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3년 성서와 문화

[김 순 배 ·피아니스트 / 음악평론]


     해 음악계는 함께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오페라계의 두 거장을 기리는 공연으로 분주합니다. 독일의 바그너Richard Wagner1813-1883와 이탈리아의 베르디Giuseppe Verdi1813-1901가 그들입니다. 5월생인 바그너를 기리는 음악회나 축제는 이미 풍성하게 펼쳐졌고 10월생인 베르디 기념 연주회는 해를 넘어서도 계속 될 것 같습니다.
본고장 이탈리아의 자존심답게 오페라의 수준을 최고의 경지에 올려놓은 베르디와 새로운 ‘음악극’의 창시자로서 전방위적 영향력을 자랑하는 바그너라는 출중한 두 작곡가가 같은 해 태어났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두 사람은 동시대의 라이벌답게 피차 경계와 견제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고 하지요. 바그너와 베르디는 국적이 다른 만큼 성향이나 작품 스타일에 있어서 판이한 양상을 보입니다.
선율의 아름다움을 강력한 무기로 삼는 이탈리아 오페라에 탄탄한 드라마적 요소를 강화해 불후의 명작들을 생산해 낸 베르디의 작품은 철저히 ‘휴머니즘’에 기반을 둡니다. 반면 음악, 춤, 연극, 무대장치 등을 결합해 오페라를 총체적 종합예술(gesamtkunstwerk)로 가져가기 원한 바그너는 신화나 민담 혹은 철학적 주제를 즐겨 다룹니다.
‘축배의 노래’로 유명한 ‘라 트라비아타’, ‘여자의 마음’이 귀에 익은 ‘리골레토’ 등 베르디의 오페라는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과 갈등이 소재가 됩니다. 한편 바그너는 정통 독일정신의 수호자답게 ‘탄호이저’나 ‘로엔그린’ 그리고 ‘니벨룽겐의 반지’ 등의 음악극(musikdrama)을 통해 파우스트적 영혼거래와 궁극적 구원의 이데아를 제시하는 실물대보다 큰 작품세계를 보여줍니다.
독일 신화의 세계를 주로 다루었던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 ‘파르지팔(Parsifal)’은 기독교적 모티브가 현저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많은 논쟁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파르지팔’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담은 성배聖杯를 소재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순수한 기독교적 구원관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궁극적이고 절대적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인간의 영적 역정을 여러 종교사상을 혼합시킨 컨텐츠에 담아내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인간 군상들이 펼치는 리얼한 현실을 즐겨 다루었던 베르디의 출세작은 뜻밖에도 구약성서로부터 소재를 가져온 ‘나부코Nabucco’라는 작품입니다. 음악사에서 성서를 소재로 한 오페라들이 살아남은 경우는 이 ‘나부코’가 거의 독보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후기낭만주의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 20세기 신음악의 대부 쇤베르크의 ‘모세와 아론’ 등 성서에서 힌트를 얻은 오페라가 존재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표현주의를 내세우며 다소 엽기적 각색을 거친 ‘살로메’와 지극히 난해한 작곡기법으로 대부분의 청중에게는 요령부득으로 다가오는 쇤베르크의 작품은 성경 속 인물들을 캐릭터 재창조를 위한 모델로 삼은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성서적 오페라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순수한 작품적 평가는 차치하고 성경적 모티브가 일부 작곡가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음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에 그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경우이지요.
나부코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의 이탈리아식 이름이지요. 정식으로는 ‘나부코도노소르Nabucodonosor’이지만 줄인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구약의 열왕기서, 다니엘서, 예레미아서에 기초하고는 있지만 느부갓네살과 스가랴 선지자의 캐릭터를 빼고는 모두 허구의 스토리입니다. 기원전 6세기에 있었던 이른바 ‘바빌론 유수(Babylon captivity)’를 소재로 포로로 끌려간 히브리인들과 바빌론 사람들 간의 사랑과 갈등, 파국과 구원을 다루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10년간 실성했다가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였다는 다니엘서의 기록은 이 드라마의 극적 반전을 위한 중요한 장치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실제와 허구가 적절히 혼합된 내용인 것이지요. 아무튼 종교적이거나 성서를 기반으로 한 작품은 ‘오라토리오’라는 이름으로 구분되어 만들어지고 공연되었던 전통관례에 비춰볼 때 ‘나부코’는 극히 이례적인 오페라입니다.


베르디가 ‘나부코’를 작곡했던 1841년은 전작 오페라들의 잇단 실패와 부인과 두 자녀의 갑작스러운 죽음 등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시련과 고통이 한꺼번에 덮친 시기였습니다. 그 와중에 친구가 강압적으로 안겨준 대본을 무심히 펼쳐든 베르디의 눈과 마음을 강타한 가사가 ‘날아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로 시작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후에 이 대사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는 불멸의 히트곡으로 만들어집니다.
내 마음아. 황금의 날개로/ 언덕위에 날아가 앉아라/ 훈훈하고 다정한 바람과/ 향기로운 나의 옛 고향/ 요단강의 푸르른 언덕과/ 시온성이 우리를 반겨주네/ 오 빼앗긴 위대한 내 조국/ 오 가슴 속에 사무치네/ 운명의 천사의 하프소리/ 지금은 어찌하여 잠잠한가/ 새로워라 그 옛날의 추억/ 지나간 옛 일을 말해 주오/ 흘러간 운명을 되새기며/ 고통과 슬픔을 물리칠 때/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굳건한 용기를 주리라


고향에 대한 절망적 그리움과 어둠 같은 공포의 와중에서도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구원하리라는 굳은 믿음의 의지를 다지며 부르는 히브리 노예들의 노래는 오페라 ‘나부코’를 오늘날까지 사랑받게 만든 일등공신입니다. ‘나부코’를 계기로 베르디도 절망의 나락으로부터 기사회생, 대작곡가로서의 행보를 기운차게 옮길 수 있었습니다. 당시 외세의 압박에 시달리던 이탈리아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던 이 합창은 오늘날에도 역경에 처한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위로를 심어줍니다. 그렇게 베르디의 ‘예술적 시작’이었던 ‘노예들의 합창’은 1901년 장례식에서도 불리며 작곡가의 마지막을 지켰습니다. 같은 노래가 연출에 따라 어떻게 다른 임팩트를 갖는지 보여주는 두 가지 버전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들어보시지요.
http://www.youtube.com/watch?v=rUUVnJjkcAM
http://www.youtube.com/watch?v=D6JN0l7A_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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