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반·속초 예총회장
봄이면 중국 쪽에서 바람을 타고 황사가 몰려올 때 황사를 막을 길이 없을까 고심하던 끝에 황사의 근원지인 몽골사막에 나무심기를 하자는 운동이 이웃 일본에서 일어났다.
요즘은 황사 정도가 아니라 중국의 미세먼지까지 밀어 닥치니 마스크 없이는 문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한다.
황사나 미세먼지를 세파라 할 수 있으면 성서와 문화는 이 시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라 할 수 있다.
성서와 문화를 발간한다는 일은 몽골 사막에 나무 심는 일이다. 창간호가 발행된 지 벌써 15년이 되었다니 놀랄 일이다. 몽골의 나무가 살아서 황사를 막고 있는지, 중국의 미세먼지를 어느 정도 퇴치해 주고 있는지 증명할 길이 막연하다. 효과가 증명되지 않으니 나무 심기 또한 신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박영배목사님과 김효숙선생, 그리고 동인들과 후원회 회원들이 나무심기를 멈추지 않는다.
성서와 문화를 받아 볼 때마다 어두운 중세를 걸어가는 십자가를 메고 가는 키 큰 사나이와 그의 뒤를 따르는 작은 마리아의 실루엣이 떠오른다. 분명 중세 수난극의 한 장면이다.
성서가 씨앗이고 종묘라면 나무는 문화다.
성서만이 유일한 씨앗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른 믿음의 체계나 가치에도 씨앗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씨앗이 없이 자란 나무들을 보고 문화라고 열광하는 세태를 보면 탄식이 나온다. 그것도 문화는 문화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사람의 머리수나 득표율이 절대 선이나 절대 가치로 행세하는 세상이니, 몽골 사막에 나무 심는 일은 고역이고 외로운 일이다.
성서의 씨앗을 땅 깊이 파고 묘목을 흔들리지 않게 세우는 작업은 우리 선배들도 해왔다.
장공의 ‘제3일’과 함석헌 선생의 ‘씨알의 소리’도 한 시대의 문화였다.
이 의미 있는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발행인과 글과 선금 또는 그림으로 동참하거나 후원하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