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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지

성서와 문화 2014.06.25 17:06 조회 수 : 2321

[임 인 진 ·시인]


얼어붙은 하늘 아래
녹슬어 문드러진 철길만큼
핏줄을 가른 형벌이 강물처럼 넘친다.

타들어 굳은 숯덩이 어미 가슴에
고운 미소, 뺨 볼그레하던 아들 돌아와
주름살 얼굴을 묻는다.

손끝 닳아 뭉개지도록
백팔염주百八念珠 헤아리며
삼백예순다섯 밤을 쉰 번 지새운
그 염원念願 다 어디로 가버렸나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헝클어진 실타래 늘여놓고
그 마루턱은 언제나 바다로, 산으로 향한
이상理想의 실마리 마주쳤다 엇갈리는
이분법二分法의 구분원리區分原理가 도사려

바다로 간 사람
산으로 되돌아올 수 없듯
산으로 간 사람, 바다로 못 오는
허공에 매달린 형기刑期 다할 그날까지

가슴 찢는 선혈鮮血을
안으로, 안으로 삼켜야 하리
       - 졸시 「어떤 상봉相逢」 -

2000년 8월 워커힐호텔에서 있었던 첫 번째 ‘남북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TV화면으로 보고 쓴 글이다.
반세기동안 남북으로 나뉘어 소식조차 모르고 지내던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이 화면으로 떠올랐다. 꿈에도 못 잊었을 아들의 얼굴을 끌어안아 자신의 볼에 비벼대며 두 눈을 꼭 감아버리던 어머니 신재순申在順 (당시88세)씨, 그의 왼팔 소매 끝에는 밤톨만한 염주꾸러미가 걸려있었다. 어머니 손에 얼굴을 내맡긴 아들 조주경趙周璥(당시68세)은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얼굴엔 엷은 미소를 담고 있었다.
모자는 말을 잊은 듯 한참동안 볼을 맞대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처럼 왁자지껄 소리쳐 울지 못하는 모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오십년 세월을 온갖 풍상을 겪으며 맘고생을 누구보다도 많이 했을 어머니와 아들의 의연한 모습이 어찌 그리도 똑 닮았는지, 복받치는 설움을 애써 삼키는 처연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아들이 두 살 되던 해에 남편을 여읜 청상靑孀으로 오직 아들 하나만을 위해 살려던 어머니였다. 그런 아들이 20세(당시 서울대 수학과 재학)때 6·25 전쟁이 일어나자 북한의 의용군으로 끌려가 낙동강 전투에 투입되어 왼쪽 팔을 잃은 채 북으로 간 뒤, 어머니는 홀로 아들의 무사안일을 위해 염불을 외며 손에서 염주를 놓아본 적이 없었단다.
아들은 북에서 북조선 최고의 수학자로 인정받기까지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면서도 한시도 어머니를 잊어본 적이 없었노라고 했다. 그런 그가 남한에서 어머니를 만났을 때, 북한의 체제와 수령에 대한 찬양을 하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당위원회로부터 집중적인 성토와 비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2007년 북한의 대외 홍보용 월간지 『금수강산』 7월호에는 조주경 박사가 2004년 수면제 과용으로 사망했다는 기사와 함께 그가 세상을 등지기 전에 어머니에게 썼다는 마지막 편지를 공개했다.

가슴이 찢어져요. 어머니, 함께 살자고 떨어질 줄 모르던 어머니,
통일을 그토록 바라던 어머니 모습이 사라지지 않아요 ….

최근 한 탈북 인사로부터 전해진 이 이야기에 14년 전 모자의 상봉장면을 지켜봤던 모든 사람들은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들의 애끓는 마지막 편지조차 못 본 어머니 또한 아들을 만나본지 4년 뒤인 같은 해 92세로 아들의 뒤를 이어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단다.
일제 식민치하에서 벗어나면서 나라가 반으로 동강난 뒤, 참혹한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며 눈물 마를 사이 없는 비극을 겪은 주인공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북녘에 가족을 남겨놓고 떠나와 한을 품고 생을 마친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목숨 붙어있는 것을 천행으로 알고 이산離散의 아픔은 때가 오면 만날 수 있겠지 싶어 한도 끝도 없이 시간만 흘려보냈는데 말이다.
속속들이 파헤쳐보면 구구절절 아픈 사연 간직한 사람들로 온 나라 안이 울음바다가 되고도 남을 일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진도 앞 바다에서 벌어진 일로 우리는 또다시 눈물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팽목항 방파제 앞에는 돌아올 줄 모르는 아들딸들에게 띄우는 부모와 가족들의 ‘마지막 편지’가 바닷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쪽빛물결 넘실대는 먼 수평선 바라보며 혈육의 이름 부르며 목 놓아 울부짖는 엄마 아빠들의 뒷모습 보노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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