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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를 다시 생각하다

성서와 문화 2013.12.18 21:08 조회 수 : 2574

[김 효 숙 ·조각]


지난 봄 지인의 전시를 보기 위해 전북도립미술관에 갔다가 책 한권을 샀다. “거침없이 빠져드는 역사이야기” 명화편이다. 책표지를 장식한 것은 고흐의 <자화상>이었다. 고독과 슬픔과 두려움 ...,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이 쏟아질 듯한 고흐의 눈이 주는 강렬함은 책을 다시 내려놓을 수 없게 했다.
1980년 겨울, 유럽여행 중 암스테르담에서 고흐미술관을 찾았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초기 작품부터 진열되어 있던 아래층 전시장에서 처음부터 나를 압도시킨 것은 <펼쳐진 성경책>과 <헌 구두 한 켤레> 그림이었다. 어두운 톤으로 무겁게 그려진 두 그림은 나란히 곁에 놓여 있었다. 낡고 뭉거진 끈이 풀린 구두는 그의 관심의 현장과 삶의 숭고함을, 펼쳐진 성경책은 그가 어떻게 살고자 했는가, 그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그 감동과 함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위층에 전시된 <꽃이 활짝 핀 아몬드나무1890.2> 그림이었다. 하얀 꽃들이 만개해 있는 나무 한그루가 밝은 하늘색 배경으로 따뜻한 봄 햇살과 신선한 공기를 가득 담고 생명의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여 그린 것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림 앞을 떠날 수가 없었던 기억이 새롭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스물일곱 때였다.(1880년 여름) 7년간의 화상畵商생활과 성직자가 되려던 4년간의 생활을 접고, 즐겨 그리던 그림이긴 하나,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동생 데오의 권유로 시작한 것이었다.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그는 다시 인생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팔리지 않는 작품은 끝없는 가난의 고통으로 이어졌고, 받아드려지지 않는 사랑의 슬픔과 절망은 그의 생을 늘 따라다녔다. 이를 이겨내기 위한 고흐의 삶의 고통과 예술의 완성을 위한 그의 집요한 노력은 유일한 정신적 물질적 후원자였던 동생 데오와 18년간 주고받은 668통의 편지 속에 고스라니 남아 있다.
“사람들의 눈에 나는 무엇이냐? 없는 사람이거나 특이하고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삶의 목표도 없고 이룰 수도 없는 사람, 한마디로 형편없는 사람이지. 좋다.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특이하고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의 정신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내 작품을 통해 보여 주겠다.”(1882.7.2)라고 쓰고 있다.
뒤늦게 뛰어든 화가의 길이었지만 그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작업에 몰두했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그리고 인간과의 교감 없이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고독은 그의 예술을 더 깊고 더 멀리 나아 갈 수 있게 만들었고, 그림에 더욱 몰입하게 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네덜란드의 준데르트Zundert에서 1853년 3월 30일에 태어났다. 고흐가 태어난 생일날은 1년 전 그의 바로 위의 형이 죽은 날이었다. 태어나면서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빈센트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살아있으나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묘비 앞에서 영문 모를 슬픔을 느껴야만 했다. 빈센트는 어머니로 부터의 끝없는 사랑을 갈망했으나 어머니의 슬픔을 거두어 주지도 못했고, 자신을 향한 사랑도 얻지 못했다. 어머니로부터의 결핍된 사랑은 또한 그를 스쳐간 어떤 여인에게서도 평생 얻지 못했다.
