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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얀 사 발

성서와 문화 2013.10.10 16:30 조회 수 : 2664

[김 용 수 ·조각가]

 


사는 것이 버거울 때, 동심童心 속 풍경은 휴식이 됩니다. - 그때 그 시절에, 별이 총총 박혀있는 새벽 녘 오줌 누러 나오면, 어디서 두런두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촛농이 내려앉은 가물가물한 촛불 아래 하얀 사발을 앞에 놓고, 무언가 빌고 있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입니다. 겨울에는 부엌에서, 나머지 계절은 장독대에서, 새벽 첫 물을 길어다 정성으로 올리는 정안수井華水를 놓고. 천지신명께 기원하는 것에서 어머니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기, 천지신명은 천신天神과 지명地明으로 -하늘의 신묘함과 땅의 밝은 덕이 조화를 이루어, 만물을 낳고 키우는 섭리를 신앙대상으로 하는, 아득한 배달시대부터 내려오는 풍속입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우리 대주(父)하는 일 잘되게 해 주시고, 자식들 그저 무탈하게 도와주시고, 세상이 늘 잠잠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어머니의 이 기도는 절에 가실 때나 교회를 나가게 된 지금이나 -천지신명이 이름만 바뀌었을 뿐- 어릴 적 듣던 대로, 그 정서는 한결같습니다. 요즘 한 가지 더한 것이라면, “잠자듯 데려가 주시옵소서!”입니다. 93세 되도록 당신 자신에 대한 기도는 없었는데, 유일한 소원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속내는 자식들 고생 않도록 해달라는 뜻입니다. 이 기도를 들을 때마다. 나는 가슴에 찡한! 울림이 있습니다.

3.1독립만세운동 2년 후 태어난 어머니는 글 모르는 세대입니다. 비극의 시대와 통념이 여성에게 글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말대로 ‘까막눈’입니다. 그 눈으로 험한 시대, 험한 일을 감내하면서 일가一家를 지켜낸 것입니다. 그 길에 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는 사람 마음을 맑게 하고, 자비를 깃들게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도처도, 예외 없이 시류에 밀려갔습니다. 이 희생을 곁에 두고, 어찌 종교의 희생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집집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예수요, 보살입니다. 절에서 아낙들을 보살菩薩이라 하는 것은, 자신은 돌보지 않고 오직 가족을 생각하는 그 절실함이 보살도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을 세상에 풀면 대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근세 격랑을 헤 처 온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의 자화상입니다.

겨레의 모든 기도는 ‘정성’이 처음이자 끝입니다. 정안수는 마음을 담는 정갈함의 표상입니다. 수 천 마디 설교를 모두 녹여 수렴하는 자리가 ‘정성 誠성’ 한 자입니다. ‘정성이 없으면 만물도 없다(不誠無物-중용).’했습니다. ‘참되어 삿됨이 없는 성誠’ 이 한마디로 조선 성리학은 500년을 뚫지만, 한민족 누천년 역사에는 새로울 것 없는 정서입니다.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슈펭글러는 ‘원시종교든 고등종교든, 내용에는 우열의 차이가 없다.’했습니다. 형식은 시대에 따라 세련미를 더 했을 지라도, 원형은 같다는 것입니다. 그 원형이 바로 우리 세시풍속과 무속에 살아 있습니다. 종교, 정치, 예술의 뿌리를 더듬어 가면 모두 무속에 닿습니다. 우리 말 무당의 巫무자 어원은 범어 Medha와 같습니다. ‘h’는 묵음입니다. ‘치료하다’ ‘지혜롭다’는 뜻입니다.

제정일치시대 제사장인 단군은 천명天命을 깨친 자가 아니면, 대통을 이어받을 수 없었습니다. 단군만이 고천告天의식을 봉행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천자제도는 이의 모방입니다. 이것이 동이족東夷族 전통입니다. 단군신화의 실체는 ‘쑥과 마늘로 심신을 정화하는 3*7일 선수행仙修行을 말합니다. 쑥과 마늘은 사기를 몰아내고 정양할 수 있는 약리 작용이 있습니다. 물만 마셔야하고, 스무 하루 안에 깨쳐야 상근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웅족熊族 여인이 먼저 견성見性함으로써 성모자격을 얻게 됩니다. 자성自性을 깨친 사람다운 여인으로 다시 나는 상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제식민사학은 조선의 사서 51종 20만권을 불사르고. 민족혼을 뺀 조선사 35권을 만듭니다. 강단사학은 지금도 이를 가르칩니다. 타인이 기획하고 쓴 역사를 우리가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엔 환인, 환웅시대를 자르며, 단군 47대의 실존을 신화로 왜곡했으나, 우리사서 환단고기桓檀古記와 청나라 강희제 때 편찬한 사고전서四庫全書 7만 9천권 속에는 ‘누천년 단군 역사기록’이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청을 세운 여진족은 우리와 같은 동이의 후손이므로, ‘있는 그대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티벳, 서장, 몽골, 중앙아시아, 러시아 바이칼 호 주변까지 여러 민족의 기록과 전설 속에 단군이 등장하고 있으나, 정작 단군 적통인 우리 역사는 뿌리를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래로 하늘자손이라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도를 보유한 민족입니다. ‘동이東夷’의 어원(범어Tung-I)은 ‘천지만상을 통달한 민족’이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개천절開天節이라 했습니다. 개국開國이 아니라 개천開天인 것입니다. 이 때 환웅천황桓雄天皇은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선포합니다. 배달(倍達)은 18대 환웅역사를 아우르는 말입니다. 축구 팬-붉은악마들이 쓰는 심 볼, 치우蚩尤천황이 14대 자오지 환웅입니다.

