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3년 성서와 문화

[장 기 홍 ·지질학]

 

 

기독교방송의 화면에 한 원로목사의 대담이 나왔는데, 요즘 신학교 학생들이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설문조사에 42.9%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면서 개탄하고 있었다. 그는 이어 ‘기독교는 독선獨善적이라야 한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듣고 있던 남녀 두 사회자는 원로목사의 존재 이유를 알겠다고 하면서 감사하고 있었다. 타 종교들을 향해 ‘당신들은 헛살고 있소!’ 한다면 그것이 바른 태도이겠는가? ‘구원’이라는 헛된 문제 제기를 하여 그릇된 결론에 이르고 있음이다.
구원救援이란 익사 직전에 있는 사람이 ‘건져 달라, 구원해 달라’ 하고 부르짖을 때의 그 구원이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학정 수탈 아래 압제, 질병, 빈곤 등 갖은 고난을 겪으며 구원을 바라고 있었다. 자연히 정치적 해방을 바랐다. 그러나 그것이 안 되자 차츰 ‘영혼의 구원’ ‘죄악으로부터의 구원’ 이라는 내적內的 도덕적 구원으로 승화시켰다. 그러한 정신적 승화는 기독교의 큰 업적이다. 필자는 그러한 구령救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사람은 우선 정신적 해방을 맛보아야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
구원은 해방解放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이라고 한다. 이른바 해탈解脫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은 얌체 같은 소리다. 상식에 어긋나고,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것이다. 기독교의 자해自害 행위나 다름없다.
같은 병病을 놓고 종교마다 처방이 다를 뿐이다. 기독교의 기초 교리의 하나는 인간의 참상이 결국은 죄악에서 온다고 보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희생犧牲제사祭祀가 되어 사람의 죄가 자동적으로 면제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설명은 예수 같은 무고無辜한 분이 어찌하여 극형에 처해졌느냐 하는 의문에 대한 근사한 해석이었다. 본래 신에게 제사할 때는 양의 피를 흘려 제사지내던 것을 예수가 몸으로 산제사를 신에게 드려서 한꺼번에 제사가 다 끝났고 그를 믿는 모든 죄인들은 속죄贖罪함을 입는다고 보는 것이 이른바 대속代贖의 교리이다. 신약성경 히브리서는 그러한 설명의 걸작이다.
그러나 매사가 경직해지면 유치하게 된다. 대속의 교리를 앞세워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고 따라서 구원이 되지, 다른 원리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한다면 어린아이 같은 소견이다. 지리적으로 혹은 역사적으로 격리되어 있어서 예수를 모르던 모든 사람들은 다 죽어야 한단 말인가?
기독교에서는 신이 내세에 보상報償을 준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이 구원이기도 하다. 불교에서도 윤회라 하여 보상을 가르친다. 그러나 석가 자신은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하여 개인의 영혼을 부정했다. 불교는 육신이 있어서 속박이 있는 것이니 죽으면 열반에 이른다고 본다. 즉 해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죽기 전에도 깨달으면 해탈이다. 해탈이 곧 열반이다. 이렇게 종교마다 처방은 다르나 문제는 공통이다. 같은 문제를 두고 방법이 다른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 가고 구원 얻는다.’는 명료한 메시지가 마음에 들면 그렇게 믿으면 될 터이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단순한 믿음을 용납하지 않는다. 개인의 영혼, 개인의 내세來世를 믿는 사람은 차츰 없어져 간다. 이런 경향을 두고 개탄하는 축도 있으나 사실은 그것이 개명開明이다. 이제부터 구원은 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을 의미하게 되어간다. 지금의 역사적 단계는 우리에게 세계구원의 필연성을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에는 구원이 있는데 불교에는 있나 없나? 하는 식의 단계를 뛰어넘어 그것이 아예 잘못된 출제였음을 깨닫게 다그치고 있다. 세계구원 없이는 개인의 구원이 없다는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단계이다.
돈 문제로 아귀다툼을 하고 돈 때문에 이혼을 하는 요즘 세상에서는 가히 돈이 구세주 격이다. 재개발再開發의 피해자들이 경찰과 부닥쳐서 그만 여럿이 불타 죽는 참상이 벌어졌다. 이해利害의 문제요 돈 때문에 벌어지는 참상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써서 구세救世를 꾀했다. 이제는 이치를 더 깊이 연구하여 돈 귀신의 손아귀에 내맡겨진 중생을 구출해야 한다. 지금의 시장경제는 돈을 구세주로 모시는 종교의 꼴이다. 돈을 구세주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이것이 세계구원의 당면과제이다.
인류가 제도를 어떻게 정돈하면 지상천국이 조금씩 되어갈까? 유럽이 한 나라가 되어 서로 전쟁을 하는 위험성을 줄였듯이 세계가 한 나라 곧 세계국가가 되면 세계정부 아래에서는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끊어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얼어 죽게 하는 그런 변은 없을 것이다. 미국이 만일 합중국에 실패했더라면 각주는 지금도 전쟁을 할 것이다. 세계가 합중국이 되면 한결 나아질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이 오는 것을 방해하는 주범은 종교이다.
마하트마 간디는 영국 통치하에 있던 인도가 그대로 독립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종교 때문에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방글라데시로 분리되고 말았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첨예한 불화가 있는 한 세계가 한 나라가 되기는 어렵다. 세계합중국이 되어도 이슬람과 유대교 하는 식의 대립이 그대로 있으면 여전히 싸울 것이다. 미래 세계의 최대의 장애는 종교의 아집我執이다. 종교는 구원을 목표로 했는데 그만 구원의 방해자 중 최악의 것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종교들은 희생을 가르치지만 말고 진리를 위해 자기희생을 실천해야 한다. 종교가 원인이 되어 자살 테러가 매일 일어나고 있다. 종교에서 해방되는 일이 최대의 구원救援이다. 그것이 세계구원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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