그나마 그에게 받아드려진 여인은 헤이그의 길거리에서 만난 병든 미혼모이자 매춘부인 시엔Sien과의 짧은 동거생활이었다. 자신 보다 더 처절하게 삶에 지쳐 절망에 빠져있는 시엔과의 동정과 연민의 사랑도 현실의 벽에 부딪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시엔을 모델로 그린 <슬픔1882.11>이라는 제목의 드로잉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고흐가 직접 그림 속에 “sorrow”라고 써 놓고 있는 이 석판 드로잉은, 두 팔에 얼굴을 파묻고 쭈그리고 앉아 절망에 빠진듯한 가련한 여인의 옆모습이다. 형언할 수 없는 여인의 슬픔을 그린 이 드로잉은 훗날 처절했던 고흐의 삶의 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혹독한 기초수업에 몰두했던 네덜란드 시기(1881-1885)의 작품들은 인물화가 대부분을 이룬다. 그림의 향상을 위해 그는 많은 인물화를 그리려 애썼다. <감자먹는 사람들1985.4>은 이 시기를 대표한다. 고흐는 이 그림에 대해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를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이 보여 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1885.4.30)고 썼다.
그는 1886년 3월 데오가 있는 파리로 가게 되는데, 겨울의 추운환경에서도 그림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파리에서 그의 그림은 인상파의 영향을 받아 네덜란드 때의 어두운 화면에서 벗어나 밝은 색채의 새로운 화풍으로 바뀌게 된다.
파리에서 사는 2년여 생활 동안(1886-1888) 그는 집중적으로 꽃과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다양한 색의 조화와 배색의 탐구를 위해 꽃 그림을, 인물 탐구를 위해 많은 양의 자화상을 그린다. 그가 남긴 40여점의 자화상 중 35점이 파리에서 그려졌다. 경제적 이유로 모텔을 구하지 못하는 그가 선택한 방편이었다. 이러한 탐구 결과, 그는 단순한 명암 대비적인 기능으로서의 빛이 아닌 색채효과로서의 빛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인물의 외형보다는 인물 각각의 특성과 그 내면의 표현에 한층 더 닥아 갈 수 있었다. (그는 똑같은 자신의 얼굴을 참으로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그려 보고 있다.)
도시생활의 염증과 그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일본 판화 속의 자연의 평화로움에 끌려 시골생활을 꿈꾸게 된 고흐는 색채와 태양을 찾아 남프랑스의 아를로 가게 된다. 일 년 남짓 체류한 아를에서의 생활(1888-1889)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시기였고, 그의 주요 걸작들을 탄생시킨 풍요로운 때였다. 그는 이곳에서 자그마치 187점의 유화작품을 그렸다.
그의 방을 그린 <아를의 고흐의 침실1888.10>시리즈, <노란집1888.9>, <밤의 카페테라스1888.9>, <별이 빛나는 밤1888.9>, 밀레를 존경하여 밀레의 주제를 모방한 <씨 뿌리는 사람1888.6>, 10여점이 넘는 <해바라기1888.8>시리즈, 수확하는 여러 종류의 밀밭 그림들, 이것들은 모두 그가 눈부신 노란색과 오랜지색에 선명한 파랑과 녹색, 푸른 보라색의 색채대비를 사용하여 자신의 방법대로 자신이 원하는 강렬한 표현을 마음껏 구사하며 색채에 심취했던 그의 대표작들이다.
그는 자신의 노란 집에서 마음 맞는 동료 화가들을 불러 모아 함께 그림을 그리고, 성실하게 노동하며 조촐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화가 공동체를 만들기를 원했다. 고갱이 이에 응했다. 그러나 그들의 공동생활은 두 달 만에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불행으로 끝나고 말았다.(1888.12)
그 후 일 년여의 정신병원(생레미 드 프로방스에 있는 생폴드 모졸병원1889.5-1990.5)생활은 그를 참으로 불행하게 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의 병마와의 현실적 고통과는 판이하게 강한 붓터치와 화려한 색채로 아름다운 그림들을 쏟아내고 있다. 고흐의 그림을 특징짓는 강렬하고 불타는 듯한 붓놀림의 작품들이 이때의 것들이다.
아를에서 과수원과 밀밭을 주력해 그렸듯, 생레미에서는 올리브 과수원과 사이프러스 나무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 화면 한 가운데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린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1890.5>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노란색 배경에 그려진 푸른 남색의<아이리스>꽃은 그가 병원에 들어 올 때와 나갈 즈음 병원 뜰에 만개해 있던 꽃이었다. 이 시기 종교적 귀의를 암시하는 듯한 두점의 걸작이 그려지는데, 그가 좋아한 낭만주의 작가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모방해 그린 <착한 사마리아인>과 <피에타>이다.
