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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이라는 자유

성서와 문화 2013.12.18 21:07 조회 수 : 2347

[김 수 우 ·시인]


낮엔 골동품차들이 뿜는 매연으로 코가 매운데, 밤하늘엔 별이 빛난다. 도심 한가운데서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다. 아바나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아바나 리브레 호텔 위로 솔개 떼들이 날아다닌다. 도심 한복판을 날아다니는 크고 검은 새떼들이 땅에 앉는 걸 본 적은 없다. 그들은 어디서 잠들까. 오백 년 스페인 식민지 분위기가 그대로 남은 낡은 집들 사이로 아람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도심의 푸른 거목들은 감탄할 지경이다. 모든 길이 숲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 방 왼쪽 에어콘 바깥에 작은 새들이 집을 지었다. 종일 에어콘 속에서 맑은 새울음이 들린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종알대는 수다를 듣다보면 새들의 살림살이가 환히 보이는 것 같다. 거리는 물자부족한 현실이 역력한데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쾌하고 당당하다. 가난함이 분명한데도 모두 첨단의 멋쟁이들이다. 못 먹어도 멋은 부린다니 쿠바의 문화예술을 이해할 만하다.
어느 것 하나 모순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이 혼재해 자신있게 공존하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살아왔던 곳은 어떤 곳이었으며, 이곳은 어떤 곳이란 말인가. 사는 법이라곤 종일 일하고 돈버는 것이 전부인 성과주의 사회에서 나는 얼마나 멀리 떠나왔단 말인가. 그것은 여행 중인 이방인의 시선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방식이라는 문학적 고뇌에 대한 답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바로 ‘주눅들지 않는’ 삶이었다. 그건 내가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몇 나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몇 나라, 인도나 파키스탄 등 내가 여행했던 어느 문명과도 달랐다. 도대체 그들의 자긍심은 무엇이란 말인가.
쿠바를 잘 모를 때의 이미지도 일단은 모순이었다. 혁명, 군복, 북한과 친한 나라, 카스트로의 위압적인 카리스마. 그와 동시에 유기농업과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으로 불합리한 현실을 뛰어넘는 나라, 예술과 낭만의 나라 등이 내가 가진 상식이었다. 쿠바에 가고 싶어한 건 카리브해라는 단순한 낭만에서가 아니었다. 쿠바의 혼종문화가 궁금했다. 모든 것이 아우러지면서 서로 살아있고 동시에 새로움을 창조하는 문화. 바로 그 공존이 보고 싶었다. 공존이란 다문화사회에 접어든 우리 현실에 얼마나 큰 숙제인가.
쿠바의 혼종문화에는 역사가 그대로 작동한다. 쿠바의 역사는 정말 혹독하다. 1492년 콜럼부스가 도착한 후 스페인에 정복당하면서 노예로 혹사당하던 원래의 원주민들은 1528년 토벌당하거나 1530년 전염병으로 전멸했다. 부족한 노동력 때문에 들여온 아프리카 흑인들은 쿠바의 인종구성을 바꾸게 된다. 가혹한 탄압에 대해 종종 일어나던 흑인반란은 노예제도 폐지와 독립을 요구하면서 1868년 1차 쿠바독립전쟁으로, 다시 1895년 호세 마르티를 중심으로 제2차 독립전쟁이 된다. 미국이 개입하면서 독립을 승인받는다.
무려 500년 가까운 식민지 생활을 벗어나는 순간 쿠바는 미국의 내정간섭을 받아야 했다. 미군 군정을 거치면서 쿠바 경제의 중추적 기능은 모두 미국 자본이 장악한다. 그 속에서 독재체재의 구축과 정치 부패가 구조적인 모순으로 고착되었다.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가 농민과 도시 중간층의 지지를 받으며 바띠스타의 독재를 타도하고 혁명에 성공한다. 이후 계속 미국과 대립, 1961년 국교를 단절한다. 이후 쿠바 미사일 위기 등으로 미국과의 관계는 최악에 달하고, 경제봉쇄조치를 당한다.
하지만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도 모든 계층에 평등한 교육, 의료 혜택이라는 의미있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다시 극심한 경제난관에 봉착한 쿠바는 아직까지 많은 한계에 갇혀 있다. 다양한 개혁 모델을 점진적으로 도입하고 있지만, 모든 게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들도 현실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고, 돈을 버는 데에 열중하고 있다. 신기한 건 그 불만과 그 한계들이 그들을 주눅들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까지 무상교육과 무상의료가 자긍심을 주는 것일까. 그들의 당당한 체격 때문일까. 일단 그들은 자세가 똑바르고 건장해보이고 목소리가 크다. 그리고 어디서든 춤을 추고 노래한다.