이 하늘 길(天文)을 통달한 겨레의 원형이 삼신사상에 녹아 있습니다. 삼신三神이라 했으나, 하느님이 셋(천지인)으로 드러난 것을 말할 뿐, 본래 하늘(天一神)이 본체입니다.(三原一體) 따라서 동이족東夷族에게 하늘은 내 업을 비추는 거울이자 내재자입니다. 업경대業鏡臺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비추어 사는 삶이 업경대입니다. 그러므로 삶은 ‘업業’이 심판을 주재합니다. 업은 불교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천년 배달역사에 녹아있는 말입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太白逸史 편에 ‘벼의 성숙을 축하하는 것을 업이라 하고(祝禾之熟曰業)’ ‘업을 생산 작업의 신이라 한다(業爲生産作業之神)’ 했습니다. 이 같이 ‘업’은 생산의 뜻이 있어, 생각과 행동으로 무엇을 끝없이 짓는 것을 이릅니다. 결국 자기 업은 스스로 짓고, 스스로 끌다, 스스로 업고 가야합니다.

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했습니다. 업에 내재한 하늘이 빠짐없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자는 하늘과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君子不怨天不尤人-논어)’ 합니다. ‘짓’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짓는 순간, 몸은 유전자에 입력합니다. 선하게 지으면 세포가 착하게 움직이고, 악을 지으면 세포가 나쁘게 움직입니다. 현대유전학이 잘 입증하고 있습니다. 제 삼자가 끼어들 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선조先祖들은 ‘칼날 위에 선 듯, 몸과 마음을 살펴라!’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고등종교라 하여, 여타 문화를 미신으로 폄하 할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오히려, 고등종교라는 경전을 읽게 되었을 때. 귀신 쫓고, 이교도 집단살육 장면이 많아서 충격이었습니다. 갑자기 서양전쟁역사가 눈앞에 쭉 섰습니다. 동네북처럼 당하는 무당도 살육을 교사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 갈등요인 하나가 자기문화에 대한 편견입니다. 자신을 낳고 기른 터를 무턱대고 불신하고, 폄하합니다. 역사 잃은 슬픔입니다. 불교는 죄의 원천을 무명으로 봅니다. 근원을 못 보는 지혜의 결핍을 말합니다. 잘 못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화해를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자신의 생득적 문화 환경을 이해하고, 겨레의 고유문화를 미신이나, 우상愚像으로 모는 주장의 실체가 진실에 근거한 것인지 파악해야합니다. 베이컨은 4대 우상을 말했거니와 - 진리가 그러하듯, 우상 또한 어떤 형상形像에 고정된 말이 아닙니다. 이치와 순리를 거슬러, 조화를 깨는 모든 것입니다. 사리분별 없이 섬기어, 지혜를 가리면 곧 우상인 것입니다. 본지 편집인이신 박영배 선생님은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하면 모두 우상이 된다.” 하셨습니다. 편견은 우상의 늪과 같고, 찰나에도 우상은 죽순처럼 클 수 있습니다. 진리를 말하기 전에 도덕과 상식을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진리는 무형無形이라 냄새, 소리, 말을 떠나 있습니다. 형상에 매이면 도道는 떠나갑니다. 그것들은 추우면 불쏘시개로 쓸 수 있습니다. 절과 교회도 화재는 발생합니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을 봐야합니다. 그러므로 천년의 당산나무, 수억만 년의 당산바위, 천하대장군, 불상 등은 기도의 좌표(방향)와 같습니다. 유럽에도 수많은 신상神像이 있고, 교회에 가면 성모상이나 십자가 앞에 기도하지만, 그 대상을 우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과 같지요. ‘저것은 고등하고, 이것은 저등하다.’는 이분법은 왜곡된 사관이 만든 허상입니다. 오히려 자연을 존중하고, 이치를 중시하는 동양의 지혜전통이 인류를 파멸에서 구할 대안으로 회자됩니다. 이는 ‘서양의 몰락’을 예고하는 서구석학들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동양문화에서 절하는 것은, 만물 일체를 경외하는 표현이자-자신을 끝없이 낮추는, 자신을 향한 예절입니다. ‘나’라는 독선이 땅보다 더 낮아졌을 때, 천지와 합일하고 신명은 깨어납니다. 일 배(절)의 정성이 오만한 나를 자연으로 되돌리고, 평화를 깃들게 합니다. 이것이 절하는 의미입니다. 생의 철학자 베르그송은 ‘자연이 곧 신이다.’했습니다. 겨레의 자연신앙自然神仰은 회복해야할 인류의 원형이 아닐까합니다. 왜냐면? 인격신으로 인한 종교 갈등과 종교전쟁의 골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장독 위 빛나던 정안수 하얀 사발, 그 정성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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