루는 목재를 살아 있는 것처럼 다루었고,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상의 평범한 사물도 하느님께 예배하는 자세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루오는 14살 때 스테인드글라스 직공이었던 할아버지의 도제가 되며 유리화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루오의 그림은 현대로 옮겨진 유리화와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는 세련되거나 독특한 색을 쓰지 않는데, 이것은 루오가 오래된 유리창의 아름다운 색채에 눈떠 스테인드글라스에 전념하며 얻은 고귀한 결과로 후일 그의 그림의 특성을 만들어 주었다.
20살 때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 입학해 귀스타브 모로 Gustave Moreau의 문하생이 된다. 모로는 루오가 자신의 내적느낌에 충실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있음을 감지하고, 제자에게 내면의 통찰력을 믿도록 가르쳤다. “자네는 우울하고 지극히 검소한 예술, 그 본질상 종교적인 예술을 사랑하는군.” 이라고 말했다. 모로의 이 말은 루오의 그림을 한 마디로 말하고 있다. 루오는 “좋으신 모로 아버지”로 깊이 존경했다. 루오는 “미제레레” 창간서문 첫머리에서 “나는 이 작품을 스승이신 귀스타브 모로 선생과 나의 용감하고 사랑하는 어머니께 바친다.”고 쓰고 있다.
루오는 늘 세상의 불의로 인해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그의 글 속에서 불의를 당하는 사람의 눈물을 볼 때마다 ‘한밤에 절규’했다고 적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의 그리스인으로써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불의에 결연히 맞서 온 몸으로 살았던 우리 시대의 참 신앙인이었다. 또한 루오는 예술로서 열렬한 신앙고백이 가능하며 예술은 “영원永遠을 반영反映” 하는 말을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미술로서 복음의 선포자가 되려고 했다.
그는 집약된 힘으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그림주제를 몇 가지로 제한하였다. 그리고 종교적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 오히려 미술의 시적 분위기와 형식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아낌없이 포기했다. 그의 그림은 이렇게 거룩함을 향한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는 예부터 전해지는 신앙심에 부합하는 얌전한 천사를 그리지 않았다. 대신 거리의 창녀를 그렸다. 피곤한 기색이 역역한 젊은 여인들의 축 늘어진 몸뚱이는 그들이 견뎌내야 했던 영혼과 육체의 온갖 가혹한 체험을 이야기 한다. 그에게 창녀는 시련당하는 인간, 매 맞는 인간이었다. 생업으로 인해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형벌을 받았고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이 지상에서 겪는 지옥이다. 자신도 창녀들이 겪는 비참함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이 이 그림들 속에 내포되어 있다. 또한 이들의 이 곤경과 가난으로 인한 아픔이 원초적인 인간의 마음을 건드려 보는 이의 양심을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루오의 또 다른 주제는 재판관이다. 재판관은 정의의 거짓된 대변자로 묘사된다. 그는 법복을 입고 거만한 자세로 부리부리 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재판관을 그렸다. 심장의 논리에서 한없이 멀리 떨어져있는 이 두뇌의 논리는 자주 최상의 정의를 쓰디쓴 불의로 바꿔 버린다. 그의 재판관 그림에서는 정의 구현을 부르짖는 루오의 ‘한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다음 주제는 곡예사이다. 그는 유랑생활을 하는 곡예사들의 보수적이지 않은 사고방식과 타인에 대한 관습적 배려로 부터의 자유를 사랑했다. 그는 어려서 서커스 공연을 보며 즐거웠던 기억을 언제나 그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삶의 희생자이며 이웃 사랑의 눈으로 바라 보아야하는 존재였다. 루오는 이들을 그림으로서 측은지심惻隱至心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그는 사회의 낮은 곳, 아주 낮은 곳으로 내려가 거기서 거룩한 얼굴을 찾아냈다. 루오에게 어릿광대는 그리스도의 특성을 드러내는 상징이었으며, 그는 늘 가슴으로 그림을 그리려했다.
또 한 주제는 스스로 “전설적 자연 풍경”이라고 표현한, 눈으로 직접 보이는 세상풍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에 뿌리를 둔 세상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들의 어두운 경치 위에는 어김없이 은혜의 밝고 둥근 해나 달이 떠 있다. 루오는 인간 실존의 슬프고 가혹한 모습을 분명하게 보았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덧없다고 느끼거나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았다. 그의 영혼은 믿음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근본적인 답을 분명하게 제시 하려고 했다. 그는 버림받고 고독했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그늘 아래서 살았다. 그의 그리스도 그림은 골고다 언덕에서 일어난 십자가 사건에 대한 묵상이며 루오 그림의 중심이다.
이렇듯 그는 몇개의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일정한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그는 오랜 시간 끈기 있게 그렸고, 자기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자기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림에 덧칠을 거듭하여 마치 조각의 부조浮彫를 보는듯한 작품도 있고, 완성을 보지 못한 작품은 아에 버려버리기도 했다.

루오는 그림 뿐 아니라 글을 쓰는데도 열정을 쏟았는데, 각 작품의 제목은 대부분 그의 자작시自作詩에서 따온 것이며, 나머지는 성구, 격언 등에서 뽑았다. ‘미제레레’의 제목들을 첫장에서 끝장까지 삼행으로 묶어 연결해 보면 마치 한편의 시로 그의 작가론을 보는 듯하다.