일단 모든 것이 평등해서일까. 거리의 표정들이 밝고 활발하다. 주눅든 사람이 없다. 아이들이 둘셋 어깨 겯고 노래하며 지나는 것을 수시로 본다. 교육이 평등하니 자랄 때부터 구김살이 없다. 쿠바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 걸까. 그 평등이 자긍심과 활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 쾌활함은 비교의식과 경쟁으로 가득찬 우리 사회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이었다. 낡고 슬럼화된 거리는 비루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따뜻하게 다가온다. 아마 사람들의 건강한 표정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문화들이 공존하는 또 하나의 힘은 그들의 감수성에 있다고 믿는다. 라틴 문화를 만들어낸 그 감수성은 아프리카에 그 뿌리를 둔다. 서아프리카 콩고족과 요루바족의 노예가 대다수였던 흑인들은 선조로부터 이어온 민족신앙의 신들을 받들었는데, 그중 쿠바음악의 기원이 된 것은 북을 사용하는 창고라는 음악의 신이었다. 흑인들은 북소리에 맞추어 기도를 올리고 춤을 추었다. 이것이 쿠바음악의 세련된 음이 되었다. 이처럼 쿠바 음악의 기원은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때문일까. 그들은 문화를 인식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몸으로 지각하는 문화를 체득하고 있었다. 그냥 몸으로,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공존의 출발이 아닐까. 그들은 음악이라는 것은 밸런스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조화의 결정이라는 것을 몸을 통해 안다. 몸속에 있는 자기 리듬을 따라 사는 것이 자연적인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조화는 자유스럽고 일상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그들이 평균수명이 매우 높은 이유이리라.
“당신 나라에서는 일년내내 원하는 과일을 먹을 수 있는 걸 알아요. 그러나 우리는 제 철에 나오는 과일만 먹어요. 그것이 몸에도 좋고 자연에도 좋다는 걸 알지요.”
감자가 없다고, 과일가게에 과일이 많지 않다고 아쉬워하는 내게, 쿠바의 젊은 아낙 릴리아가 한 대답이다. 무안하면서 저절로 반성이 되었다. 그녀는 청소부인데, 청소를 하면서도 늘 노래한다. 너무 유쾌하고 당당해 보인다. 쿠바에 와서 불편한 것들은 내가 문명을 얼마나 겹겹 껴입고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경제가 삶의 많은 부분에 한계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 모두들 돈을 벌기 위해 애쓰지만, 실제로 물질이 그들을 지배하진 않는다. 가혹한 역사를 통해 그들은 함께 해야할 것들을 알고 있고, 이를 감성으로, 자연의 리듬으로 몸에 익히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자긍심이라는 유산을 받은 게 아닐까.
공존에는 자연적인 감수성이 우선이라는 것을 배운다. 자신의 내면을 끌어낼 줄 알고, 다른 사람의 감성을 받아줄 줄 알 때 공존이 가능하다. 공존이란 함께 자유로운 것이고, 그 자유가 배려가 시작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래된 것도 함부로 허물지 않고 지키고, 아무리 망가진 것도 고치고 다듬는다. 어쩔 수 없는 환경 탓도 있겠지만 결국은 그들의 자긍심이 되었다. 그 속에 고스란한 문화예술에 대한 감성을 읽는다. 그리고 문명의 극단적인 위기에서 쿠바가 왜 전 세계에서 대안사회의 모델이 되는지 알게 된다.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지 오래인 우리 일상, 우리 삶의 풍경을 뒤돌아본다. 우리의 소비적인 자유가 부끄럽다. 구름은 빠르게 생성되어 빠르게 흘러간다. 우리 삶이 그럴진대 좀 더 나누고 너그러울 순 없을까. 세계에서 버린 모든 차들이 아바나에서는 하나의 전통처럼 굴러다니고 있다. 그 골동품차들도 참 당당하다. 몇 백 년된 건물과 푸른 거목들과 잘 어울린다. 그리고 도심의 밤하늘, 별빛도 너무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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