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3년 성서와 문화

계산하지 않는 계산

성서와 문화 2013.10.10 16:29 조회 수 : 2677

[김 수 우 ·시인 / 백년어서원 대표]

 


가까운 지인 중에 아름답게 성공한 이가 있다. 넉넉한 나눔을 성공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천성적으로 부지런한 그녀는 일하는 것, 노동 그 자체를 좋아한다. 그래서 자연이 좋아 사두었던 고성 시골집을 ‘동화동시의 숲’으로 가꿀 거라며 늘 맨손으로 일을 해왔다. 오랫동안 아동문학을 지원해온 그녀였다. 1만 5천여 평의 깊은 산자락에 뜻을 품고 나무를 가꾼지 20여 년, 이젠 누구나 감동하는 문학의 숲을 이루었고, 그 향기가 깊다. 고단한 노동으로 병원에 들락거리는 게 몇 년째인데 얼굴빛이 항상 환하다. 아직도 주말마다 아픈 몸으로 여름마당 풀을 뽑으면서도 삼매경에 빠지고 만다.
성실하고 헌신적인 삶은 도무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일을 몸으로 직접 해내는 그녀에게 물었다. 행복한 삶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그녀의 대답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계산하지 않는 삶이지요,” 그러면서 옆자리에 있는 어린 친구에게 다시 다짐하듯 건넨다. “계산하지 않으면 정말 성공할 수 있어요.”
계산. 숫자를 따지는 것. 일상은 숫자에서 시작되어 숫자로 끝난다. 숫자에 갇혀 있는 셈이다. 더욱이 우리는 이를 계속 계산하고 산다. 손해인가. 이익인가. 계산을 따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불이익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계산이 복잡해지면서 관계도 복잡해지고 상처도 복잡해지고 불평도 복잡해졌다. 끊임없이 소유에 집착하게 하는 이 시대의 물질 구조는 인간에게 계산을 선물했다. 이 계산은 우리에게 불신과 불안을 안겨주었다. 10년 후, 20년 후를 열심히 계산하게 한다. 그래서 보험회사만 자꾸 많아진다.
계산을 안 하는 게 가장 큰 지혜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 계산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제대로 계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셈법을 제대로 익혀야 계산이 정확해지지 않겠는가. 어떤 게 정말 이익인지, 이익이란 무엇을 말하는지 분명히 따져보자는 것이다. 백년어서원이 5년차에 접어들자 주변에서 자주 묻는다. 어떻게 운영되나요? 남는 게 있나요? 한눈에 보기에도 인문학 운동이 수익구조가 되지 않는 게 뻔하게 보이는 까닭이리라. 나의 대답도 늘 한 가지다. ‘가난하면 이슬이 달지요.’ ‘가난하면 매일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돈만 안 남고 다 남아요.’
정말 많이 남았다. 우선 사람들이 남았다. 따뜻하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 남고, 그동안 한 공부와 독서가 남았다. 관심과 배려가 남았다. 책이 남았고, 추억이 남았고, 무수한 의미가 남았다. 그리고 기적이 남았다. 이 모든 것은 계산으로부터 제외되어 있다. 남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내 손안에 남는다는 것이 꼭 물리적이어야 하는 걸까. 가난하면 우리는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많은 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깨달을 수 있다. 무더울 때 한 줄기 바람을 서늘하게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기적이 우리에게 남는다는 것, 일상의 모퉁이에 기적이 쌓인다는 것, 얼마나 무지한 이익인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니코스 카잔차키는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을 보여준다. ‘나’라는 주인공의 광산은 망하면서 조르바의 춤으로 바뀌었다. 또 조르바의 춤은 자유를 깨닫는 한 권의 책으로 바뀐다.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포도가 포도주로 바뀌는 것은 물리적 변화이고,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것은 화학적 변화이다. 이 포도주가 구원으로 바뀌는 것은 영적인 변화이다. 우리 앞에 놓인 물질들이 내게 와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내가 먹은 음식들은 무엇으로 바뀔 것인가. 내 앞에 놓은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작업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고 나의 실천인 것이다.
예수가 가르친 자발적 가난이나 부처가 가르친 무소유의 정신은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계산법을 가르친다. 이제 정말 삶을 제대로 헤아릴 줄 아는 계산법이 필요하다. 먼데를 내다보는 계산, 영혼을 내다보는 계산, 사람과 사랑이 남는 계산을 배워야 한다. 이 계산법은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는 이치이다. 나누어주고 나누어준 것을 잊어버리는 삶이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아름다운 기억상실이 필요하다. 준 것을 잊어버리고 또 주는 것이다. 줘 놓고도 더 못준 게 미안해서 자세가 낮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무위이다.
