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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한국화가들

성서와 문화 2014.06.25 16:59 조회 수 : 2509

[허 영 환·미술사가]

     자가 미술대교수 30년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한 말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그 민족의 특수성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는다. 즉 가장 한국적인 미술만이 한국이라는 제한적인 특수성을 넘어 세계적인 보편성과 일반성을 갖는다.”는 말과”한국미술가의 미술품은 언제나 한국적인 독창성, 단 하나인 유일성, 작가의 개성이 뚜렷한 개별성이 있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기성화가들,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화가들도 이런 관점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20세기후반(1960~2000)의 재불화가들이었다.
그러면서 한국을 대표할만한 화가는 수화 김환기(1913~1974)라고 생각했다. 그는 독창성, 유일성, 개별성이 뚜렷한 작품을 창작하면서 한국과 세계에 한국을 널리 알린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 올해는 그의 서거 40주기가 되는 해인데 1937년 24세 때 첫 개인전을 가진 후 생을 마감할 때까지 43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수많은 단체전에 참가하였으며, 지금도 그의 미술관(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환기미술관)에서는 꾸준히 유작전(유화, 과슈, 데생, 도화 등 수 백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이 열리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작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1년 작)>이다.
세계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는 20세기 한국서양화가들에게는 선망과 출세의 낙원이기도 하였다. 프랑스유학파화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김환기를 맨 앞에 내세운 것은 그가 1960년대 초 혜곡 최순우(1916~1984, 미술평론가,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와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란서 물만 마시고 와도 모두 그림들이 홱 바뀌는데 수화그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나는 좋다”고 했는데 그는 그 말에 의기투합해서 “기실은 불란서에 가서 개인전을 하기 전에는 그 곳 작가들 그림에 물들까봐서 전람회 구경도 안다니고 나를 지키노라 매우 애썼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김환기는 3년 동안(1956~1959)파리에 머물면서 개인전과 단체전 등 여러 차례 전람회를 가졌지만 한 번도 한국성을 잃은바가 없었다. 물론 그는 일본대학에서 서양화를 배웠고, 평생 동안 서양안료를 가지고 독특한 서양화를 그렸지만 끝까지 한국적인 그림을 그렸다.
김환기와는 달리 남관(1911~1990)은 일본 태평양미술학교와 파리의 그랑쇼미애르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운 탓인지 끝까지 한국성을 찾을 수 없는 화가였다. 인간의 정신적인 표현을 상형문자에서 찾으려 했던 남관의 추상화는 괴이하고 무섭고 난해했다. 그래서 일반 관중의 호감을 얻지 못했다. 프랑스와 한국에서의 생활도 별스러웠다는 얘기였다. 홍대미대교수(아주 잠깐)와 국전심사위원도 했지만 뚜렷한 제자도 얻지 못했다. 남관은 이응노와 인물군상화문제로 논쟁(서로 모방했다고)을 벌이기도 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화가로 입신한 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동양화를 그린 고암 이응노(1904~1989)는 1958년 파리에 안착한 후에는 동양의 서예가 갖는 조형미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현대화한 문자추상화를 그렸다. 파리생활 30여년 동안 각양각색의 문자추상화외에 반전평화운동을 상징하는 인물 군상화를 수 없이 많이 그렸다. 그는 특히 1965년부터 그의 집에서 동양화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는 프랑스로 귀화(1983)까지 했으면서도 한국적인 그림을 그렸다. 끝까지 한국성을 잃지 않았고 충남 대전에 이응노미술관을 남기기도 하였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생존)도 가장 한국적인 화가다. 남관보다 10년쯤 늦게 파리에 도착한(1965) 김창열도 초기에는 남관처럼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화필을 놓지 않았다.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뉴욕을 거쳐 파리에 간 그는 상파울로비엔날례에서 특별상을 받기도 했고(1975) 동양의 노장사상을 형상화한 물방울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만의 회화세계를 확립하였다. 그리고 프랑스 여인과 결혼도 했고 돈도 꽤 많이 벌었다. 무엇보다 서울과 파리를 오가면서 큰 개인전을 여러 차례 열어 명성과 부를 얻었다. 이제 80대 중반의 고령이면서도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며, 제주도에 큰 미술관을 짓고 있다.
한국의 많은 성당에 유리그림(스테인드글라스 페인팅)을 제작한 이남규(1931~1993)도 1960년대 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로 유학하여 3년 동안 추상화를 배우고, 전람회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카톨릭 성당의 유리화는 서양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남규는 평생 동안 가장 한국적이고 독창적인 유리화의 예술세계를 남기려 했기 때문에 독보적인 작가가 되었다.
일본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프랑스 유학을 떠난 권옥연(1923~2011)은 파리 아카데미 드 훼에서 열심히 서양화를 배우고 그림을 그렸지만 큰 각광을 받지는 못했다. 짙고 어두운 회흑색계통의 물감으로 풍경(주로 프랑스 풍경)과 인물을 그렸다. 몇 년 간의 프랑스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후에도 그림의 주제와 화풍은 변하지 않고 서양적이었다.
한국적인 특성을 찾지 못한 화가에는 변종하(1926~2000)도 있다. 파리4대학과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에서 수학한 그는 귀국 후 한국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국전에서도 특선을 했지만 말년에는 병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세계미술의 중심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뉴욕으로 옮겨감에 따라 1990년대부터 파리는 매력을 잃었다고(아시아 미술가들로부터)하겠다. 이럴 때 이만익(1938~2000)은 국전에서 특선을 4회나 하고(1959~1968) 정부후원으로 파리유학을 떠나 르살롱전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으나(1974) 프랑스생활이 익숙해질수록 실망도 컸다. 서양화를 배우고 많이 볼수록 자괴감이 심해졌다. 서양화를 아무리 잘 그려도 진정한 서양화가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이 깊어졌다. 귀국 후에는 한국고전소설과 설화집을 탐독했다. 특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여러 차례 열심히 읽으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리고서 자신의 화풍을 찾게 되었고 ,남다른 회화세계를 확립하게 되었다. 루오의 화풍을 원용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미술애호가들과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거의 매년 작품전을 개최하였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젊었을 때 파리에 가기를 잘 했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진짜 서양화를 배우고 본 것이 나를 각성하게 했다. 내가 아무리 서양화를 잘 그린다고해도 루오가 될 수 없고 피카소가 될 수 없지 않은가. 그들의 회화기법은 배울 수 있어도 정신과 사상은 내 것, 한국적인 것을 담아야하지 않겠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미련 없이 파리를 떠났다. 귀국 후 나는 화가로서의 참다운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병약했던 이만익은 겨우 60을 넘기고 세상을 떠났다.
결국 예술이란 가장 민족적이고, 독창적이고, 개성이 뚜렷한 자기만의 세계가 없다면 빛을 볼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하다. 김환기처럼 한국의 항아리와 별을 그리던가, 이응노처럼 먹물로 인물군상을 그리던가, 김창열처럼 무념무상의 물방울을 그리던지, 이만익처럼 고주몽의 이야기나 선덕여왕을 그리던지 해야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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