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3년 성서와 문화

[김 순 배 ·피아니스트 / 음악평론]

 


19세기 유럽을 풍미했던 스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프란츠 리스트는 50세가 되던 1861년 돌연 수도사로 변신합니다. 현란한 연주기교와 문란한 사생활로 유명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깊은 자기성찰과 영성추구의 나날로 들어선 것입니다. 자연히 리스트의 음악세계도 종교적인 명상의 색채를 띠기 시작합니다. 오라토리오 ‘그리스도’, ‘헝가리 대관미사’, 그리고 ‘바흐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이 이 시기에 쓰였습니다.
피아노 작품 가운데에서도 신앙적인 상징과 상상을 담은 제목들이 눈에 띱니다. <제네바의 종>, <안젤루스>, <아베 마리아>, <저녁 종소리> <시적이고 종교적인 화음>들이 그렇습니다. 그 중 12세기의 수도자 성 프란체스코를 소재로 만든 ‘두 개의 전설Deux Legendes’은 초자연적인 스토리를 피아노의 음향을 통해 생생하게 묘사한 곡이기에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중세 이탈리아의 성자로 유명한 성 프란체스코는 틈만 나면 새들과 대화했다고 전해집니다. 프란체스코 곁에서 맴돌던 새들은 그가 설교할 때면 한 마리도 움직이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고 하지요. ‘두 개의 전설’ 중 첫 곡은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St. Francis of Assisi preaching to the birds’입니다. 즐겁게 노래하는 새들, 성자의 설교에 귀 기울이는 새들, 설교 내용에 다시 기쁜 지저귐으로 화답하는 모습 등이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곡은 더욱 드라마틱한 소재가 담긴 ‘물 위를 걷는 성 프란체스코St. Francis of Paola walking on the waters입니다. 어느 날 성자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작은 해협을 건너 저편 기슭으로 가야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했던 프란시스코와 그의 제자들은 배 삯으로 지불할 돈이 한 푼도 없었다지요. 선장에게 통사정을 하며 바다 건너편까지 자신들을 좀 태워줄 수는 없느냐고 요청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합니다. 한 술 더 떠서 선장은 ‘당신이 신의 사도이며 전도를 목적으로 다닌다면 물위라도 걸어서 갈 수 있지 않겠소?’라며 빈정댔습니다. 이에 자극 혹은 고무된 성 프란체스코는 자신이 입고 있던 낡은 겉옷을 물 위에 펼친 후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돛대 삼아 그 위에 올라탑니다. 자, 그들 앞에 펼쳐진 항해 아닌 항해는 어떠했을까요?

곡은 평온하게 찰랑거리는 물살을 묘사하는 음형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바다의 물결은 항상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동반하지요. 그들 앞에 불어 닥치는 강한 바람과 험한 파도처럼 음악은 위태롭고 격한 분위기로 점차 바뀌어갑니다. 낡은 코트 위의 항해자들은 금방이라도 바다에 빠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거의 패닉상태에 빠집니다. 키를 넘는 파도는 그들을 집어삼킬 듯 사정없이 공격해 옵니다. 바다에 몸이 들어갔다 다시 나오기를 반복하는 절체절명의 와중에 초자연적 항해는 계속됩니다. 물 위의 기도는 지상의 어떤 기도보다 절박했을 것입니다. 이윽고 파도는 가라앉고 낡은 코트 위의 성자는 그들을 거부했던 배를 앞질러 건너편 해안에 먼저 도착했고 정작 배에 탔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엄청난 광경에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연입니다.
리스트는 이 진위를 가릴 길 없는 전설 혹은 에피소드에 음악적 상상력을 가미해 전무후무한 내용의 피아노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수도의 세계로 귀의한 후 깨달았다는 ‘신앙의 법칙은 자연의 법칙을 초월한다.’는 철학을 음악으로 웅변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을 그의 성격이 짐작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아닌 존재가 물 위를 걷는 광경은 신약성서의 베드로가 유일한데 두 번째 인물로, 물론 리스트의 음악작품을 통해서이지만, 성 프란체스코를 만나게 되니 매우 신기하지 않으신가요? 베드로는 맨 발로 물을 딛고 섰지만 프란체스코는 낡은 옷을 배 삼아 물 위에 우뚝 섭니다. 낭만 작곡가의 나이브한 상상력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당시 리스트가 경도되어있던 깊은 신앙의 세계를 엿보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 ‘물위를 걷는 성 프란체스코’입니다.
여러 버전의 연주가 있지만 피아노계의 하이에나, 즉 보는 곡마다 ‘닥치는 대로’ 연주하고 녹음하는 왕성한 의욕으로 유명한 캐나다 출신 피아니스트 아믈랭Hemlin의 연주가 괜찮습니다. 이 연주에는 악보가 첨부되어 펼쳐지므로 들리는 음이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기되었는지 궁금한 분들에게는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jEq_ixDC7fY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8 영원한 화和의 미소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359
37 실 종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300
36 레미제라블을 읽으며 인생을 생각하다 (Ⅰ)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375
35 노년일지老年日誌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281
34 <음악 片紙 ⅣⅩⅦ>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 베르디 ‘나부코Nabucco’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481
33 고흐를 다시 생각하다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582
32 공존이라는 자유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347
31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 부산총회 낙수落穗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466
30 多夕 유영모 선생의 자속적구원自贖的救援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526
29 우주와 그리스도인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337
28 십자가와 태극기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433
27 삼존석불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05
26 하 얀 사 발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64
25 스승의 은덕을 기리며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797
24 계산하지 않는 계산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77
» <음악 片紙 ⅣⅩⅥ> 물 위를 걷다 - 리스트 ‘두 개의 전설’ -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23
22 주님은 나의 목자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576
21 구절초九節草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588
20 우리의 국적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18
19 오늘의 구원의 문제를 생각한다 -한 평신도의 소리- file 성서와 문화 2013.07.03 2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