그럴 때 정말 세상은 환해진다. 함께 누리기 때문이다. 세상이 환해야 우리의 삶이 성공이지 않겠는가. 온통 계산하느라 머릿속이 자갈 구르는 소리로 가득하다면, 그래서 계속 이익을 추구하다보면 계산이 잘 맞지 않아 우울해진다. 불평할 수밖에 없고 속은 것 같아 억울하다. 그래서 법이 많아지고 변호사가 많아지고 죄수도 많아진다. 계산의 경쟁이 가져온 생명의 불안으로 우리는 암울하다. 오늘날의 극단적인 빈부격차는 정신적인 셈법은 물론 물질적인 셈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결과이다.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까지가 미국 중산층의 최고 호황기였는데 그때 부자들이 내는 세율이 최고 91%였다고 한다. 100억 벌면 90억을 세금으로 내고 10억을 실수입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왜 그때를 호황이라고 부를까. 부의 독점은 그 사회를 퇴보하게 한다. 부를 사회적 공유물로 생각할 수 있는 사회란 결국 계산을 제대로 해내는 사회인 것이다.
멀리 보자. 계산 안에 있는 에너지보다 계산 바깥에 있는 에너지가 더 크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해주면 그는 또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한다. 그것이 실뿌리처럼 뻗어간다. 내가 사랑을 뿌리면 우주 전체가 환해질 것이다. 계산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이치 그대로다. 우리의 인연도 그렇고 우리의 희망도 우리의 미래도 그렇게 계산해낼 때 바른 계산법이 나온다. 나를 계산하기보다 남을 계산하는 것, 그것이 배려이고 환대의 정신이다. 돈 말고, 내게 남은 것을 헤아리자. 쉬운 말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임을 인류가 중얼거린 것은 아마 구석기 시대부터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진정으로 내게 남은 것이 무엇임을 헤아리지 못하는가.
이왕 계산을 하려면 보다 자연적이고 우주적인 계산을 하자. 바다와 같은 계산, 산 같은 계산을 하자. 계산하지 않는 계산은 광활한 자연, 그 자체이다. 계산하지 않을 때 무수한 기적이 우리 삶을 이끌고 간다. 계산하는 머리로 우리는 별것 다 구상하지만 모든 계산은 우리를 더 빈곤하게 만든다. 계산하지 않는 삶이 오히려 풍요를 만든다. 계산하지 않은 마음은 내가 우주가 될 때, 우주를 내 것으로 여길 때 가능하다. 스스로 자연임을 이해할 때 진정한 존재로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8 영원한 화和의 미소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359
37 실 종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300
36 레미제라블을 읽으며 인생을 생각하다 (Ⅰ)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375
35 노년일지老年日誌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281
34 <음악 片紙 ⅣⅩⅦ>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 베르디 ‘나부코Nabucco’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480
33 고흐를 다시 생각하다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582
32 공존이라는 자유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347
31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 낙수落穗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466
30 多夕 유영모 선생의 자속적구원自贖的救援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526
29 우주와 그리스도인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337
28 십자가와 태극기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433
27 삼존석불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05
26 하 얀 사 발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64
25 스승의 은덕을 기리며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797
» 계산하지 않는 계산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77
23 <음악 片紙 ⅣⅩⅥ> 물 위를 걷다 - 리스트 ‘두 개의 전설’ -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23
22 주님은 나의 목자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576
21 구절초九節草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588
20 우리의 국적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18
19 오늘의 구원의 문제를 생각한다 -한 평신도의 소리- file 성서와 문화 2013.07.03 2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