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4년 성서와 문화

[김 효 숙 ·조각]

    은 시절 내가 나가던 교회에는 미술을 전공하는 이들이 여럿이 있었고, 우리는 동인회를 만들어 해마다 교회에서 미술동인전을 가졌다. 또 미술 심포지움이나 수련회 등을 가지며 기독교미술을 모색하려 힘썼다. 성경을 읽고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해 보는 일은 우리에게 성숙된 신앙과 자신의 작업에 활력을 더해 주었다. 나의 이러한 경험은 신약성서를 그림이나 조각으로 재현해 보고 싶다는 꿈을 갖게 했다.
아직도 실현되지 못한 이 꿈을 위해 성서를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던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번 겨울, 그의 인생과 예술을 눈여겨보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국립 샤갈 성서미술관>이 개관하는 날 샤갈이 했던 기념사記念辭를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샤갈은 폴란드 국경 근처의 가난한 실향민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비테프스크Vitebsk라는 러시아의 작은 마을에서 9남매의 첫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어물창고 노동자였고 그의 어머니는 강직한 성격에 감수성이 풍부한 여인이었다. 독실한 유대교인이었던 부모로부터 자연스럽게 받아진 유대인의 생활과 교회당의 체험, 그리고 그의 고향 마을의 모든 생활상과 정경은 오롯이 그의 예술의 풍부한 원천이 되었다.
그의 대표작 <나와 마을 1911년작 192 x 151cm>은 샤갈의 기본 정서를 잘 나타내 주는 작품이다. 샤갈은 화면을 크게 X자 구도로 나누고, 그 오른쪽에 녹색의 옆얼굴로 샤갈 자신을 그리고 있다. 유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특징을 날카로운 삼각형의 코로 표현하였다. 왼쪽에는 염소 같이 보이는 큰 눈의 동물 머리가 그려지고 그 안에 그 젖을 짜는 여인이 함께 있다. X자 구도의 윗부분에는 그의 고향 비테프스크의 교회당과 마을의 집들 그리고 남녀의 농부들을 거꾸로 바로 그리고, 그 아래 부분에는 작가 자신이 유대인들의 반지를 낀 손으로 꽃다발처럼도 보이는 모세의 떨기나무를 들고 있다. 또 X자 구도가 서로 맞닿는 화면 한가운데 원 속에 이 네 부분들을 하나로 묶어 그것들이 한 축의 이야기임을 전하려 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랗게 그려진 동물의 눈과 샤갈의 눈이다. 두 눈은 서로 마주보며 연민과 사랑을 나누는 듯 보인다. 실제로 샤갈은 두 눈 사이를 보일 듯 말 듯한 선을 그어 연결시켜 놓고 있다.
이 그림에서 보듯 샤갈의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그의 ‘고향사랑’ 그리고 ‘성서’는 바로 샤갈 작품의 중심을 아루는 하나의 핵심요소임을 깨닫게 한다.
샤갈의 부모들은 그가 점원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마지못한 어머니는 비테프스크의 화가 펜Penne의 화실로 샤갈을 데려가 보는데, 펜이 샤갈의 재능을 알아보아 받아줌으로서 샤갈은 화가 수련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후일 샤갈은 그의 자서전에서 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쓰고 있다.(1906년) 다음해 그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가짜 통행권(유대인은 주거이동의 자유가 없었으므로)과 27루블(미술학교 학비)만을 들고 센트 페테르부르그로 간다.
“나는 얼마나 많이 울면서 그리고 자랑스럽게, 식탁 아래로 던진 돈을 주어 들었던가”라고 그 때의 상황과 자신의 기쁨을 쓰고 있다. 이곳에서는 회화만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운동을 접하는 기회가 되었고, 무대예술 전반에 깊은 관심과 경험을 갖게 된다.
