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 2013년 성서와 문화

민화를 통해본 한국인의 심성

성서와 문화 2013.03.21 14:43 조회 수 : 2575

[김 효 숙 ·조각]

 


요즈음 “강남 스타일”이 세계적으로 대 유행이다. 말춤이라고 한다. 기마민족의 후예다운 발상이다.
그런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기에 걸친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그림으로 집안을 꾸미고 장식하는 생활 문화가 대 유행했다. 궁에서나 사대부들만이 아니라 서민 대중들도 나름으로의 처지와 취향에 맞게 그림을 향유하며 살았다. 나는 이 풍조를 “우리 민화 스타일”이라고 이름지어 본다. 이 “우리 민화 스타일”은 집안을 장식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전국토의 어느 곳에서나 삶의 구석구석에 응용되고 활용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렇게 대 유행을 가져온 데에는 조선시대 후반기에 오면서 상품 화폐경제가 발달하고 외국과의 무역도 성해지면서 부유해진 상인과 농민들이 생겨난 것과 연관이 있다. 이들은 신분상승을 꾀했고, 양반문화에 대한 동경이 생겨나면서 그림의 수효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민화는 서민에 의해 서민 취향에 맞게 그려진 아마추어 그림이다. 민화는 큰 틀에서 궁궐이나 사대부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그들의 정서와 형편에 맞게 그것들을 재구성하여 새롭게 만든 것이다.
전문 화가들에 의해 궁에서 그려진 궁화나 양반 사대부들에 의해 그려진 사인화(문인화)가 규범에 충실하거나, 절제된 분위기를 강조하는데 반해  민화는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범하게 소박한 필선으로 정겨운 그림을 그렸다.
민화는 채색화이다. 우리 조상들은 전통적으로 음양오행에 의해 오방색(파랑-동, 흰색-서, 빨강-남, 검정-북, 노랑-중앙)을 써왔다. 궁화는 최고급 물감(진채眞彩)을 전면全面에 채색하여 밝고 화려하게 그렸고, 사대부들은 유교이념에 맞게 절제된 분위기와 격조를 위해 수묵이나 옅은 담채淡彩로 그렸다.
서민들의 경우, 값비싼 물감을 넓은 면적에 사용하기 힘들므로 진채는 부분적으로만 칠하고, 질이 떨어지는 물감을 두텁게 바를 경우 탁해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나머지 부분을 옅게 발라 담채로 처리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경제적 이유에서 궁여지책으로 사용한 기법이지만 화면은 오히려 궁화의 화려함과 사인화의 맑고 투명한 분위기를 함께 가질 수 있었다. 즉 양쪽의 장점을 동시에 취하는 셈이 되었다.

민화로 그려진 주제들은 참 많다. 그 중 많이 알려진  것으로 해, 구름, 물, 바위, 거북, 사슴, 소나무, 대나무, 학, 영지 등 열 가지를 넣어 장수를 기원하여 그린 것이 십장생도十長生圖이다.
그러나 민화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것은 꽃과 새를 그린 화조도花鳥圖와 모란이나 연꽃 등을 그린 화훼도花卉圖이다. 이것들은 장식성이 뛰어나 집안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꾸밀 수 있었고, 또한 잔치용으로도 그 분위기를 돋우는데 제격이었다. 특히 꽃이 만발한 속에서 쌍쌍의 새들이 노니는 광경은 참으로  평화롭고, 자유롭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전해 준다. 여기에 부부의 화목, 가정의 행복이라는 교훈적인 메시지까지 담겨 있었다. 새들이 서로 다정스럽게 입을  맞대고 있는 모습, 먹이를 먹여주는 장면, 물고기를 물고 기다리는 제짝 쪽으로 열심히 뛰어가는 모습 등, 서민들은 그들의 일상을 의인화하여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익살스럽게 해학적으로 풀어 그림을 그렸다.
화훼도花卉圖를 대표하는 꽃은 모란과 연꽃이다. 크고 화려한 모습의 모란은 결혼이나 회갑, 회혼례 등 잔치에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었다. 더구나 모란은 부귀를 상징하는데다 장수를 상징하는 바위와 함께 그려져 인기 있기 화제였다. 때문에 어느 그림에든 빈번하게 구석구석 첨가되어 상징성과 함께 화면을 밝고 명랑하게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한 연꽃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진흙탕 속에서 청결한 꽃을 피워 혼탁한 세상에서 맑은 진리의 구현을 의미한다하여 불교의 상징으로 여기나, 유교에서도 연꽃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속이 비고 곧으며, 그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하여 군자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여기에 연꽃은 여러 가지 길상吉祥의 상징을 담고 있어 많은 곳에 함께 그려졌다.
연꽃이 무엇과 짝 지워져 그려지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랐다. 연꽃 위에 제비가 날면 천하가 태평하여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고, 연꽃(여성)이 물고기(남성)와 함께 그려지면 남녀의 사랑을 의미였다. 연꽃이 그려지는 숫자에 따라서도 한줄기의 연꽃이 그려지면, 청념결백 하기를 바라는 뜻이고, 무더기로 자라나고 있는 연꽃이 그려지면 사업번창이나 개업축하 등의 축원을 의미했다. 연밥이 들어 있는 송이를 포함한 연꽃은 귀한 아들을 빨리 낳으라는 기원의 의미이기도 했다. 따라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연꽃병풍을 꾸며 설치하면 만사형통의 길상적 연못이 되는 셈이었다.
길상적 의미로 물고기도 많이 사용하였다.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다산을 의미할 뿐 아니라 메기, 쏘가리 잉어 등으로는 출세를 상징하기도 했다.
민화의 시작은 통일신라시대 처용그림 세화歲畵에서 부터라 한다. 새해 첫날 대문이나 창문에 복을 들이고 액을 막는 문배門排를 붙였던 풍속에서 연유한다. 복을 들이는 것으로는 용龍을, 액막이()용으로는 호랑이와 닭, 매 등을 그려 붙였다.
액막이 민화로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 까치 호랑이 그림이다. 이 그림은 기쁜 소식을 가져다준다는 길상의 까치와 벽사의 상징인 호랑이, 그리고 소나무의 삼박자로 그려진 그림이다. 그런데 서민들은 이 그림을 통해 까치는 민초로, 호랑이는 탐관오리 같은 양반들로 의인화하여 우화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신분차별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며 간접적으로 그 불만을 해소한 것이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가 발톱도 없고, 사팔뜨기로, 혹은 혼이 빠진 듯 그려지는데 비해 까치는 작지만 아주 생동감 있고 당당한 표정으로 그려져 있다. 이렇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림 속에 집어넣어 더욱 흥미를 더하였다.
조선시대 유교이념의 영향으로 문자도文字圖와 책거리도 유행했다. 문자도로는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라는 유교적 덕목을 그림 같은 글씨, 글씨 같은 그림으로 흥미롭게 표현하였다.
학문을 중시했던 정조正祖의 취향에 맞게 구상된, 책장 속에 책만이 가득 그려진 <책가게>는 서민들의 적은 집 규모에 맞게 작은 화면에 거치장스러워진 책가를 없애고 책들과 함께 서민들의 소박한 바람이 담긴 상징물(씨가 많아 다산을 의미하는 석류나 수박, 아들을 상징하는 가지, 부귀의 모란 등)들과 문방도구, 기물 등의 일상적인 생활용품으로 화면을 구성한 <책거리>로 변화시켰다.

