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3년 성서와 문화

우리의 국적

성서와 문화 2013.10.10 16:26 조회 수 : 2615

[유 동 식 ·신학]

 


1. 조선인
나의 청년기는 일본제국의 식민지 백성인 “조선인”으로 살아왔다.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말을 버려야 했고, 성명은 일본식으로 창씨 개명했고, 우리의 청춘은 일본의 노무자 아니면 군인으로 차출되었다. 일부 여성들은 일본 군인들의 위안부로 강제 연행되기도 했다.
20세기 전반시대의 한국인, 특히 젊은이들은 가장 불행하고 치욕적인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이것은 나라를 빼앗긴 백성이 겪어야 하는 징벌이었다.
일본인들은 우리를 불러 “죠센징”(조선인)이라고 했다. 이 말 속에는 나라도 없고, 인격도 없는 열등민, 심지어는 무식하고 더럽다는 경멸의 뜻이 들어있었다.
나는 황해도 남천에서 살다가 소학교 때 강원도 춘천으로 이사 왔다. 우리 집은 석사리 파출소 근처에 있었다. 하루는 파출소 소장인 일본인의 딸과 함께 냇가에 가서 놀다가 돌아 왔는데, 그의 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들었던 섭섭함이 기억에 남아 있다.
신학을 공부하려고 동경에 갔을 때에는 하숙을 구하는 데에도 조선인이라는 것 때문에 눈치를 보아야만 했다. 결국에는 동경 조선 YMCA의 방을 얻어 살았던 생각이 난다.
1944년 정초에는 드디어 그들이 만든 “특별 학도지원병 제도”라는 명칭 하에 일본 군인으로 끌려갔다. 생명을 걸고 운명을 같이해야 할 군인들의 집단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죠센징” 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우리는 1945년에 이르기까지 기가 죽은 “죠센징”으로 살아왔다.

 

2. 고려인
나의 장년기는 외국의 원조에 의존해서 우리의 생계를 꾸려가던 “고려인”(코레안)으로 살아왔다.
세계 뉴스에 캄캄했던 우리들은 1945년 8월 15일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일본의 패망과 조선의 해방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일본 군인의 한 사람이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서구연합군의 승리에 기인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해방이 곧 우리들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또 다시 동서 양대 이데올로기의 갈등의 희생양이 되어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진 반쪽자리 독립국을 세웠다. 그리고는 2년도 체되지 않은 1950년 초여름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인해 6.25전쟁이 일어났다. 3년에 걸친 전쟁은 한반도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말았다.
이런 속에서도 남한 “코레아”를 지켜준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21개국이 동참한 UN군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린 수령을 신으로 모시고, 가는 곳마다 손벽을 치며 감격해 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일원으로 전락해 있을런지도 모른다.
존재감이 없었던 “코레아”는 6.25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과 고아의 나라, UN의 원조로 존립하게 된 나라, 동정과 원조의 대상국으로서의 존재였다.
고려인에 대한 미국 민간단체들의 원조는 적극적이었다. 그 중의 하나가 미국 감리교회였다. 그들은 제3 세계의 지도자 양성을 위해 “십자군 장학기금”을 설립하고 많은 사람들을 교육했다. 그 중에도 많은 혜택을 받은 나라가 코레아이다. 나 역시 56년도 장학생의 한 사람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미국으로 간 나의 심정은 암담하기만 했다. 내가 아는 영어라고는 왜정 때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다. 커피와 코카콜라를 처음 마셔 본 나로서는 거기에 카페인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리가 없었다. 잠 못 이루는 것은 긴장 탓인 줄만 알았다. 그 덕분에 밤을 세워가며 책을 뒤지다 보니 신학석사 과정을 끝낼 수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빈약한 고려인의 한 사람으로 살아왔다. 실은 “코레아” 전체가 외국의 원조를 받으며 자기를 구축해 가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우리는 세계로부터 가장 많은 원조와 사랑을 받아 온 민족이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이 사랑의 빚 갚기에 있는 것이다.

 

3. 한국인
나는 노년기에 이른 요즘에 와서야 비로소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서 가슴을 펴고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세계를 향해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한 것은, 88올림픽과 월드컵 축구경기를 개최하면서 부터였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주최국이 되어서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제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와 평화의 발전을 위해 세계 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협력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었다는 자기인식의 외침이었다.
G20의 개최국이었는가 하면, IT산업에서부터 자동차산업에 이르기까지 선진국들과 경쟁하는 나라가 되었다.
체육뿐만 아니라 음악, 무용, 예술의 세계에서는 의례히 한국 젊은이들이 메달을 차지한다. 근자에 와서는 대중문화에서까지 “한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름 모를 아시아의 시골 어린이들이 강남스타일의 춤을 추는 동영상을 보고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대한민국의 절대후원기구였던 UN의 사무총장이 한국인이요, 세계은행 총재가 또한 한국인이라고 한다.
부끄러운 국회의원들의 추태를 보다가도 어여뿐 김연아, 손연재, 류현진 등 젊은이들을 보면 한국인 된 긍지가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한’이란 하나인 동시에 크다, 높다는 뜻이다. 우주는 ‘한울’이며, 이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이는 “한님” 곧 “하나님”이시다. 그럼으로 “한국인”을 직역하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뜻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한국인 된 긍지를 갖게 하는 뿌리는 단순한 우리의 문화 발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적을 하늘에 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데 있다. (빌립 3:20)
외람된 이야기지만 메시아를 대망하던 늙은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올렸던 감사기도를 떠 올려 본다.

“이 종은 평안히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내 눈으로 보았습니다.” (누가 2:29)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그간 우리들이 받아 온 많은 사랑의 빚을 갚는 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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