1910년 처음으로 파리로 나와 여러 화가들과 교류하면서 당시의 파리화단의 유파들을 접하게 되나 이에 휩쓸리지 않고 갤러리와 미술관 등을 돌며 자신만의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는 야수파의 강렬한 색과, 입체파의 해체된 형태와 초현실파의 환상적인 꿈의 세계를 받아드리면서도 자신이 가진 자신만의 주제를 반복하면서 변함없이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 했다. 그가 처음으로 파리에 머물렀던 (1911(24세)-1914(27세)) 4년간을 그의 전성기라 평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의 대표작이라 손꼽히는 <손가락이 7개인 자화상>, <나와 마을>, <아폴리네르에게 바치는 경의>, <갈보리 언덕>, <바이올린 연주자>, <창문을 통해 본 파리>등이 이 시기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이 시기의 그림들에서 그가 평생 그릴 변하지 않는 그 만의 그림양식을 자리매김 시키고 있다.
샤갈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입체파 화가에게 그림은 어떤 질서를 갖춘 형태들로 뒤덮인 표면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그림은 논리와 설명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어떤 질서를 갖춘 것들(물체, 동물, 인간)의 묘사로 뒤덮인 표면이다. 구도와 시각적 효과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나는 ‘환상’, ‘상징’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우리의 모든 정신세계는 곧 현실이다. 그것은 아마 겉으로 보이는 세계보다 훨씬 더 진실한 것이다.” 샤갈은 자신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동물(소, 당나귀, 말, 염소, 수탉), 물고기, 새, 악기, 꽃, 마을, 연인, 동물과 인물의 뒤섞인 편성, 허공에 붕 떠있는 모습,.. 등을 아름다운 색채의 배합과 구성으로 그만의 독특한 사랑의 음악적 화음으로 울려나게 했다. 그를 ‘색채의 마술사’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의 그림은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고, 1914년 베를린에서의 성공적인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러나 당시 유럽은 이미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었다. 이를 감지한 샤갈은 곧바로 고향 비테프스크로 향했다. 사랑하는 연인 벨라가 있는 고향으로...그리고 그 다음해 벨라와 결혼하게 된다. ‘벨라’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의 생애를 통해 표현된 일관된 사랑의 주제이며 많은 명작을 탄생시켰다.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벨라’가 꽃을 들고 왔을 때의 기쁨을 날고 있는 모습으로 그린 <생일>과 벨라의 어께 위에 업혀 술잔을 들고 활기차게 곡예 하는 듯이 딸 ‘이다’를 머리에 이고 있는 <술잔을 들고 있는 이중 초상>은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그림들에서 보듯, 샤갈은 사랑에 충만한 이들을 주로 공중에 띄우는 형태로 그의 내부에서 용솟음치는 강렬한 심상心像을 표출시키고 있다.
1917년 러시아에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은 눌렸던 유대인들에게는 자유와 해방의 소식이었다. 샤갈은 고향 마을에 순수미술 위원회를 조직하고 현대미술학교를 세워 창조교육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야심찬 활동을 하지만 2년 6개월 만에 실망하고 모스크바로 옮겨간다. 그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러시아제국도, 소비에트 러시아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며 이방인이다.” 라고.
공산체제하의 모스크바의 생활은 험난했다. 하지만 그는 파리를 떠나 있는 동안 이미 그곳에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1923년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가족과 함께 다시 파리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1930년 샤갈은 편집자 앙브로아즈 볼라르로 부터 성서를 주제로 한 그림을 주문받게 되는데 이 만남의 계기가 그에게 성서와 관련된 많은 연구와 경험을 쌓게 한다. 이를 위해 그는 텔라비브,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집트 등을 직접 여행하며, 성서의 역사의 현장들을 체험하고, 또한 렘브란트와 엘 그레코의 그림을 보기 위해 네덜란드와 스페인을 여행하며 그들의 깊은 신앙과 예술에 큰 감명을 받는다.
그러나 볼라르의 죽음과 세계 제2차 대전의 발발로 이 계획은 중단 되고 만다. 그 뿐 아니라, 유대인인 그에게 이 시기는 고난의 시절이었다. 결국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청을 받아(1941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미국에서 사랑하는 아내 벨라를 잃게 되는(1944년) 슬픔까지 겪게 된다. 전쟁이 끝난 뒤 다시 파리로 돌아온(1948년) 후 성서 판화 작품 105점을 완성했고, 1956년에서야 볼라르의 작업을 이어받은 테리아드에 의해 <삽화가 곁들인 성서>를 출판할 수 있었다.

