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3년 성서와 문화

[박 영 배 ·본지 편집인]

 


케엘케고어Kierkegard는 19세기 최대의 기독교적 사상가이다. 흔히 사람들은 키엘케고어를 20세기 신학의 거장巨匠 칼 바르트Karl Barth의 선구자라고 한다. 바르트가 쓴 로마서 강해에 의하면 내가 어떤 체계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소극적 의미로나 적극적 의미로나, “시간과 영원은 무한한 질적 차이이며,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다.”는 키엘케고어의 말을 언제나 기억하는 중에서 이룩된 것이라 했다.
실로 바르트에 있어서 키엘케고어의 영향은 지대하다. 그리고 바르트를 비롯한 20세기 신학자들의 저서 중에 나오는 실존 또는 실존적, 익명자, 계기moment, 거침돌, 수직선적, 긴장, 결단 등의 신학적 용어들은 거의가 키엘케고어에게서 온 것이기도 하다. 이는 키엘케고어의 사상적 능력을 입증하는 동시에 현대신학이 그로부터 받은 유산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키엘케고어는 19세기와 20세기에 신학의 접촉점을 가능케 한 신학자이며 철학자이기도 하다.
키엘케고어를 금세기에 와서 제일 먼저 발굴하여 사상적 무대에서 각광을 받게 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철학자 하이데거나 야스퍼스가 아니라 신학자 칼 바르트였다. 바르트신학의 제1성인 로마서(1919년)는 이들의 만남이 가져 온 하나의 기념비적인 것이기도 하다. 즉 로마서의 사유방식이나 해석방식은 키엘케고어의 영원과 시간에 “무한한 질적 차이”라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바르트만이 아니고 당시 키엘케고어에게 많은 영향을 받고 출발한 위기신학 및 변증법신학의 일파들의 공동 기반이기도 하다.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는 당시 낙관적인 휴머니즘 사상과 신학계에 폭탄적 선언과 같은 것이었다. 1919년 로마서 강해가 나온 후 새 시대를 알리는 많은 저서들이 줄을 이었다. 1923년 부버 M. Buber의 ‘너와 나’,  1925년 틸리히 P. Tillich의 ‘현대의 종교적 상황’, 1927년 하이데거 M. Heidegger의 ‘시간과 존재’, 1932년 야스퍼스 K. Jaspers의 ‘철학’, 1933년 불트만 R. Bultman의 ‘신앙과 이성’ 등 다수이다. 이상과 같이 생각할 때 키엘케고어에게서 받은 사상적 영향이 현대신학과 철학에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케 한다.
키엘케고어의 사고의 특징은 언제나 인간의 구체적인 사실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인간에 대한 추상적 진리는 인간 일반에 대한 진리는 될 수 있어도 구체적인 인간의 진리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근대 인본주의적 철학의 선두 주자인 데카르트는 생활로부터 유리된 순수사유純粹思惟로서의 이성理性에만 종사하는 철학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면 키엘케고어는 언제나 하나님, 우주, 인간들과의 관계 안에 존재하는 인간으로부터 시작하였다.
따라서 키엘케고어는 철학과 종교에 있어서 추상적 사상을 배격했다. 과학과 수학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취급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과 종교는 사상을 아는데 있지 않고 그대로 사는 데 있다. 그는 이론의 웅대한 건물을 짓지만 그 속에 살고 있지 않는 철학자를 끊임없이 비판했다. 진정한 철학과 신학의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상이란 나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주어야 한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인간의 문제를 취급할 때 언제가 실존적 방법을 필요로 한다. 객체는 언제나 우리의 지성과 이성에만 관계하는 것이다. 인간을 한 주체로 보아야 한다. 즉 의지, 사고, 희망, 그리고 감정의 과정의 중심인 하나의 주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일생일대의 최대의 관심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은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단독자單獨者의 개념이다.
키엘케고어 당시 덴마크를 위시한 전 유럽은 기독교 국가였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기독교인이 되며 기독교 문화의 우수성과 기독교적 도덕을 아무런 회의나 비판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렸다. 그리하여 인본주의적人本主義的 근대문화近代文化와 소시민적小市民的 기독교문화는 완전히 하나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문화는 그 절정에서 근본적인 붕괴와 해체를 맞으며 니힐리즘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키엘케고어는 누구보다도 먼저 이 시대의 징조를 날카롭게 통찰한 사상가이다. 키엘케고어는 기독교를 국교國敎로 한 덴마크의 교인은 맹목적인 그리스도교 교인이라 했다. 이 맹목상의 그리스도교 교인이 실질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어떻게 참다운 인간이 되는가의 문제를 제기했다. 교회의 멤버가 된다고 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다 인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의 존재와 생활이 변화할 때 비로소 구원을 받는다. 키엘케고어는 당시의 교회가 상대적인 것 앞에 설 뿐이며 절대자 앞에 서려는 그리스도교 원래의 엄숙함을 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에 의하면 복음은 새로운 철학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절망의 문재를 해결하고자 오시는 하나님의 행위이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피안에 놓여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삶의 과정에서 살아있는 사실로서 자신을 계시할 때에만 발견할 수 있다. 이성이 증명할 수 없다고 비약이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기의 참된 처지를 알게 될 때 절망으로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절망 가운데서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붙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한한 세상에 속박된 인간이 무한한 세계로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바르트는 인간의 의를 긍정하려는 것은 불신앙이라 했다. 즉 신앙이란 인간의 의로써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가 하나님 앞에서 부인되는 순간이 곧 위기요 심판이다. 즉 일체의 인간적인 부정이 하나님의 긍정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 또한 키엘케고어의 영향이다. 개인이 서있는 수평적인 선 위에 수직적인 위로부터의 선이 마주치는 점, 그 순간은 시간의 한 토막이 아니라 영원의 한 원자Atom이다. 계시와 영원이 시간에 종합되고 함께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에서 일어난 것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에서 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있어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영원이 시간 속에 들어 온 것이다.
바르트는 ‘말씀의 신학’ 이후 키엘케고어적 요소를 많이 탈피하게 된다. 그러나 바르트는 1934년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브루너 E. Brunner와의 논쟁에서 브루너는 인간의 이성적 본질은 죄로 인하여 실질적으로는 왜곡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계시를 수용하는 형식적인 능력은 인간의 고유한 본질로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바르트는 하나님의 계시와 부름에 응답하는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라 했다. 즉 브루너가 자연과 은총의 연속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려는 입장에 대하여 바르트는 단호히 거부하며 인간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은 죄로 인해 상실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성은 결코 그것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르트에 있어서 자연과 계시는 대립개념이다. 이상과 같이 발트와 브루너의 논쟁에서 보면 브루너에 비하여  발트가 훨씬 키엘케고어의 입장에 가까이 있음을 보게 된다.

1963년 덴마크 정부는 바르트에게 키엘케고어 연구를 기념하는 공로상功勞賞을 수여했다. 이 공로상은 키엘케고어의 영향 하에 로마서로서 신학계에 등장한 바르트의 학문적 생애의 말년에 주어진 큰 기쁨이며 영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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