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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목자

성서와 문화 2013.10.10 16:27 조회 수 : 2570

[조 용 훈 ·신학]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사옵니다.” 시편 23편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이 시편은 150개의 시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애송시요, 애독시이다. 워낙 내용이 쉽고 문체가 간결해서 주일학교 어린아이들도 줄줄 외울 수 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가 정말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는지는 의문스럽다. 왜냐면 이 시는 유목문화를 배경으로 하는데, 우리는 농경문화 전통에서 살아왔다. 유목민의 삶이 어떤 것인지 경험이 없고, 사막이 어떤 곳인지 짐작조차 못한다. 게다가 양을 길러본 적도 없고 가까이 살펴본 적도 없다. 목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양은 어떤 동물이고 목자와 양은 어떤 관계인지 전혀 모른다.
혹시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은 이 시를 더 잘 이해할거라고 짐작한다. 동물을 자식처럼 생각해서 한 식탁에서 먹고 이부자리까지 함께하는 사람들. 자기 몸 아프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도 동물이 아프면 비싼 병원비 아까워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목자와 양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님을 묘사하는데 시인인 다윗이 사용한 은유는 ‘목자’다. 유목사회서 생겨난 유대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 신이나 통치자를 목자로 비유하곤 했다. 예수님도 자신을 목자로 소개했다. “나는 선한 목자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영혼의 목자로 설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로마 외곽의 카타콤에는 양을 들쳐 맨 목동의 모습 그림이 여러 곳에 남아있다. 화가들은 최근까지 예수님을 그릴 때 양 무리를 이끄는 목자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목자 없이 야생에서 생존해야 하는 양도 불쌍하지만 나쁜 목자를 만난 양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다. 양을 돌보고 치료 하기는 커녕 잡아먹는 데에만 관심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이비종교나 이단종교 지도자들은 온갖 협박과 감언이설로 교인들의 돈과 노동력, 그리고 성을 도둑질해 간다. 삯꾼 목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을 간다. 돈 때문에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점쟁이들처럼 복채를 많이 주면 온갖 축복의 신탁을 전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뒤통수에다 저주를 퍼붓는다. 강단에서 제 기분에 따라 축복과 저주를 쏟아내는 설교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목자들과 달리 우리의 주님은 선한 목자다. 양들을 알고 보살필 뿐만 아니라 양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건다. 양을 자기 가족, 자기 식구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선한목자가 양을 인도하며 보호한다고 말한다. 목자는 양들을 푸른 풀밭과 물가로 인도하는 가이드와 같은 존재다. 꼴과 물이 있는 곳,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을 알고 있으며 굶주린 양들을 거기로 이끈다. 안타깝게도 양들은 어리석고 분별력이 모자라 길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목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막대기나 양몰이 개들을 동원한다. 양들만 아니라 우리들도 어리석고 분별력이 모자라서 자주 엉뚱한 길로 가다 봉변을 당한다. 스스로 자초한 고생들이다.
비가 오고 난 뒤 동네 길을 걷다보면 수많은 지렁이들이 강렬한 태양빛 아래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비가 올 때 땅에서 나왔다가 물이 마르자 돌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헤매다 말라 죽게 될 운명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허리를 숙인다. 손으로 직접 만지는 게 아직 징그러워서 막대기를 사용해서 지렁이를 풀밭에 옮겨준다. 강렬하게 저항하며 거부한다. 지렁이가 말을 할 줄 안다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네가 뭔데 날 괴롭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날 좀 가만둬. 아프단 말야!” 때로 우리의 아픔과 고통은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한 주님의 막대기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다.
한편, 목자는 양을 보호하고 위험에서 건져낸다. 그래서 시인은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나는 두려움이 없사옵니다.”라고 고백한다. 목동이었던 다윗의 체험에서 나온 자기 고백이었을 것이다. 유대와 블레셋이 전쟁을 할 때 목동이었던 다윗이 전장터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심부름을 간 일이 있다. 적장이 그 유명한 골리앗이었고 다윗이 나가 싸우겠다 할 때 형님들과 사울 왕이 막아선다. 그 때 사울 왕 앞에서 다윗이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제가 목동으로 있는 동안 사자나 곰이 양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 가면, 곧 바로 뒤 쫓아가서 그 놈을 쳐 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냈습니다. 어린 소년이 사자나 곰과 더불어 싸우는 일은 목숨을 거는 행동이다. 그 만큼 양에 대해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양은 강인한 이빨이나 빠른 다리가 없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동물세계에서 혼자 살아가기가 곤란한 동물이다. 목자의 보호가 없이는 한 순간도 편히 쉴 수 없는 경쟁력 약한 동물이다. 그런 양들이 꼴과 물을 찾아 며칠씩 광야를 헤매다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많다. 그 곳을 지나야만 꼴과 물을 찾을 수 있다. 양들만 아니라 우리 역시 험하고 거친 세상에서 어찌 살까 두려울 때가 많다. 매일 매순간 주님의 특별한 보호와 돌보심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게다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수도 없이 지난다. 질병, 실패, 불합격, 실연, 배신, 모함, 강탈 등. 역사는 증언한다.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광야를 지나는 자기 백성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땡볕에서 지키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에서 보호하셨다.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라도 사도 바울처럼 고백할 수 있게 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란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 분을 힘입어서 이기도고 남습니다.”(롬 8:35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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