샤갈은 그의 자서전 <나의 생애>에서 그가 사산아死産兒로 태어났다고 쓰고 있다. 물통에 버려져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던 그였다. 그러나 그는 97세까지 오래 살며 유화 작품만이 아니라 판화, 도자기, 조각, 오페라와 발레의 무대장치와 의상, 모자이크, 벽화와 천정화, 스테인드글라스Staind glass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세계 곳곳에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러나 샤갈의 그 많은 업적 가운데 하이라이트를 받을 가장 큰 영예는 니스에 세워진 <국립 마르크 샤갈 성서 미술관>이라 생각한다. (1973(86세))
샤갈의 성서화聖書畵 보존을 위해 당시 프랑스의 문화장관 앙드레 말로Andre Georges Malrauxr 1901-1976의 주도로 정부가 부지와 건물을 마련하고, 샤갈이 그림을 기증하는 형식으로 설립된 이 미술관은 그의 작품이 품고 있는 이미지와 상징성을 살려 기획된 세계 최초의 맞춤형 미술관이다.
대형 17개의 연작시리즈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샤갈은 누누이 빛을 강조하였고, 기존의 미술관들이 갖는 권위적이고 형식적인 형태가 아닌 자유롭게 열린 공간으로 함께 창작을 경험하고 음악 등 다른 예술도 공유할 수 있는 밝고 개방된 미술관을 원했다. 또한 건물만이 아니라 정원까지도 태초의 에덴동산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롭고 침착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랬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수시로 건축가와 정원사를 만나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었다한다. 화가의 구상에 맞는 영적인 영혼이 깃든 성서미술관 건립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미술관에는 그가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정신과 삶의 원천이 되었던 <성서> 특히 구약을 모델로 한 성서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 450여점이 기증되었다.
샤갈은 미술관 개관식 기념사에서 성서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작품을 통해 바라는 기증의 뜻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젊었을 적부터 나는 성서에 매료되었다. 성서는 내게 늘 모든 시대의 시의 가장 커다란 원천으로 보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보이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인생과 예술 속에서 그 반영을 추구해 왔던 것이다. 성서는 자연의 반향과 같은 것으로서, 나는 그 신비로움을 전달시켜 보려고 애써왔다. ....... 나는 사람들이 어떤 평화, 어떤 정신성과 종교성,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림들을 이 미술관에 두고자한다...... 모든 삶이 필연적으로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사랑과 희망의 색깔로 인생을 색칠해야만 할 것이다. 바로 그 사랑 속에 삶의 사회적 논리가 있으며, 모든 종교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 예술과 인생에 있어서의 완성은 이와 같은 성서적 원천에서 비롯된다. ......아마 이 미술관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찾아와 나의 색깔과 묘선이 꿈꾸고 있는바 우애와 사랑의 이상을 찾게 될 것이다. 또 어쩌면 만인에 대해 내가 품고 있는 사랑의 언어를 말하게 될 것이다. 또 여기서는 적敵도 갖지 않게 될 것이고, 아이를 낳는 애정과 고통을 맛본 어머니처럼, 사랑의 채색법으로 사랑의 세계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모든 사람은 여기 와서 악의와 선동 따위와는 거리가 먼, 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의 고귀한 정신적 산물로서의 자료들과 예술작품들이 전시될 수 있기를 바라며, 또한 가슴에 새겨둔 음악과 시를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러한 꿈이 가능한 것인가? 하지만 삶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에 있어서도, 그 밑바탕에 “사랑”이 있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가능할 것이다.“ 라고.

샤갈의 성서그림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진정성을 담아 그렸기에 우리를 감동시킨다. “우리의 인생에서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사랑의 색깔이다. 인생이란 ‘어둡고 슬픈 것’이다. 그러나 그 어둡고 슬픈 것을 환희로 바꾸어 놓는 것은 ‘사랑’뿐이다.”라고 증언하며 인류에게 사랑이 메시지를 전하며 산 “말더듬이 샤갈”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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