민화가 가장 유행했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우리나라가 참으로 암울하고 치욕적인 어려운 시기였다. 혼란했던 한말과 일제 강점기를 지내며 우리의 선조들은 어두운 정치 상황과 정반대로 밝고 명랑하고 해학과 익살이 가득한 민화들을 제작했다.
물감이 부족하다고 포기하지 않고 더 새로운 방편을 찾고, 많은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기에도 전통의 오방색과 평면적 도상을 고수하며, 자신들이 소박한 이야기와 바람을 자유로운 상상력과 풍부한 감성으로 그림 속에 담았다.
우리는 민화를 통해 우리 선조들이 어려운 현실에 억매이지 않는 진취적進取的이고, 긍정적肯定的인 사고思考와 이를 뒷받침하고 이끌어 간 문화 예술의 힘을 본다.
민화에서는 복잡한 조형은 단순하게 만들고, 꽉 찬 것은 숨통을 띄어주고, 경직된 곳은 풀어주며, 권위적인 것은 평범한 것으로 끌어내려 무거운 것을 가볍게 덜어줌으로써 이미지로 상징화된 서민의 자화상을 이루었다. 우리가 민화를 볼 때 밝고 명랑하고 즐거워지는 것은 이러한 서민취향 덕분이다.
이러한 ‘우리 민화 스타일’은 지금 우리에게 자유로움과 여유를, 더불어 함께 나누는 평화를, 따뜻한 사랑을 배우라 한다. 복잡하고 급속하게 변해 가는 요즘의 세태 속에서 우리가 잃지 말고 간직해야 할 우리 심성心性의 원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8 스승의 은덕을 기리며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886
37 계산하지 않는 계산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711
36 오늘의 구원의 문제를 생각한다 -한 평신도의 소리- file 성서와 문화 2013.07.03 2693
35 하 얀 사 발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85
34 <음악 片紙 ⅣⅩⅥ> 물 위를 걷다 - 리스트 ‘두 개의 전설’ -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64
33 ‘쥐/두더지 혼인’ 설화 file 성서와 문화 2013.03.21 2655
32 고흐를 다시 생각하다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649
31 우리의 국적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46
30 삼존석불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19
29 구절초九節草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603
28 주님은 나의 목자 file 성서와 문화 2013.10.10 2597
27 붓의 놀림과 매화향기 - 남천南天 송수남의 인생과 예술 - file 성서와 문화 2013.07.03 2589
» 민화를 통해본 한국인의 심성 file 성서와 문화 2013.03.21 2575
25 씨 뿌리는 사람의 노을 file 성서와 문화 2013.03.21 2574
24 1930년대 시무언是無言 이용도 목사의 영적 기독교 file 성서와 문화 2013.03.21 2562
23 多夕 유영모 선생의 자속적구원自贖的救援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560
22 별이 내리는 집 file 성서와 문화 2013.07.03 2555
21 키엘케고어를 생각한다 Ⅱ - 키엘케고어와 칼 바르트 - file 성서와 문화 2013.03.21 2552
20 <음악 片紙 ⅣⅩⅦ> ‘날아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 베르디 ‘나부코Nabucco’ file 성서와 문화 2013.12.18 2535
19 빛의 자녀 file 성서와 문화 2013.03.21 2533