1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2-4 멸시 당하는 그리스도 / 지금도 채찍을 맞으며 / 불쌍한 부랑자로 네 마음을 찾아드신다.
5-7 외로이 모함과 악의로 가득한 이 삶에서 / 우리 모두 죄인 아닙니까? / 임금인줄로 알지만
8-10 긴 고통의 변두리 옛 동네에서도 / 가끔은 여정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 그 누군들 분장하지 않을까?
11-13 내일은 날이 좋겠지 하고 난파자는 되뇌었다. / 삶이라는 힘겨운 직업 / 사랑하면 그렇게도 포근할 텐데.
14-16 그 이름은 환락의 여인 / 싱그럽던 입안에, 이제는 쓴 맛만이 / 부촌의 부인은 천국에도 특석을 예약할 셈이고
17-19 해방된 여인은 오후 두시를 열두시라고 떠든다. / 유죄선고를 받은 자는 떠나버리고.... / 변호인은 통 모르는 소리만 실없이 연설한다.
20-22 십자가에 달린 채 잊혀진 예수 아래서. / “그는 학대당하고 멸시 받았으나 입을 열지 않았다.”/ 여러 의미로 가장 좋은 직업은 척박한 땅에 씨를 뿌리는 것
23-25 고독한 자들의 거리 / “겨울은 이 땅의 문둥병” / 언제쯤 장 프랑스와는 할렐루야를 노래할까.
26-28 목마르고 두려운 이 땅에서. / 애처롭도다. /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다.”
29-31 새벽찬가를 불러라, 날이 다시 밝으리. / “우리는... 그의 죽음으로 세례를 받았다.” / “서로 사랑하시오”
32-33 주여 당신이군요, 바로 주님이신지 저는 압니다. / 그리고 부드러운 수건을 든 베로니카는 지금도 여전히 길을 가는데....
34-36 “폐허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 “예수는 세상의 종말까지 고통을 받으시리라....” / 이번만이에요, 아빠
37-39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이다. / 흔히들 중국인들이 대포 화약을 만들어 우리에게 주었다고 말한다. / 우리는 미쳤다.
40-42 얼굴을 맞대고 / 운명의 여신들 / 어머니들은 전쟁을 증오한다.
43-45 “우리는 죽어야한다, 우리와 우리의 모든 것도 다 함께.” / 나의 포근한 고향이여, 너는 어디 있느냐? / 죽음은 형극에서 겨우 벗어난 그를 앗아갔다.
46-48 “의인은 향나무처럼 후려치는 도끼를 향기롭게 한다. / 깊은 수렁에서.... / 압착기에서 포도는 으깨졌다. 49-51 “마음이 숭고할수록 목은 덜 뻣뻣하다.” / “손톱과 주둥이.” / 랭스의 미소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52-54 악법도 법이니라. / 일곱 칼을 맞으신 성모. /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시오!”
55-57 때로는 장님이 눈이 보이는 자를 위로한다. / 허세와 불신의 이 암흑시대에, 깨어 있는 땅 끝의 성모. /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다.” 
58 “그의 고통 덕분에 우리는 치유되었다.”

‘하느님, 당신의 자애에 따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간절한 기도(시편 51:1)로 시작하여 ‘그의 고통 덕분에 우리는 치유되었다.’(이사야 53:5, 베드로전서 2:24)로 결론을 맺는 “미제레레”는 진리를 예술의 형태로 제시한 루오의 온 영혼이 담겨있는 그의 신앙고백서라 말할 수 있다.
루오는 우리시대의 비참과 그리스도의 고난을 연결시켜 보고 있다. “미제레레”에서 루오는 삶의 짊이 우리를 얼마나 내리누르고 있는지! 그에게 ‘겨울은 대지의 문둥병’이며 인간은 ‘목마르고 두려운 이 땅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그는 고난을 인간실존의 근본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 분의 상처를 통해 우리는 치유 받았다.’고 확신하며, ‘사랑하면 이렇게 포근한 것을’, 그러니 ‘서로 사랑하라.’며 약속의 땅을 제시한다. 이렇게 “미제레레”에서는 실존의 사무치는 아픔과 위로  부터 내리비치는 빛이 날줄과 씨줄처럼 서로 얽이며 표현되고 있다.

루오는 우리에게 자신의 분노를 남겼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에서는 자비가 압도하고 있다. 분노만 하는 것은 문제를 가벼이 만들어 버린다. 루오는 형식을 깨부수는 자들에 속하지 않는다. 해체하고 분해하는데 구원이 있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순종하는 사람이다. 반항이야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침묵 가운데서 내면의 부름에 귀 기울이고 조급해 하지 않으며 살아 있는 동안에 알맞은 표현 수단을 찾는 일은 반항보다 어렵다.”고 루오는 말한다. 모든 사람이 반항하는 데 전념하던 시대에 그의 이 말은 전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들렸겠지만 이 말은 세월호 사건을 당한 지금 우리의 사회에도 귀 기울려 들어야 할 충고라 여겨진다.
그는 영리한 사람이기 보다는 복음을 말하는 우직한 사람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는 66세이 되어서야 큰 전시회를 처음으로 열었다. 그리고 80세가 되었을 때 교황 비오 12세는 그에게 그레고리오 대교황 훈장을 수여하며 경의를 표했다.
“미제레레”는 모든 삶의 최종적 물음 앞에서 그리스도에게로 우리를 이끌어 죄 많은 세상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성화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20세기의 위대한 종교화가라 부른다. “미제레레” 야말로 치열하게 현실에 굴하지 않고 작가의 양심과 영혼의 자유를 지킨 루오의 걸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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