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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과 회의의 오솔길

성서와 문화 2014.06.25 17:02 조회 수 : 2334

박 영 배 ·본지 편집인

50년대 후반 학교를 졸업한 나는 좀 더 확신에 찬 신앙과 보람된 삶을 열망하며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세기에 가장 각광받는 신학자 중에 한 사람인 폴 틸리히P. Tillich의 책을 읽는 가운데 “신앙생활이란 확신과 회의의 오솔길을 가는 것”이라는 대목을 읽었다. 틸리히의 이 말은 신학을 탐구하고, 신앙의 증진을 통해 보다 확실한 신앙을 바라는 나에게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편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러한 계기로 나는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확신과 회의의 오솔길’, ‘긍정과 부정의 사이 길’을 간다는 것은 얼핏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하면 이러한 양자의 길이란 우리의 삶의 굽이굽이마다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우리의 인생길에서도 때로는 아주 큰 파장으로, 때로는 작은 파장으로 닥아 오는 것이 ‘확신과 회의의 오솔길’이다. 우리는 때때로 신이 나고 의기양양한 희망에 찰 때가 있는가하면, 때로는 모든 것이 시들하고 풀이 죽으며 실의와 좌절에 헤매이기도 한다.
사람들 중에는 확신에 찬 소리로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온 것처럼 말하는 이도 있다. 또 어떤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 가 본 것처럼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 곳은 다이몬드와 사파이어 등의 모든 보물로 꾸며져 있다고 하며 책으로까지 출판해낸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보고 만져지는 상대적인 존재가 아니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지상에서 땅을 딛고 설 수 있는 것 같은 그런 공간적인 장소도 아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스승들은 하나님을 신비神秘와 비의秘意에 싸인 분이라 말하는가하면 하나님은 숨어계신 분이며 침묵 속에 있는 분이라고 한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신비와 불가해성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어떤 형상도 만드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단순히 Yes, No로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14세기에 그리스 정교회 신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진술에서 두 가지 점을 특히 강조했다. 첫째 그것은 역설적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앞뒤가 꼭 맞는 인간의 사유체계로는 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진술은 부정하는 방식으로 긍정해야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말이나 생각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기에 한없는 외경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순간에 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지자 에레미야는 “너희 가운데 지혜 있다고 스스로 나설 자가 누구냐, 야훼의 법을 우리가 알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외친다. 깊이 명심해야할 대목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신앙을 통해 안다는 것은 희미한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삶 속에서 끝임 없이 반복되는 ‘확신과 회의’, 그리고 ‘긍정과 부정’의 경계를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견디며 내면화해 간다면, 우리의 신앙은 큰 나선형의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증진할 것이다.
신앙의 삶이란 궁극적으로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모순과 갈등과 비극에 찬 것이라 해도 거기에는 희망과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그 믿음을 키워가는 생활이다.
성서는 계속해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늘나라를 소유하는가를 제시하고 있다. ‘마음이 겸허한 사람’, ‘애통해하는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그리고 ‘마음이 청결하고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라 한다.(마태 5:3-10)
‘나는 믿는다.’는 신앙고백이나 신조를 나타내는 라틴어의 크레도Credo는 ‘나의 심장을 바친다.’는 말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앙이란 나 자신을 던지는 구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신앙의 삶이란 무조건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는 것 보다 마치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적 감수성을 예민하게 갈고 닦듯이 자신의 영적 감수성을 연마하며, 그 삶 속에 신성을 만들어 가는 삶이다.
과연 우리의 신앙과 예배와 헌신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이전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살며 의로운 삶을 사는가. 그리고 보다 더 폭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개방된 삶을 사는가 하는데서 말해야 한다.

인고忍苦의 계절인 사순절과 부활절을 맞고 있다. 이 절기가 전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 죽음과 재생再生의 내적 비의를 깊이 생각하며 깨닫는 절기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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