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3년 성서와 문화

[이 문 균·신학]


우리는 세상이란 무대에 등장하여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용서합니다.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을 만납니다. 사건을 일으키고,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우리를 불쌍한 인생이라고도 하고, 아름다운 인생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변화무쌍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평가는 나중에, 생애 끝에 가서야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소설은 독자들에게 인생 지도를 보여줍니다. 추악하게 살다가 스스로 파멸하는 사람의 인생, 어둠 속에서 살다가 빛을 따라 살아가는 의인의 숭고한 궤적, 판단을 잘못하여 악의 희생자가 된 여인의 불행한 삶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소설 레미제라블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하여 얽히고설키며 살아갑니다. 우리들은 그 이야기에 흠뻑 빠져듭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간이란 무엇인가? 신음합니다. 결심합니다. 삶을 조정하고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인생은 독자인 우리에게 현실보다 더 생생한 현실이 됩니다.

흙, 영혼 그리고 인생

사람은 살로 되어 있는 육체적인 존재인 동시에 신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은 영혼이기도 합니다. 육체를 무시하려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이 어디 가당키나 합니까? 당장 숨을 쉬고 밥을 먹어야 하는 게 인간인데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영혼을 부정합니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이런저런 행동을 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혼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학적인 문제를 다룰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위고의 생각입니다. 레미제라블에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묘사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인간의 육체성을 강조할 뿐 아니라 영혼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육체와 영혼은 어떤 관계일까요? 소설은 그런 문제를 논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소설은 드러내고 보여주지 설명하거나 논증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수 없는 통일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와 영혼을 떼어놓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편의상 육체와 영혼을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흙>

 

레미제라블에서 빅토르 위고는 인간이란 진흙에서 빚어낸 존재라고 합니다. 파리 변두리의 한 창백한 아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어린 것이 성장할 것이다. 그 아이가 어떤 진흙으로 빚어졌느냐고?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진흙으로. 한 줌 진흙에 한 가닥 숨결을 불어넣어 그 아담을 빚었다.” III. 16.


이러한 이미지는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 창조 이야기에 근거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living soul)이 되니라.”(창세기 2:7) 생령이 되었다는 것은 신의 생기가 육체에 들어가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신의 숨을 흡입함으로 사람은 비로소 숨 쉬는 사람, 하나의 인격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흔히 영혼(soul)이라는 말이 육체와 대조되는 비육체적인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오해되고 있기 때문에 새번역 성경은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번역했습니다.
인간은 육체입니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갖가지 일을 해 냅니다. 그러나 누구나 경험하듯이 육체는 쉽게 병들고 허물어집니다. 인간은 허물어지기 쉬운 흙덩어리입니다. 성서가 사람을 흙에서 빚어진 존재라고 하면서 인간의 허약함, 덧없음을 이야기하듯이 위고 역시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흙으로 빚어진 허약하고 덧없는 존재라고 합니다.


“인류는 곧 동일성이다. 모든 사람들은 같은 진흙으로 빚어졌다. 그들의 운명 또한, 적어도 이 지상에서만은, 서로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인간이기 이전에는 같은 암흑이었고, 인간인 동안에는 같은 살이며, 인간 상태 이후에는 같은 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반죽에 무지가 섞여 그것을 검게 만든다. 그 지워지지 않는 검은 색이 인간의 내면으로 침투하여 그곳에서‘악’으로 변한다.” III. 219.


위고는 진흙의 이미지를 확장시킵니다. 같은 흙으로 되어 있지만 그 흙에 검은 물이 침투하면 불행하게 된다고 합니다. 검을 물이 든 상태를 방치하면 악의 화신이 되기도 합니다. 검은 물이 무엇입니까? 위고는 사람을 검은 진창이 되게 하는 것은 무지와 가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검은 진창이 되게 만드는 것이 어찌 무지와 가난뿐이겠습니까? 검은 진창을 연상시키는 떼나르디에의 악행을 어찌 무지와 가난이란 말로 모두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레미제라블에는 매우 세련되고, 우아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 가운데도 시커먼 진창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을 검은 진창이 되게 만드는 것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작가가 검은 진창이 되게 한 것을 무지와 가난이라고 말 한 것을 일반화 하면 곤란합니다. 그 말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밖에 다른 원인은 없다는 말로 받으면 안 됩니다. 레미제라블은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쓴 논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고는 진흙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김성택 님은 장발장이 파리의 하수도로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빠져나오려고 할 때 겪었던 고통을 진흙 속에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으로 해석합니다. 그 부분에서 하수도의 진흙은 죽음과 삶에 대한 강력한 상징입니다.


“이 ‘흙도 아니고 물도 아닌’ 진흙이야말로 우리의 육체이고 우리의 숙명이다. 진흙투성이의 하수도를 통과하는 일은 아직 신성의 숨결이 들어오지 않은 죽음의 상태로 되돌아가서 그 태초의 물질을 담고 있는 모태에서 빠져나오면서 동시에 다시 태어나기 위함이다.”


위고는 진흙의 이미지로 민중의 절규와 환상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진흙 같이 물컹거리는 민중이 현실을 극복하려고 봉기에 나설 때는 ‘단단한 덩어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단단한 덩어리인 민중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면서 ‘불이 붙은 진흙’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레미제라블을 읽으면서 육체만을 위하는 인간은 예외 없이 물로 채워진 진흙탕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에 풀어진 흙은 결정된 형태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냥 주어진 환경에 따라 생각 없이 살아갈 뿐입니다. 생존하는 문제가 해결되면 잘 먹고 잘 입으려고 합니다. 지배하고 더 많이 누리며 살려고 합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자기뿐입니다. 자기 이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습니다. 웬만하면 세상 풍조를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방원의 <하여가>는 그런 생각을 잘 표현했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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