아를시기가 색채 발견을 통한 인간애의 실현과 좌절이었다면, 생레미에서의 일년은 위대한 자연의 발견인 동시에 색채회화의 완성의 시기였다.
고흐가 남녁의 꿈을 접고 파리 북쪽에 있는 오베르의 라부 여인숙 다락방에 도착한 것은 1890년 5월 20일이었다. 7월27일 그가 스스로의 가슴에 총을 쏘기 까지의 70여일 동안 <오베르의 교회1890.6>, <의사 가쉐의 초상1890.6>, <까마귀가 있는 밀밭1890.7> 등 무려 80점의 유화작품을 남긴다.
고흐에게 그림은, 처음에는 ‘나도 무엇인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팔리지 않는 그림은, 작품생활을 돕는 아우 데오에 대한 미안함과 채무감 그리고 가난이 주는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림은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었고, 그의 유일한 탈출구였으며, 피난처이었다. 마지막에 그림은 바로 고흐 자신이 되었다.
급규急流처럼 빠르게 변화해 가는 그의 화력畵歷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화가로서의 생에 철저했는가를 본다. “화가는 그림을 그려야한다. 다른 것은 차후의 일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이 당연한 원칙이 일상의 생활 속에서 지켜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모든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보고 느낀 그대로를 그리려 했던 그는 폭풍우 치는 바닷가에, 쏟아지는 햇빛 속에, 농부들의 밭 속에 ...,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그림을 위해 그 작업의 현장 속에 있었다. 그는 그의 편지에서 그림들을 모두 ‘연구작’이라고 쓰고 있다. “계속해서 모든 걸 시험해 봐야 더 나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여야 한다 해도 더 나은 그림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하고자 결심한다.”(1882.8.20) 그는 평생 그렇게 자기와의 약속을 지켰다.
우리는 그의 어느 곳에서도 천재의 오만함이나 게으름 따위란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화력 10년 동안 900여점의 유화 작품과 1,100여점의 드로잉과 스케치, 총 2,000여점의 엄청난 양의 회화 작품을 남겼다.

내가 만난 책표지의 <자화상1989.9>은 고흐가 쌩레미 정신병원에서 그린 그의 마지막 초상화이다. 다른 초상화들과는 달리 단정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모습이다.
반복되는 선의 소용돌이로 그려진 파란색의 옷과 배경에 새빨간 수염이 그림의 액쌘트를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자화상에서 우리를 압도시키는 것은 그의 눈이다. 잦은 발작(간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그 눈 속에 여과 없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해 초, 그는 어머니의 70회 생신을 맞았다. 그는 자신의 자화상을 어머니의 생일선물로 그려 보내려 마음먹었다. 건강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어머니가 걱정하시지 않도록 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어떤 모습의 자화상을 선택해도 눈 속에 드리워진 절망을 숨길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아를에서의 자신의 침실 그림을 보냈다.
지금 다시 고흐를 생각하며, 고흐 미술관에서 본 위아래 층의 상반된 그림이 둘이 아니라 하나의 고흐였음을 깨닫는다. 고흐의 영혼 깊숙이 자리한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의 음陰과 양陽이었음을 .... 고통 받는 이들과 아픔을 같이하고,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는 그의 따뜻한 심성을 다시 접하며 새삼 감격스럽다.
고흐의 인생을 다시 살펴보며, 십자가와 부활이 함께하듯 그의 고달팠던 삶이 만들어낸 빛나는 사랑의 열매들은 환희의 부활로서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다.
고흐의 순수한 영혼과 열정이 남긴 그의 그림 속 노랑은 영원한 ‘사랑의 빛’으로, 파랑은 사랑의 ‘무한한 힘’으로,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은 온 인류의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희망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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