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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문화 2013.12.18 21:11 조회 수 : 2300

[조 용 훈 ·신학]


우리시대 ‘죄’라는 단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죄가 줄어들어서라기보다는 죄란 단어의 사용을 꺼리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기 때문이다. 이제 웬만한 죄쯤은 수치스럽게 생각지 않게 되었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죄를 부끄러워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자랑하고 과시하기까지 한다. 교도소에서는 별이 많은 사람일수록 큰소리를 친다는데 이제는 교도소 담장 바깥에서조차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부분적으로 심리학자들의 책임이 있다.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신경증의 하나라고 보면서 쓸데없는 죄책감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가르친다. 정신건강을 위해 자신에게 너무 혹독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또 다른 책임은 변호사들에게 있는데 그들은 법정에서 범죄자가 정신병자임을 증명하는데 노력한다. 고의적이 아니라 정신질환으로 어쩔 수 없이 저지른 범죄이므로 피고를 교도소 대신 병원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는데 그들은 범죄자를 가해자가 아니라 불의한 사회구조의 희생양이라고 한다. 그래서 범죄자는 형벌 대신 동정을 받게 된다.
종교인의 책임 역시 무겁다. 교인을 하나라도 더 붙잡기 위해 회개와 심판 대신 자아성취나 성공을 더 많이 설교 한다. 회개를 요청하는 일도 없고, 참회의 과정이 없더라도 용서를 선포한다. ‘치리’나 ‘권징’이라는 중요한 교회 기능은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전라북도 김제에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지닌 금산교회가 있다. 그곳 예배당에는 1921년 10월1일 열린 제17차 당회록이 액자로 만들어져 전시되어 있다. “김 아무개와 김 아무개 모친은 가정불화에 관하여 권면하고, 김 아무개 댁 김 아무개는 부모 불효와 주일 범하므로 회개할 동안 성찬을 불참케 한다. 김 아무개는 주일 범하므로 권면하고, 이 아무개는 도박한 일로 출교하고, 박 아무개는 귀신 공경하므로 출교하고, 김 아무개는 도박일로 학습 제명하고, 조 아무개는 신행을 심사키 위하여 호출하기로 가결하다.” 지금은 이렇게 엄격하게 치리하는 교회도 없고, 그런 치리를 받고 교회를 계속 다닐 교인도 없다. 그러다보니 교회는 도덕적 탁월성만 아니라 신앙적 순결도 잃고 말았다.
독일 신학자 본회퍼는 이를 가리켜 ‘값싼 은총’이라 했다. 값싼 은총, 싸구려 복음 문제에 대해 비단 기독교 신학자만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가도 영화인도 문제 삼는다. 여러 해 전에 배우 전도연씨가 신애라는 주부로 연기한 ‘밀양’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학원장에 의해 유괴살해 된 이후 신애는 고통을 이기기 위해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신앙심이 깊어지면서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기 위해 감옥을 찾아갔는데, 면회실에서 그녀가 만난 원수는 아주 밝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학원장은 감옥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한다. 그 뻔뻔함에 충격받은 신애는 가져갔던 꽃을 그냥 가지고 나오다 주차장에서 실신하고 만다.
영화의 원작인 이청준의 소설 <벌레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저도 집사님처럼 그를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어요. 그래 교도소까지 그를 찾아갔구요. 그러나 막상 그를 만나 보니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건 제 믿음이 너무 약해서만은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너무 뻔뻔스럽게 느껴져서였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그 사람은 내 자식을 죽인 살인자예요. 살인자가 그 아이의 어미 앞에서 어떻게 그토록 침착하고 평화스런 얼굴을 할 수가 있느냔 말이에요.” 그 사건 이후, 신애는 신앙을 내버리고 교회 훼방꾼으로 변해간다. 죄를 가볍게 다루는 신앙, 너무 쉽게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종교, 참회에 앞서 자기용서부터 가르쳐주는 교회. 그런 잘못된 신앙문화는 가해자만 아니라 피해자의 영혼까지 파괴한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값싼 복음에 또 한 번 상처를 받고 교회 훼방꾼으로 변해버린 신애씨. 우리 주변에는 ‘안티 기독교’로 불리는 수많은 신애씨들이 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익명으로 행해지는 그들의 교회 공격과 기독교 비난은 지나치다 싶고, 교회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안티 기독교인들에 대한 바른 대응은 맞비난이나 정죄, 혹은 자기변명 보다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의 원인을 ‘그들’에게서가 아니라 ‘우리’에게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말하자면, 교회 안에서조차 사라져가는 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죄를 무겁게 다루고 죄책감을 심각하게 다루는 것. 너무 쉽게 자신의 죄나 잘못을 정당화하는 곡해된 ‘이신칭의’ 교리를 바로 잡는 것. 잃어버린 치리와 권징이라는 교회기능을 회복하는 것. 그럴 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이 얼마나 값비싼 것인가를 체험하고 죄 사함의 기쁨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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