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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푸른 아침에

성서와 문화 2014.06.25 17:05 조회 수 : 2288

[최 종 태 ·예술원회원]


     꽃이 피었다가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속에서 나는 한 해가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모란이 지더니 장미가 피어난다. 앞마당에 찔레꽃이 피더니 뒷마당에 작약이 몽우리를 터뜨리고 있다. 산들이 온통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여름이 온다. 또 가을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눈 내리는 겨울이 오겠지.
바깥에서는 연일 암울한 소식이 천지에 넘쳐흐르고 있다. 진도 앞바다에 수 백 명의 어린 학생들이 수장되었다는 참담한 소식이다. 돈 버는 일 앞에서는 정의고 진리이고 윤리고 도덕이고 다 없는 세상이다.
「죄와 벌」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만든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엡스키는 뜻밖에도 도박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것도 전문적으로 스위스의 국제도박판에 간다는 것 이었다. 원고료를 선불 받으면 도박판에서 홀딱 날린다는 것이다.
「백치」라는 소설을 쓸 때의 이야기이다. 원고료를 미리 받았을 뿐 아니라 전체 저작권을 몽땅 출판사에 주기로 계약까지 했는데 그런데 그 소설을 약속한 날자가 한 달 남았는데도 그는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궁리 끝에 속기사를 써서 한 달 만에 그 날짜에 소설을 완성하였다. 사람들이 도스토엡스키한테 물었다. 번번이 날리면서 그러면서도 왜 도박판엘 가냐 그랬다. 답인즉 간단히 이러했다. “잃는 재미가 있다!” 말하자면 버리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버는 재미가 아니고 버리는 재미라니, 아까운 것을 버릴 때 역으로 어떤 충만감이 있는 모양이다. 돈 보다도 더 좋은 것은 무엇인가. 도스토엡스키의 말을 빌리지 않고라도 더 좋은 것이 분명히 있다. 나도 돈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하지만 목숨하고 바꿀 일은 아니라는 게 분명한 사실이다. 어느 바보가 목숨을 버리고 재화를 취할 것인가.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한 푼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이 비일비재 한 판에 곡간에 넘치는 재화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다. 어쩌다가 우리 세상이 이 지경에 다다랐는가. 온갖 상賞들이 수도 없이 많건만 청백리상淸白吏賞이 있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현금의 우리나라 경제 상태가 세계 십위권이라 한다. 한쪽에 치우쳐서 다른 중요한 면들이 가려져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종교계에서는 해외선교에 열심하고 있다. 대중예술은 전 세계를 휩쓸다시피 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가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동방예의지국의 나라, 선비의 나라는 어디로 갔는가. 성철스님 김수환 추기경님 법정스님이 가신지 몇 해. 한국이라는 어떤 정신공간이 비어있는 것 같다. 과거를 돌아보자. 우리에게는 오천년 민족의 큰 유산이 있다. 아름다운나라 석굴암을 가진 나라. 우리의 문자 한글을 만든 나라. 맑은 하늘이 있는 나라. 금강산이 있는 나라. 우리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삼일민족봉기사태가 역사책에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4·19! 젊은 학생들이 부정과 부패를 쳐부수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그 일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온 국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종로 네거리에 나왔었다. 그 중추세대가 지금 팔십이 될 것이다. 불의에는 외면하고 이권에 집착한다. 애국이라는 말이 옛날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 꼴이 됐단 말인가. 나라에는 격格이 있고 사람한테는 양심이라는 게 있다. 안 배워서 모른다는 말인가. 본받을 데가 없어서 그런 것인가. 사람 세상에 사람냄새가 있어야지 도무지 진정성이란 게 없다. 자존심이란 말도 사라졌다. 영혼을 상실한 시대. 지식은 범람하는데 가치는 간데없다. 종교가 지식으로 될 일인가. 나라 빼앗기고 말도 빼앗기고 조상의 얼도 잊어버리는 그런 시대를 다시 누가 원하겠는가.
간밤에 비가 내렸다. 오월의 푸르름이 산과 들에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네 인간의 세상에는 향기가 말라있다. 꽃이 아름다움을 잃었다면 어떤 모양이 될까.
미국에 9·11테러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그 다음해일지 싶은데 뉴욕에 간일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긴장상태는 여전하고 시민들은 아직도 흥분상태였다. 사고주변에 가림 막을 적당히 해놓고 누구든지 볼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일대의 상가들에 대해서는 피해보상을 해주었다는 말을 들었다. 사업을 할 수 없었는데 대한 보상 말이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쪽 어딘가에서 「아메리카」라는 간판을 크게 걸고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첫째 방을 들어가면서 나는 놀라지 알을 수가 없었다. 전면 벽에 천연색으로 큰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육해공군이 성조기를 들고 전진하는 장면의 사진이었다. 성조기는 펄럭이며 하늘을 제압하는 듯 보였다. 내 머릿속에서 이런 반응이 즉각적으로 일어났다. 누구든 미국을 건드리기만 해봐라 하는 기세로 보였다. 끝 방이 더 흥미가 있었다. 커다란 공간에 텔레비전을 사면四面 어디서나 볼 수 있게 설치해 놓고서 빌딩이 불타고 무너져 내리고 비행기가 충돌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하루 종일 전시행사가 시작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그 장면이 몇 달이고 계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누가 보았을까. 물론 미국국민이고 또 일부 관광객들이였을 것이다. 이걸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프랑스는 여러 가지로 대 혼란을 겪었다. 그 중에서도 전쟁 때 독일군에 협력한 것에 대한 심판이 있었다. 파리를 중심으로 북부는 독일군의 점령 하에 있었고 그래서 남부는 북부의 독일군과 전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마치 우리가 6·25 남북전쟁을 겪은 것처럼. 전쟁이 끝나고 부역자 처리문제가 심각했던 모양이다. 나라가 두 동강이 나서 그 싸움이 대단히 치열했던가보다. 급기야 철학자 사르트르가 펜을 잡았다.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된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면서 국민들을 설득했다.
한 기관사가 있었다. 그 기관사는 파리로 들어가는 기차를 운전해야한다. 그 기차에는 독일군의 무기가 실려 있었지만 또 그 안에는 파리시민이 먹어야할 식량이 실려 있다. 그가 기차를 버리고 빨치산으로 튀여 나갔어야했을까. 연합군의 비행기가 파리 상공을 날아간다. 박수를 쳐야만 옳았을까. 그 비행기에는 폭탄이 실려 있을 것인데 프랑스 땅에 떨어져서 국가재산이 파괴된다는 생각을 했어야하지 않은가. 독일군 젊은 장교가 땀을 뻘뻘 흘리며 길을 물었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만이 옳았을까. 사실 그는 파리 시민을 잡으러 가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또 인정이란 게 있지 않은가. 연합군도 우리를 해방시켰다고 으스대지만 말아라. 우리도 부역자를 처단만 할 게 아니라 프랑스의 자존심을 지키자! 나는 나라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사르트르의 그 글을 되씹곤 했다.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나라는 망했으되 산천은 여전하여 봄이 오는 들녘에 초목만 무성하다.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詩 한 줄을 음미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 순간이 영원이라 한다. 영원이 순간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원은 순간을 품고 있다. 영원은 지금이란 우리 땅에다 사랑이라는 소낙비를 한없이 퍼붓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지금 여기에도. 그리고 우리들의 가슴 안에다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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